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팝송, 국내가요 등

[스크랩] 에릭 사티 / 난, 널 원해 - Je Te Veux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7. 2.

 
에릭 사티 / 난, 널 원해 - Je Te Veux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J''ai compris ta d''etresse, 나는 너의 고뇌를 이해했다. cher amoureux, 사랑하는 애인이여, Et je cè de a tes vœux, 그리고 나는 너의 희망에 양보한다. Fais de moi ta maîtresse 나를 너의 애인으로 삼아주오. Loin de nous la sagesse, 지혜는 우리에게서 먼 곳에, Plus de tristesse, 더 많은 슬픔, J''aspire à l''instant précieux 나는 소중한 순간을 갈망한다. Ou nous serons heureux; 우리가 행복한 순간을
Je te veux 나는 너를 원한다. Je n''ai pas de regrets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Et je n''ai gu''une envie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갈망만은 갖는다 Près de toi, là tout près 너의 가까이, 그 곳 아주 가까이서 Vivre toute ma vie, 전체 나의 생애를 살아 Que mon cœur soit le tien 나의 심장은 너의 것이 되고 Et ta lèvre la mienne 그리고 너의 입술은 나의 것이 되고 Que ton corps soit le mien 너의 몸은 나의 것이 되고 Et que toute ma chair soit tienne 그리고 모든 나의 육신은 너의 것이 될 것을 Oui, je vois dans tes yeux 그렇다. 너의 두 눈속에서 나는 본다. La divine promesse 신성한 약속을 Que ton cœur amoureux 사랑에 빠진 너의 심장은 Vient chercher ma caresse 나의 애무를 구하러 온다. Enlacés pour toujours, 영원히 서로 얽혀 Brûlés des mêmes flammes 동일한 불길로 불태워져 Dans des rêves d''amours 사랑의 꿈속에서 Nous échangerons nos deux âmes 우리는 우리의 두 영혼을 교환할 것이다. Yoshikazu Mera 에릭 사티의 그대를 원해 (Je te veux for voice and piano)는 헨리 파코리의 시에 곡을 붙인 일종의 샹송이다. 괴팍한 성품과 기이한 작품활동으로 더 유명한 사티는 한때 몽마르뜨르의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기도 했는데, 이 곡은 그 무렵 작곡해서 어느 유명한 가수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금빛 천사여, 도취된 열매여, 마력의 눈동자여, 나에게 몸을 맡겨요. 그대를 원해요. 그대는 반드시 내 것이 될 거야. 와서 나의 고독을 달래 주세요. 나의 여인이여, 우린 최고의 행복을 맞이할 거예요. 그 순간을 기다리기가 어렵군요. 그대를 원해요. 당신의 풍성한 머리칼은 후광을 받아 빛나고 있어요. 우아하게 반짝이는 그대의 머리는 마치 성상의 둥근 빛과 같으니 내 마음이 그대 마음에, 그대 입술이 내 입술에, 그대 눈이 내 몸에, 그리고 내 몸이 모두 그대의 것이 된다면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요! 그래요, 당신의 눈동자엔 거룩한 약속이 빛나고 있어요. 그대의 사랑스러운 마음은 내 입맞춤을 두려워 하지 않을 거예요. 영원히 타는 듯한 사랑의 불길 속에서, 황홀한 사랑의 꿈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하나가 되겠죠! Jean-Yves Thibaude Je Te Veux 에릭 사티와 쉬잔 발라동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에릭 사티가 예술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죽은 지 38년 만이다. 에릭 사티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 것은 가난과 독신이었다. 그는 평생 ‘무슈 르 포브르’ 즉, ‘가난뱅이 씨’라고 불릴 만큼 가난했으며 단 한 번의 연애를 끝으로 독신으로 살았다. 묻혀 있던 그를 다시 발견한 것은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이었다. 1963년, 루이 말 감독은 자신의 영화 도깨비불의 영화음악으로 사티의 피아노 곡을 사용했다. 영화가 개봉되자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이 음악은 대체 누가 작곡한 거지? 뭐? 사티라고? 도대체 그가 누구야?’ 하며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마치 두껍고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는 계단을 올라가듯 툭툭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짐노페디나 그노시엔. 큰 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라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피아노 소리. 에릭 사티의 음악을 글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파리 몽마르트르로 이사 온 시골 청년 사티는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곤궁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술집에서 처음 쉬잔 발라동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 당시 이미 유명했던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사티는 절대로 겁먹을 것 같지 않은 야생의 냄새를 풍기는 그녀를 보며 ‘섣불리 손댔다가는 깨물릴 것 같군’ 하는 생각을 한다. 쉬잔 역시 로트레크의 어깨 너머로 사티를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그들이 다시 만난 건 2년 뒤의 일이다. 그가 한평생 사랑했던 여자, 쉬잔 발라동.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와 르누아르, 퓌비 드 샤반의 모델이며 그들의 연인이기도 했던 쉬잔. 사티는 그녀를 사랑했다. 