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가 무지 좋다. 정말 좋은 영화를 본 날은 며칠동안 그 영화속에서 산다. 뭔가에 허기져 있을 때 혹은 지쳐있을 때 영화 사냥을 나간다. 때론 기대감에 못미치는 놈들도 만나긴 하지만 대략 어떤 식으로든 상당부분은 나에게 선물로써 다가온다. 생각 나는가? 처음 종합 선물센트를 받았을 때의 기쁨과 포만감을, 난 역시 욕심이 많은 가보다. 또는 영화를 통해 난 긴 여행을 한다. 실재의 내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을 그리며 밟아본다. 여행을 다녀온 후의 나는 그들이 이끄는 사유속에서 자유롭게 폼나게 내 식으로 날아본다. 끝낼 수 없는 여행이며 그 여행을 통해 내키는 데로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쓸데 없이 장황한 말을 늘어 놓고 있는데 사실 이 영화를 소개 하고 싶어서 이다.
Still Life -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땐, 왜 제목이 still life일까 궁금했다. 영어로 '정물화'란 뜻을 왜 붙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인생이란 흐른다.' 라는 이중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무튼 궁금했다. 사실 중국의 감독들 오우삼이나 왕가위 , 장예모, 첸카이거 , 이안(대만) 감독들의 영화를 보아온 나에게 천안문 사태이후의 신세대 감독의 영화들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지아장커라는 감독이란다. 영화를 보고 난후에 밀려드는 사념을 채 추스리기 전에 급한 마음으로 평론가 정성일 씨의 해설을 듣고서야 그 감독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튼 제목 그대로 급변하는 중국의 사회상을 카메라 앵글을 따라 다큐멘터리를 찍는 듯
그렇게 그려나가는 영화 -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고 지루해지려나 생각 했는데 울지도 웃지도 않고 감동이 밑바닦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 같은 영화, 나도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 저런 영화한편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무성영화처럼 펼쳐보이는 화면만으로 인간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 너와 내가 공감하며 영화속에 내가 있고 또 네가 있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있는 그런 영화, 이 영화의 중국어의 실제 의미는 三峽好人 즉 " 산샤의 좋은 사람들" 이란 뜻이란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런지 나도 보는 내내 좋은사람이 되는 듯 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불러내는 초혼가, <스틸 라이프>
한 감독은 평생 단 한편의 영화만 만든다. 지아장커야말로 그렇다. <소무>에서 <플랫폼>과 <임소요>를 거쳐 <세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늘 변하는 것을 찍으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아장커가 만들어내는 단 한편의 영화는 <스틸 라이프>에서 마침내 정점에 올랐다. 이 영화는 완전하다. 그리고 여기엔 장이모와 첸카이거의 요즘 작품들에선 절대로 찾을 수 없는 현실의 중국이 있다.
지아장커는 서른살 무렵에 쓴 글에서 불안정한 자신의 생활을 떠올리며, 영화를 선택한다는 건 뿌리뽑힌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는 늘 자신의 삶과 영화를 일치시키는 감독이다. <플랫폼>이 그랬고, <세계>가 그랬으며, 이제 <스틸 라이프>가 그렇다. 이 영화엔 무너진 돌들이 있고 뿌리 뽑힌 사람들이 있다.
산밍은 16년 전 자신을 버리고 딸과 함께 가출한 아내를 찾아 주소만 달랑 들고 산샤로 찾아든다. 그러나 산샤의 그 주소지는 댐 건설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수몰되어버렸다. 션홍 역시 소식이 2년째 끊겨 있는 남편을 찾아 산샤로 온다. 물어물어 가까스로 남편을 찾아낸 션홍은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지아장커의 영화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스틸 라이프>가 가장 잘 알려준다. 이 작품의 로케이션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야기를 직접 보여준다. 철근 콘크리트 댐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의 자랑’이면서, 수몰로 113만명의 이주민을 낳은 ‘중국의 그늘’이기도 한 산샤댐 주변 거주지가 곳곳에서 골조를 드러내며 철거되는 모습은 때때로 초현실적인 풍경으로까지 보인다. 지아장커의 영화론 지극히 이례적이게도 폐건물이 로켓처럼 하늘로 쏘아올려지고 UFO가 하늘을 나는 장면이 들어 있는 것은 결코 미학적인 무리수가 아니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통째로 수장된 곳에서 낙관과 진보로 허옇게 분칠한 미래의 유령이 배회하는 모습은 사실 우리에게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루에 수십만명이 새로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경제성장률이 10%가 넘는 중국의 이면에 그려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며 아우성치는 복마전은, 개발도상국의 허허로운 고속 성장을 막 이뤄내며 채찍질로 질주하려는 어느 나라의 밑그림이기도 하다.
