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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그대들에게, 2016년을 시작하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1. 9.

2016년을 시작하며 그대들에게......

 

 

 

  “난 내가 꼭 나무 같아. 뿌리 없는 나무 말이야. 망망한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사는 일이 하 심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차였다. 날카롭게 부딪혀 오는 말의 여운에 시선은 창밖을 서성인다. 앙상한 가지를 매단 나목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직 포장되지 않은 도로의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며 바람에 휘몰린다. 그도 나도 한동안 말이 없다. 방향을 잃은 생각들은 어디를 향해 달릴까?

  “그대가 나무라면 난 먼지 쯤 해당되겠네.”

  사념의 꼬리를 끊으려면 뭔가 말해야 했지만 던진 말의 파편이 메아리가 되어 가슴을 더 세차게 찔러온다. 내면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말들을 용케도 피하며 지내왔는지도 모르겠다. 딱 그만큼의 관계였구나, 생각하니 쓴 웃음이 올라온다.

  “먼지까지라, 넘 처연하네.”

  마치 화두를 던진 것은 그저 농담일 뿐이라는 듯 그가 웃는다. 창밖을 향한 시선을 고정한 체,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꽉 다문 입술에서 피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는 떠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되었다했다. 처음 몇 년은 고사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줄기에 물이 올라 잎을 피우고 때론 꽃을 달기도 한다는 소식은 더 이상 날 아프게 하거나, 더 외롭게 하지는 않았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셔 주셔서 다행입니다 , 안도감이 내렸다. 이제 나도 더 이상 망망한 우주를 떠도는 먼지가 되어서는 아니될 일이었다.

 

 

  나도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볼까, ‘나’라는 나무를 자라게 할 수는 없을까? 내가 가진 것은 터무니없이 척박한데 과연 ‘나’라는 나무는 이 척박한 땅에서도 잎을 틔울 수 있을까? 회의적인 질문들이 또 몇 밤을 뒤척이게 했다.

  뒤척이며 치댄 시간은 나무로 자라고자 하는 열망을 키워내더니 어느 새 나무의 씨앗으로 전이되어 스스로 뜨겁게 부풀아 올랐다. 바람도 불고 비가 내린 시간들이 퇴적층을 형성하더니 그 위로 먼지로 떠돌던 나무의 씨앗이 안착했다. 예기치 않은 태풍이 체 다져지지 않은 토지의 지표면을 훑고 지날 때 아직 여린 나무의 씨앗은 지표면 위를 정처 없이 힘없이 떠돌았다. 다행인 것은 예전처럼 망망한 우주를 떠돌기보다 지표면에서 1미터나 2미터를 상회하지 않았다. 수없이 반복된 떠돔을 그친 후에 나무의 씨앗은 뿌리를 내리더니 저절로 뾰족 새싹을 품어 올렸다. 또 눈이 내리고 바람도 불었지만 따뜻한 봄 햇살이 새싹의 상처를 핥으며 지나갔고 줄기를 세워 뿌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축척한 나무의 씨앗은 온전히 자신의 몸을 버리고 가지를 단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랐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이제 나무 스스로의 내면에 축척된 에너지와 우주의 정기가 합일 되어 이룰 수 있을 뿐이다.

 

 

  벌써 저 밑, 시간의 퇴적층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서린다. 나무의 뿌리에서 내뿜는 생의 의지들이 열기를 품어내는 까닭이다. 이제 ‘나’라는 나무는 내 열을 반사할 만큼 강해졌음을 느낀다. 그대들이 품어대는 열기를 모은다면 대지의 봄은 또 수많은 생명들의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내일에 가슴이 설렌다.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예감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쌓아나갈 내 시간들, 내 인연들  조각하나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