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양공주 온다. 저 가시네 오늘은 작살 낼 거라."
중학생인 듯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침을 뱉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여학생 하나가 무심한 듯 아니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느리게 걷고 있었다.
“야, 온다, 저 가시네 암 것도 모르고.”
자기들 끼리 낄낄 거리며 앞 선 남학생을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서, 넛 뒤따른다. 그 때 여학생 뒤에서 구척장신의 또 다른 남학생이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뭣여? 저 뚱땡이 오늘 학교에서 학주에게 붙잡혀 있다고 했는데 어쩐 일이 다냐?”
앞 장섰던 남학생이 실망한 듯 뒤를 돌아보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러게. 학주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텐데.”
“병신새끼라 풀어 줬을 거라. 개새끼, 학주 주제에 뭔 동정심?”
수런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채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들이 깜박거렸다.
“다다, 기다려.”
뒤 따르는 남학생이 부르자 여학생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 학주가 빨리 놔줬네. 잔소리 하지 않았어?”
다다라 불리던 여학생은 멈춰 서 남학생을 기다렸다.
“응, 바로 풀어줬어. 선생님은 마 고 편.”
어눌하게 다다를 향해 걸어오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학생이 환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한 점의 티끌도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다다는
“넌, 천사야. 내 수호천사.”
라고 혼잣말을 했다.
“다다. 내가 말했어. 나랑 같이 가자.”
“그래. 그런데 오늘 할머니 아파. 빨리 가서 할머니 간호 하려고.”
“할마 아파?”
“응, 감기.”
“감기.”
“응, 어젯밤부터. 할아버지는 불편하시잖아.”
“응, 나도 가.”
“그래, 같이 가.”
둘은 어느 새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막 하나 둘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 잎들이 그들 뒤를 따라 나풀거렸다.
“나. 마 고 집. 책가방 놓고.”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붙잡았다.
“그래. 같이 갔다가 가자.”
아파트 입구를 따라 구부러진 골목으로 둘은 나란히 걸어갔다. 바로 아파트 담벼락에 허름한 주택이 있었고 남학생이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삐끗 대문을 밀었다. 그 뒤를 다다가 따라 들어갔다.
채 오 분도 안 돼 다시 나오더니 아파트 입구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오늘 마 고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신가봐?”
“응. 마 고 할바 기분 좋아.”
“다행이다. 아마 마 고 때문 일거야.”
“응. 마 고 할바 마 고 때문에 행복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곧 바로 계단 옆 일층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다.
“할아버지, 다다. 마 고도 같이 왔어.”
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문이 열렸다. 먼저 다다가 그 뒤를 마 고라는 남학생이 성큼 따라 들어갔다.
“마 고 왔어.”
“다다도.”
안쪽을 향해 둘은 큰 소리로 외쳤다.
“쉬. 할머니 주무셔. 조용.”
휠체어를 탄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둘을 향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쉬. 마 고 왔어.”
마 고도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입술에 자신의 손가락을 갖다 댔다.
“배고파요?”
할아버지가 둘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마 고. 배고파.”
“다다는 아니야.”
라고 말하며 다다는 할머니가 계신 방을 향해 서둘러 들어갔다. 차마 다다를 뒤 따르지 못한 마 고는 엉거주춤 그 자리에서 더듬거렸다.
“마 고, 할마 주무셔. 다다 먼저 보고 마 고는 좀 있다. 대신에 할바가 우유랑 빵 줄게. 식탁으로 올래?”
할아버지가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며 부엌 쪽으로 향했다. 엉거주춤 마 고는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살짝 밀며
“마 고, 우유, 사과. 다다도 우유, 사과”
“다다는 배고프지 않데. 마 고 먼저 먹고 다다는 나중에.”
휠체어의 할아버지가 마 고에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필시 안방에 누워있는 감기환자를 깰까봐 조심하는 눈치였다.
“알았어. 할바.”
마 고는 알겠다는 듯 할아버지를 따라 속삭였다. 눈치가 백단이었다. 냉장고에서 우유와 사과 두 개를 꺼내 식탁위에 놓았다.
“마 고 사과 씻을 수 있지?”
“네. 할바.”
마 고는 식탁위에서 사과를 들고 싱크대를 향해 가더니 쓱싹쓱싹 몇 번이고 씻고 나더니 한 입 크게 물었다.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아, 시다.”
