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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자요? 잘자요.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5. 12. 21.

  딱히 목적지랄  곳도 없다. 생각이 미치는데로 몇 군데를 떠올려보며 빙글빙글 돌다가 쭈뼟거리며 빼곰 문을 열어 제킨다. 즐비한 테이블이 텅비어 있다. 머쓱한 느낌을 단도리하며 테이블에 앉는다. 소주라도 한 잔 기울일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뭘까? 또 술기운을 핑계삼아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진다.  몇 년, 몇 개월 애쓴 보람도 없이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알코올은 허락도 없이 심연을 휘젖는다.  뿌연 흙먼지가 일렁이며 빚어진 낱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부메랑이 되어 가슴에 꽂히는 법... 참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만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쓸쓸함을 위로할 수 없으니...

비워낸 술병을 핑계삼아 자리를 털고 일어서니 자정이 넘은 시간... 거리는 젖어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마음의 단도리를 하며 걷는 발걸음이 자꾸 어긋난다. "봄밤인가,? "묻더니 "아니지 겨울 밤이지." 피식 웃는다. 녹음해 묻어 두었던 시를 노래삼아 읊조린다. 

 

 

 

 

 

 

봄  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자요?"

대답이 없다.

 그럼, 잘자요!!!

  "잘자요!!!"

음성녹음 003.3ga
2.45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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