우선 죄송하다는 말부터.
제가 너무했지요. 500매가 넘는 소설을 읽어달라고 했으니, 참 웃기는 짬뽕, 탕수욕, 팔보채...ㅎㅎㅎ. 그거 딱 무시하세요. 어차피 소설의 방향이 다 달라졌으니까. 그것은 쓰레기 일뿐입니다. 너무 거장을 만나다보니 제가 주제넘게.ㅎㅎㅎ
자. 이제 가볍게 아주 아주 쬐께 제가 1년 전에 쓴 시나리오를 보여드립니다.
시나리오
1. 전주, 군산 전용도로 대야구간(오전 10시)
화창하고 약간 바람이 부는, 하늘엔 두둥실 뭉게구름.
제법 한가한 전용도로에 빨간색 컨버터블 오픈된 채 GM대우 선전판 스치며 달리는 차.
긴 머리를 나부끼며 은희는 운전석에 지은은 그 옆 좌석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고.
지은: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바람을 느끼며) 야호, 지대로 왔군.
은희:(살짝 지은을 돌아보며)그만 음악 좀 바꾸면 안 될까?
지은:(터질 듯 미소) 뭘 그래, 좋기만 한데.
은희:(미간을 찡그리며)헐, 벌써 몇 시간 째야?
지은:난 범준이 목소리 넘 좋아.
은희:(설득조로) 해도 너무 하잖아.
지은:(말을 돌리기라도 하듯, 은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디부터?
은희:(살짝 미소)뭘, 어디부터야. 하제 그리고 은파 유원지지.
지은:하제는 석양 무렵에 가야 좋다든데. 블로그 보니깐.(스마트 폰으로 뒤적뒤적 블로그를 찾는 중)
은희 (생각에 잠긴 듯 표정 짓는다.)
CUT TO(은희의 회상)
오전 10시 은희네 거실. 피아졸라 음악이 낮게 흐르고 있음(cafe 1930/Javier Albares, 첼로Marisa Gomes. 기타.)
엄마(외숙모)의 손에 신경림 시집 ‘사진관집 이층’ 들려있고. 앞 쪽에 커피 잔.
은희가 쇼파에 앉은 엄마의 무릎아래 턱을 괴고 무엇인가 간청.
은희:(잔뜩 애교를 떨며) 플리즈, 맘. 제발.
엄마:(못 들은 척, 눈을 시집에 고정한 채)
은희:(얼굴을 엄마의 얼굴 밑으로 가져다 대며) 응, 응, 응
엄마:(여전히 같은 자세)
은희:그래. 커피 박물관 가서 터키쉬 커피 끓이는 방법 배워 올게. 응, 엄마아.(간들어지게)
엄마:(시집을 내려놓고 엷은 미소 띠며 은희를 지긋이 바라본다)정말이지? 확실히 지은이지?
은희:(간절한 어조로) 엄마, 나 못 믿어? 처음으로 지은이랑 단 둘이 외박이잖아.지은이도 나도 공연이 없는 주말이잖아.
이번 못 가면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우리 역사에 이런 날이 몇 번이나 있겠냐구?
못 믿겠으면 지은네 엄마에게 전화해봐.
엄마:(근엄한 얼굴로) 알았어. 이번뿐이다. 절대 다음엔 안 돼.
은희:(신이 난 듯) 알써 알써.(일어서며 엄마를 안고 볼을 부빈다.)
CUT TO
지은:(기쁜 듯, 스마트 폰을 은희에게 들이대며) 찾았어. 찾았어.
Jigo's Friday란 블로그가 화면에 보이고
지은:뭐라 써있는 줄 알아.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며)
흐릿한 구름 뒤로 숨바꼭질하는 뿌연 해. 배경으로 부는 바람,
저만치 물러난 바다가 풍기는 냄새에 끌려가다 만난 풍경들...
갯 내음 성성하고 석양을 인 바다가 천상을 노래한다.
은희:(살짝 미소)그려. 그렇다면 이따 석양 무렵.
지은:(신이 난 듯) 콜.
INS(은희의 회상)
은희 10살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외삼촌 손에 이끌려 승용차를 뒷좌석에 타고 가며 되돌아보던 하제 풍경을 회상.주황색 노을 낀 하늘에 수평선으로 침몰하던 이글거리던 태양
CUTTO
은희와 지은이 탄 차가 전용도롤 빠져나오며 은파 호수공원 팻말. 음악을 줄이고 호수 공원 안으로 차를 돌려 진입한다. 은희와 지은이 탄 차체 위로 벚꽃이 분분이 날리고...
타이틀 <벚꽃>이 서서히 떠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타이틀 위로 벚꽃이 분분히 날리고...
2. 째보선창(오후 2시경)
짙은 해무가 내려앉은 포구에 비가 내리고 있음. 바다에서 선창가를 향해 오색 깃발을 단 조깃배들이 하나, 둘 등장. 선창가 주위로 장돌뱅이. 지게꾼, 선주, 객줏집 색시, 아이들, 개들이 선창가를 향해 일제히 몰려감. 소년 하나가 “배가 들어온다.” 소리침. 그들 뒤 객줏집 처마 밑에 오봉댁과 째보황씨가 선창을 바라보고 서있음.
째보황씨: (오봉댁을 흘끔거리며)만선인가 봅소. 모다 오색 깃발을 꽂은 걸 봉께.
오봉댁:(황씨에게 몸을 바짝 기대며 콧소리를 내며) 벚꽃이 안 젖던 가비요. 해마다 이만 때 면 조기떼가 몰려오곤 했응께로.
보릿고개 넘기라고 하늘이 우덜을 살리는 것이지 유. 어르신네 요정도 한 바탕 난리가 날 것 이지만.
지도 한 몫 두둑이 챙겨야 쓰것 는디유. 이참에 물건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어른께서 쬐매 신경 써 주시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것쓰유.
-이상-
감독님은 지금 막 교수님의 신분으로 돌아와 대학 1년생, 과다한 열정과 의욕만 넘쳐나는 학생의 시나리오를 보시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시나리오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실 차례이고요. 제 소중한 와인 2병이 걸린 문제라는 걸 기억하시고 가볍게, 아주 가볍게 다음에 뵐 때 한 말씀, 아니 두 말씀.....ㅎㅎ. 숙제가 가벼워져서 기쁘시지요?
블로그에 그동안 써온 글을 방출하다가 꼭 4년 전 이만 때쯤 쓴 글이 있더군요.
“淸靜爲天下正. 맑고 고요함으로써 천하의 올바름을 이룩한다. 라는 노자의 말씀이 불현듯 생각납니다. 나는 淸靜爲天下正이 아니라 淸靜爲我正이라고 고쳐보고 싶습니다. 즉 지금의 나 자신의 자발적 왕따의 상태가 나의 올바름을 이룩하는 금쪽같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라는 글을 읽으며 자발적 왕따, 즉 내면에 심리적 공간인 테메노스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그때부터 내 삶은 어땠을까? 잠시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 가지 이유로 자발적 왕따를 견지했던 시간을 뒤로 한 체,
‘새는 알을 깨고 나와 신을 향해 날아가고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제 내일의 아프락사스는 어떤 모습이 될까, 생각만으로도 가득 차오르는 아침,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즐, 건필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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