“마 고 조금씩 먹어. 우유랑 함께.”
할아버지가 마 고를 향해 웃으며 타일렀다.
“알, 할바. 할바도 먹어.”
자신이 베어 먹은 사과를 도로 할아버지에게 내민다.
“할바 많이 먹었어. 어서 마 고 먹어.”
“알, 맛있어. 고맙습니다.”
마고는 성큼 할아버지를 향해 90도 배꼽인사를 했다. 휠체어 위의 할아버지도 그런 마 고의 머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마 고는 한 손엔 우유 잔을 입에는 사과를 물고 한 손으로 휠체어를 밀며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는다.
“할바도 우유.”
채 마시지 않은 우유 잔을 할아버지에게 내민다.
“응, 할바는 배 안고파. 어서 마 고 마셔. 마시고 나서 모자라면 냉장고에 또 있다. 마 고야. 알지.”
“응, 할바 고맙습니다.”
그런 마 고를 지긋이 응시하며 휠체어의 노인은
“마 고 할바도 안녕하시지?”
“응. 마 고 할바도 행복해. 마 고 때문에 행복해.”
“그래, 마 고 때문에 이 할바도 행복하단다.”
휠체어의 노인은 빈 말이 아닌 듯 마 고를 바라보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방 안에 있던 다다가 나온다.
“할아버지, 할머니 병원 모시고 가야겠어.”
“싫다고 하더니.”
“그래도 열이 너무 높아. 38도나 되는 걸.” “그래. 오늘 밤 지내보고 그래도 열 내리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데리고 가야겠다. 다다도 우유 마시고.”
“아니. 암 것도 먹고 싶지 않아. 얼른 씻고 오늘은 내가 밥 당번 할게.”
다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쪼르르 제 방안으로 들어 간다.
“마 고, 오늘 다다 밥 먹고 가?”
“그래. 그래라. 다다 솜씨 알지?”
“응, 다다 밥 맛있어.”
“그래. 밥은 맛있는데, 늘 국은 싱겁고, 나물엔 너무 양념이 많아. 솔직히 할마에 비해 젬병이야.”
둘은 다다의 흉을 보며 끽끽 거린다. 다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소리친다.
“두 분들, 지금 뭐 하셔? 또 내 흉봤지? 암튼 한 시도 가만있지 않고. 이 고귀하게 지상에 강림한 사막별을 흉 보다니. 마 고 그럼 못써.”
마 고를 향해 다다는 주먹을 휘두르는 채 하며 부엌 쪽으로 향한다. 곧이어 다다가 무엇이 신이 났던지 흥얼거린다.
다같이 원/ 빠빠빠빠 빠빠빠빠
날따라 투/ 빠빠빠빠 빠빠빠빠
소리쳐 호 (호)/ 뛰어봐 쿵 (쿵)/
날따라 해(해) 엄마도 파파도 같이 Go/ 빠빠빠빠 빠빠빠빠
신나게 Go/ 빠빠빠빠 빠빠빠빠
소리쳐 호 (호)/ 뛰어봐 쿵 (쿵)/ 날따라 해(해)
팝! 팝! 크레용팝! Get, Set, Raedy Go
마 고가 갑자기 마시던 우유 잔을 휠체어 노인에게 내밀더니 소파에서 일어서자마자 구척장신의 몸을 흔들고 비튼다. 필시 다다가 부르는 노래의 아이돌 가수들의 안무를 흉내내는 것이다. 구척장신과 어눌한 말씨에 비해 그가 흔드는 몸동작은 비상하게 아이돌가수들의 안무와 뒤지지 않았다. 휠체어 노인은 깜짝 놀라 마 고를 멍하니 쳐다봤다. 부엌에서 흥얼 거리던 다다가 오더니 마 고 옆에 서서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낀 채 안무를 펼쳤다. 그야말로 한 명의 관중을 두고 둘은 신이 나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마 고 또한 다다의 흉내를 내며 노래의 가사를 버벅거렸다.
“어, 둘 다 가수해도 되겠는 걸, 스카웃 제의 받아야 쓰겄다.”
