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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76 - 창조적 글쓰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8. 3.

 

나는 왜 책을 읽을까? 고독이라는 멋스러운 단어와의 접선이 이루어지기 전, 외롭다 그런 느낌을 벗어나기 위해  친구가 필요했던 아주 어린 꼬맹이 시절, 그래 바로 나는 친구로서 책을 읽기 시작한 듯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지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해소시켜 줄 가장 큰 인연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현세의 소풍이 끝나는 날 까지 책과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책과의 인연의 시작을 알게 해 주었던 모든 지나온 상황들이 참 행운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그럼 과연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일차적인 이유를 넘어 다른 차원의 무엇들을 가질 수 있을까? 가끔씩 내 자신에게 묻곤 한다. 그 물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색깔의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오늘 마침 애니 딜러드의 창조적 글쓰기라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어제 한가한 틈에 잠깐 시립도서관을 방문했었다. 대출한 책을 반납하고 읽고 싶었던 책들을 다시 대출하는 의식은 항상 설레임을 동반한다. 2층으로 이뤄진 서가를 천천히 돌며 책들이 내뿜는 아우라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 전집을 읽어야겠다고 작심하고 우선 그의 소설의 기술을 대출하려고 서가에서 찾았는데목차를 쭉 훝어 내려가려니 아뿔사 요즈음처럼 더운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가벼운 무엇인가를 찾던 중에 필이 꽂혀 찾아낸 것이 바로 창조적 글쓰기란 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필형식의 책이어서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데 그 질문 속에 바로 책으로의 여행을 통해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삶이 고양되며, 삶의 가장 깊은 미스터리가 파헤쳐질 것이라는 희망에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작가는 경험 속에서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가장 깊게 연관된 모든 것을 분리시켜서 그것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는 문학적인 형태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새롭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지나온 시절을 작가가 확대해서 극화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에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작가가 지혜와 용기와 의미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계몽시키고 영감을 부여할 것이라는 희망에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가장 깊은 미스터리의 위엄과 힘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작가가 그 미스터리로 우리 마음을 압박해 줄 것이라는 희망에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 P102

 

 

또 하나 요즈음 읽고 있는 김연수의 굳빠이, 이상을 읽다가 그의 글쓰기의 작가정신에 그만 의기소침하고 말았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 바탕 위에서 글을 풀어나가는 김연수식의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글쓰기의 개념을 놀이의 일종으로 시작하는 나 같은 아마츄어리즘에 젖어있는 애송이들에게 그야말로 을 띠게 만드는 롤 모델로서의 그의 글쓰기는 한껏 부풀어오르고 있는 작가로서의 꿈에 여지없는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고 난 또한 그의 칼날에 내 자존심을 여지없이 베어버리고 말았다. 그간 수권의 글쓰기 서적들을 통해 내가 찾은 결론은 그야말로 내 멋데로 쓰기였다. 그런데 과연 그 내 멋데로, 내 생각이 가는 데로, 자판이 가는 데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기본적인 글쓰기의 형식마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다루었던 소양밖에 가지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글을 쓰는 법에 대한 배움은 이제 열망이 되었고 그 열망으로 인해 오히려 내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정보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여기 애니 딜러드의 창조적 글쓰기에 내가 찾고 있었던 답을 만났다.

 

 

누가 내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줄까?”

 

지면과 지면이, 그 끝없는 공백이 그가 천천히 메워나가는 영원함의 공백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망치면서도 그의 자유와 행동할 권리를 주장하고,

건드리는 모든 것을 망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냥 불투명하게 여기 존재하는 것보다는 더 낫기 때문에 건드린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가 무뚝뚝하게 메워나가는 지면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그의 끈기라는 까다로운 실마리로 천천히 메워나가는 지면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가능성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지면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끌어 모을 수 있는 불완전한 장점들로 맞서보는 그의 죽음의 지면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그 지면이 그에게 글 쓰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p89

 

 

글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들은 샘물처럼 뒤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가득 차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게 된 것을 혼자만 간직하려는 충동은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나눠주지 않으면 결국 본인에게도 손해이다.

나중에 금고를 열어보면 재만 남아 있을 것이다.” P111

 

 

주저리 주저리 나의 하소연을 한방에 날릴 글을 쓰는 법,  바로 이것이란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후 누군가가 그의 화실에서 노인의 필체로 견습생에게 써놓은 종잇조각을 발견했다.

 

그리게, 안토니오. 또 그리게, 안토니오. 그리고 또 그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화가는 그리고 또 그리고 작가는 쓰고 또 쓰고, 정공법 바로 그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