<소무>에서 <첩혈쌍웅>의 한 장면을 넣었던 지아장커는 <스틸 라이프>에서 다시금 마크라는 이름의 청년이 <영웅본색>에 매혹되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홍콩 폭력영화를 즐겨보며 건달의 꿈을 꾸었던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린다. 이어 무너져내리는 돌더미에 깔려 죽고 마는 마크의 시신과 함께 스스로의 과거를 강물 위에 띄워 보낸 뒤 눈을 들어 조국의 현실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토해낸다.
영화 속에서 세계화를 찬양하듯 백지를 달러로, 유로화로, 인민폐로 거듭 바꾸어내는 마술쇼는 강제로 푼돈을 뜯어내려는 사기이고, 미래를 약속하듯 “어디든지 데려다준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오토바이 기사들이 도달한 곳은 이미 수몰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드는 많은 사람들을 근접 촬영하며 시작한 이 영화는 줄 위를 위태롭게 걷는 단 한 사람을 멀리서 비추며 쓸쓸하게 끝난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끼리 담배와 술과 차와 사탕처럼 너저분한 기호품들을 주고받게 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희망을 주고받으려는 이 영화의 손길을 끝내 뿌리칠 수 있을까. 부박한 현실이 최고의 예술을 만드는 역설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순 없을까. <스틸 라이프>는 예술이란 다가올 것들을 찬양하며 흥청대는 권주가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불러내는 초혼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한 영화다. [ 뉴스 글_이동진 ] | 씨네21 | 2007.
[PREVIEW]<스틸 라이프 三峽好人>-담백한 붓 터치로 그려낸 ‘희망’
CAST 산밍ㆍ한산밍 | 션홍ㆍ자오타오
DETAIL 러닝타임ㆍ108분 | 관람등급ㆍ12세 관람가
산밍은 16년 전에 도망친 아내와 딸을 찾아 산샤로 향한다. 하지만 아내가 써놓고 간 주소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은 정부가 댐을 건설해 물에 잠겨 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아내의 가족들은 문전박대하며 되레 화를 낸다. 산밍은 건물을 부수는 막일을 하며 무작정 산샤에서 아내를 기다린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어딘가, 2년 전에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션홍이 산샤로 찾아든다. 그러나 남편의 곁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
한 폭의 정물화를 스크린에 옮겨온 느낌이다. 양츠강 중상류 지방에 위치한 산샤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백한 붓 터치로 그려냈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찾아 산샤에 왔지만 굳이 목소리 돋워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랑을 원망하지 않는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당한 양의 대사를 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기교 없이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한다. 댐 건설로 인해 현대식으로 재정비되고 있는 산샤에서 두 남녀가 각자 사랑하고,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모습을 지아장커는 제목 그대로 정물화(still life)처럼 그려낸다.
영화의 배경인 산샤 지역은 양츠강 중상류의 세 협곡을 통칭하는 지명이다. 과거에는 10위안 지폐에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금의 모습은 황폐하다. 여전히 강은 아름답게 흐르지만 주변부는 물에 잠기고, 매일매일 때려부숴지고 있다. 2천여 년간 그곳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정부의 개발정책 때문에 한순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아장커는 영화 속에서 은유적으로 정부의 이런 댐 건설 정책을 비판한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산샤에 온 두 남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정부에게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지는 돈보다는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문제가 돼, <스틸 라이프>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도 현재까지 중국 내에서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각기 오래 전에 헤어진 아내와 남편을 찾아 산샤에 흘러들어오는 산밍과 션홍은 각각 한산밍, 자오타오가 연기했다. 지아장커의 전작들인 <플랫폼>(2000), <임소요>(2001), <세계>(2004) 등에 출연하며 두 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듯하다. 감독의 이종사촌인 한산밍은 고향에서 광부로 일한 경험을 살려 ‘연기 아닌 연기’를 훌륭하게 선보인다. 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역할들은 산샤의 실제 주민들이 연기했는데, 다들 제 몫을 해내 영화 속 풍경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 풍경 자체는 가난이라는 때에 찌들어 있지만 고요해서(still) 아름답다. 또한 소리 내어 울거나 화내는 대신, 주인공들은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담담하게 살아나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어깨 너머로 보이는) 외줄타기처럼 삶이란, 위태롭게 흘러갈 때도 있지만 희망을 간직하면 아름답게 이어지니까.
[ 뉴스 글_김지현 기자 ] | 무비위크 | 2007.06.11 18: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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