라고 멀찍이 휠체어를 굴리며 노인은 그들의 노는 양을 흐뭇하게 바라다보았다. 노래가 끝나자 마 고는 다시 노인에게 넘긴 우유 잔을 뺐 듯 벌컥벌컥 남은 우유를 쏟아 부었다. 다다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우린, 명불허전. 맞지, 할아버지?
이마에 맺힌 땀을 앞치마로 닦아내며 다다는 할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하려는 듯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래. 명불허전. 암먼, 명불허전 맞지. 그래서 이번에는 이 곡과 노래라?
“응. 명불허전. 나가신다.”
다 마신 우유 잔을 소파에 둔 채 갑자기 신이 난 듯 마 고가 일어서더니 양팔을 쭉 펴며 깡충깡충 뛰며 이쪽저쪽 거실을 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노인과 다다는 한쪽으로 비키며 웃어 제킨다.
“그룹, 명불허전. 이번 축제에서도 인기 짱이겠다. 할아버지가 볼 수 없는게 유감이지만.”
“할바도 와. 할마랑 손 꼭 잡고 와.”
잠시 멈춘 마 고가 다다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흉내를 낸다.
“안돼, 마 고. 이번에는 우리들 축제야. 어른 들은 초대하지 않았어. 할아버지 미안. 다음에 학부모 초대 될 때 그때 오셔야 해, 응?” 어쩐지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할아버지에게 애교를 떠는 다다가 마 고와 노인은 예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주보며 웃었다.
“그래. 마 고야. 다음에 마 고 할바도 모시고 갈게. 이번에도 곡 인기상, 알았지?”
라고 말하며 노인은 엄지를 치켜 올렸다. 셋은 크게 웃었다. 그 소리에 안방의 문이 열리고 아프다던 할머니가 부스스한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나만 빼고 뭣 들 하는 거예요. 나, 또 왕따 시키고 셋이서만 논다 이거지?”
“어. 할마, 괜찮아?”
마 고가 얼른 할머니 곁으로 가더니 할머니 이마에 손을 짚는다.
“응, 할마, 아야야.”
할머니는 마 고에게 안기다시피 하며 몸을 기댄다. 한 손으로는 할머니 이마를 짚고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등을 안으며
“마 고, 의사 선생님?” “응, 마 고 의사 선생님, 이제 의사 선생님 마 고가 오셨으니 할마 괜찮아. 주사 한 방만 놔 줘요. 의사 선생님”
이라고 말하며 할머니는 얼굴을 바짝 마 고 가까이 붙이며 마고를 올려다본다. 마 고는 그런 할머니의 양 볼에 뽀뽀를 하며 주사를 대신한다.
“할마, 주사 두 방”
“앗싸, 마 고 선생님, 주사 두 방이 왜 이렇게 뜨겁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털썩 할머니는 주저앉는다. 그 옆으로 마 고가 바짝 엉덩이를 들이 민다. 할머니는 마 고의 몸에 자신의 힘없는 몸을 기대며
“마 고 할바는 좋겠다. 이렇게 튼실한 손자가 있어서.”
라며 휠체어 노인을 향해 미소 짓는다.
“지원, 일편단심, 지고지순, 다른 남정네에게 한 눈 팔지 말 것.”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휠체어 노인은 할머니에게 맞장구를 쳤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아파트 일층 계단을 넘어 15층까지 넘실거렸다. 늘 단출한 식구지만 그들의 웃음소리는 주변을 지나는 아파트 가족들에게 화제가 되곤 하였다. 집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생인 듯한 다다와 뚱보 마 고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아파트 주민들의 구미를 당기며 그들의 일상에 재미를 주고 있었다. 단지 바람결을 타고 퍼지는 그들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왠지 그들의 회색빛 일상이 갑자기 노랗거나, 자줏빛, 때때로 분홍빛으로 바뀌며 함께 웃게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어떤 이는 말했다.
“어쩌면 저렇게 고운 소리로 웃을까?
“혹시, 다다라는 소녀가 마법사의 딸인지도 몰라. 사하라에 있는.”
“그래, 뚱보, 마 고를 수호천사로 거느리고 잠시 모래 사막을 건너 이곳에 왔는지도 몰라. 그러니 이곳을 지날 때는 귀를 세우고 들어봐. 마법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유치원 아이를 둔 한 엄마가 귀를 쫑긋 거리며 자신의 딸에게 설명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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