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에 좀 마음을 성가시게 하는 일이 있어서
우울했었습니다.
에공, 가을 햇볕이 아직 부족한 갑다.
오후 점심 끝나자 마자, 부르릉 은파로 달렸죠.
그야말로 긴 바바리 코트를 입고, 진한 썬글라스로 모양을 내며
주황색 스타킹에 얼룩무늬 스카프를 늘어뜨리고
내가 좋아하는 한적한 은파길을 유유자적 할 수 있는 내 일상이
축복처럼 여겨지던 시간이었습니다.
은파 수변은 구절초가 만발해있고
그 위를 나비들이 들락거렸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데며 꽃과 나비의 만남을 염탐하는데
신기하게도
나비들은 한 꽃에 오래도록 머물지 않고 이꽃저꽃
지 내키는 데로 쉬임없이 옮겨 다니더군요.
활짝 핀 예쁜 꽃만 아니라
시들고 못생긴 꽃에도 나비가 앉는 걸 보고
혼자 피시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답니다.
좀 남살스런 속내지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비와 꽃을 남자와 여자로 비유하는 것을 기억하건데
아하, 나비란 놈도 꼭 예쁜 꽃에만 앉는 건 아니구먼...ㅋㅋㅋ
웬 위안인겨? 뭐 이런 생각이...
그렇습니다.
살다보니 모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화려한 사람들에게만
아는 체 하는 인생이 아니고
이렇듯 못생기고 한 두 잎은 모자라고 시들어버린 인생에도
가끔씩 누군가는 아는 체를 하는 구나 하는 감격,
제가 넘 가을볕에 취해 감성적이 되었었나요?
나 역시 누군가 연약한 듯하고 좀 모자라고 성질도 더러운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바로 이런 이치이며
또 누군가는
단순하고 무식하며 사는 일에 서툰 나에게
아는 체를 하고 가는 인생도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자연의 이치임을 깨닫는 시간 이었습니다.
이런 이치를 깨닫는 나, 가을 여인이
몇시간을 꽃과 나비에 취해
도를 깨우치니
이만 하직할 시간이 가까운겨 아닌가벼?
ㅎㅎㅎ 괜실히 너스레를 떨어보며
수변 의자에 앉아
내 좋아하는 김연수를 만나니,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걸어 옵디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텐데
그때는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그게 최고의 인생을 사는 법이다."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p15)
뭐여, 나보다 나이도 어린게 세상사는 이치에 벌써 통달했단 말여?
괘씸죄를 물어 이 가을 김연수, 너에 다시한 번 빠져볼까나...ㅋㅋㅋ
좀, 내 김연수를 향한 질투의 힘을 작용해서
그의 말을 난 이렇게 고쳐 보고 싶었답니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도 좋은 것이 나올텐데...
그때에도 내 마음이 흐르는 쪽으로 더 좋아하자. 못한 것이든, 더 좋은 것이든 간에...
그게 내 인생을 사는 최고의 덕이다."
뭐 이런 말씀.
이렇게 생각하니
아, 난 너무 자아가 강혀...
정말 못말리는 자아도취자여
그런 생각에 쬐께 거시기 하기도 했지만
우짜 겠어요. 이게 제 꼴인디...
다, 제꼴데로 사는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게 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아닌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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