사티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 둘의 모습은 거울처럼 닮아 있었다. 사티가 몽마르트르에서 만나 우정을 나누었던 소년 위트릴로는 쉬잔이 열여덟 살 때 낳은 사생아다. 사티가 쉬잔과 사귈 때, 사티의 집 문 앞에다 사티가 좋아하던 떠돌이 개를 죽여 상자에 담아 놓아두었던 소년. 그러나 먼 훗날, 부자와 결혼을 앞둔 쉬잔을 두고 사티가 몽마르트르를 떠나려고 할 때 함께 가게 해 달라며 사티에게 매달렸던 소년. 그 소년이 훗날 ‘몽마르트르의 화가’라고 불렸던, 몽마르트르에서 살고 몽마르트르에서 죽은 화가 위트릴로이다. 그는 어머니 쉬잔을 사랑했지만 쉬잔은 평생 그를 냉대했다. 그러나 위트릴로에게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한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위트릴로는 어머니 쉬잔을 사랑했고 쉬잔은 사티를 사랑했고 사티는 일곱 살 때 죽은 어머니를 사랑했다. 사티와 쉬잔이 헤어진 건 어머니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모델을 하면서 그의 그림을 흉내내기 시작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 가던 쉬잔은 사티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들의 동거는 반년 동안 지속된다. 어느 날 쉬잔과 사랑을 나누고 있던 사티는 맞은편 거울 속에서 벌거벗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벌거벗은 쉬잔이 “당신, 갑자기 왜 그래요?”라며 묻는다. 그날 이후로... 사티는 쉬잔과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되었다. 사티의 초상화를 완성한 쉬잔이 슬픈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걸 그릴 때 내 몸과 마음이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쩐지 이건 내가 그린 게 아니라, 내 몸 속에 들어온 당신 어머니가 그린 것 같아요.” 헤어지고 두 달 뒤 사티는 쉬잔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소. 그 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이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오.’ 그 뒤 사티는 애달프고 슬픈 음악들을 계속 작곡하였지만 한동안 압생트라는 독한 술에 빠져 살았다. 쉬잔은 그녀의 소망대로 프랑스의 표현주의 화가로 성공했다. 사티는 59세에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아르크에 있던 그의 방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 한 묶음이 발견되었다. 수신인은 모두 쉬잔 발라동이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쉬잔과 그의 아들 위트릴로와 개 한 마리가 나란히 있는. 그리고 뒷면에는 ‘사랑스러운 쉬잔 발라동의 사진’이라는 사티의 고딕 필체가 남아 있는.... 이 사진 속에 사티는 보이지 않는다. 사티가 죽은 뒤 이 사진을 건네받은 쉬잔이 개줄을 쥐고 있던 맨 왼쪽 사티의 모습을 도려낸 것이다. 30여 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겨우 배달된 사티의 편지를 받은, 61세의 유명인사 쉬잔은 이렇게 고백한다. “솟아나는 추억은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그 말줄임표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 숨겨진 의미 때문에 쉬잔은.. 사진 속 사티의 모습을 도려내 버렸던 것일까. 쉬잔을 떠올리며 작곡할 때, 사티는 생각했다. 쉬잔을 육체적으로는 소유할 수 없었지만 예술적으로는 가질 수 있다, 라고.. .. 결국 쉬잔에 대한 사티의 예술적 소유는 지금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티의 음악, 즉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연애. 사티가 쉬잔을 만난 건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였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티는 "나는 진실되지 못한 음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아카데미즘의 미명하에 남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작품을 체면 때문에 프로페셔널리즘이라 쓰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써야한다는 교훈을 조용하게 그러나 매우 설득력 있게 남겨 준 셈이다. 사티는 장 콕토의 참여로 발족된 프랑스 6인조의 창작 세계에 방향 설정을 해 준 장본인으로도 평가되며 어떠한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나 근대 프랑스 음악의 실험정신에 좋은 자극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1919년 사티의 음악을 접한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 음악은 비제, 샤브리에, 사티 외에는 없다" 라고 말했다. [옮긴 글] [글/조경란/소설가]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왜 왔을까. 즐겁기 위해서? 형벌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를 띄고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된 아이일때 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영화 ''사티와 수잔''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출처 : 뮤직러브
글쓴이 : 가전충효 원글보기
메모 :

'팝송, 국내가요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m Waits -The Fall of Troy   (0) 2016.07.16
9와 숫자들 - 창세기  (0) 2016.07.03
[스크랩] 에릭 사티 - Je te veux(난 널 원해)  (0) 2013.07.02
I knew these people in PARIS, TEXAS  (0) 2012.12.05
산장의 여인  (0) 2012.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