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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은밀한 1,000원의 기쁨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4. 24.

 

 

오랜만에 전에 글쓰기를 배웠던 선생님께서 만나자는 전화를 하셨다. 예약도 있고 마음은 바쁜데 모처럼만에 말씀 하시 길래 10시에 약속을 잡았다. 혈압 약을 타러 병원도 가야하고 시장도 가야하고 마음은 급했지만 그렇다고 아침을 안 먹을 수 없는 일, 병원 가는 길에 일해옥에 들러 콩나물국 한 대접 꿀꺽, 이 집은 깍두기가 참 시원하다. 5000원을 지불하려 지갑을 여니, 헐 겨우 6000원이 지갑 안에 들어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손님들이 전부 카드로 지불하는 통에 현금이 씨가 말랐다. 은행 가기에는 시간도 모자라 할 수 없이 밥을 먹고 병원에 가려니 주차를 해야 하는데 평소 같으면 구 시청 주차장에 1,000원의 주차비를 내고 안전빵으로 주차를 한다. 근데 그 1,000원이 오늘 아침엔 나에게 10,000원 처럼 보인다.

 

ㅋㅋ 지갑 속의 1,000원을 아껴야 한다. 사명감으로 길가 주차할 곳을 찾는다. 겨우 구두 방 옆에 주차를 하렸더니 구두 방 사장님, “어이, 여보쇼, 그곳엔 주차하면 어떻케요?” 한마디 하신다. 속으로,“지땅도 아님서.” 군시렁 거리며 겨우 차를 그 앞쪽 보신탕집 출입문을 비켜 주차를 한다. 또 보신탕집 사장님 홱 문 열고 나오셔서 “이봐요. 우리 손님들 주차할 곳이에요.” ㅋㅋ, “자기 땅도 아님서, 드럽고 치사하다.” 속으로 투덜대며 겉으론 살짝 아양을 떤다. “ 사장님, 저 10분만요. 10분 안에 차 빼드릴께요.”

 

요로코롬 겨우 주차를 끝내고 병원에 가서 병원비 3,200원도 약값7,100원도 선생님 드릴 빵값 15,000원도 전부 카드로 지불한다. 그래 아직 1,000원이 남았지...오늘 시장에서 장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셈하기가 바쁘다.

 

 

야, 이 1,000원으로 무엇부터 사야하지...머리를 굴리며 빵집을 나오는데 길가 좌판 할머님들이 앉아 계신다. “그렇다, 파, 쪽파가 가장 시급해,,,ㅋㅋㅋ 쪽파 1,000원 어치를 산다.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1,000원 밖에 없는데 쪽파 1,000원 어치만 주세요.”

“ 뭘 그랴, 이것 한 뭉치 2,000원잉께 쫌 더 줄게 2,000원 어치 사그랴.” 할머니 내 맘도 모르고 강매를 하신다... 지갑을 열고

“저, 지갑보세요. 1,000원 밖에 없어서 그래요.” 할머니 웃으시면서

“부잣집 마나님 지갑이 그 모양이셔.” 한 말씀 하시고 1,000원어치를 주신다. 분위기만 부잣집 마나님이지 속빈 강정!!!ㅋㅋㅋ 속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이렇게 쪽파 1,000원어치를 검정 비닐 봉투에 담아 차를 타고 오면서 왜 그렇게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는지,,, 그래, 나 오늘 주차비 1,000원을 아꼈지,,,ㅋㅋㅋ 그 1,000원의 소중함을 이렇게 몸소 느끼다니,,, 남들은 20대, 30대에 느꼈을 그 경험을 난 이제사, 내 오십을 넘은 나이에...

 

 

차를 타고 오면서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든다. 내 삶, 언제나 남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진 내 생활경험, 뭐든 항상 남들보다 늦게 찾아오는 깨달음...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내 삶이 공허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은 이 기분... 항상 지상 10m, 20m 위를 떠다니며 사는 것 같은 현실감의 부재,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 현실의 생활이 없었다는 느낌, 꿈꾸는 그렇게 공상의 세계를 헤멘 내 생활, 책임져야 할 것, 책임져야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는 공허한 자유... 왜, 나는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수없이 밀려드는 상념들...

 

참 신기한 것은 내가 지금 겪는 이 모든 어려움들이 내 삶의 현실감을 증폭시키며 내가 살아있는 소소한 기쁨을 배가 시킨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아, 이제사 나는 사는 것에 대한 현실감, 은밀한 1,000원의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철드는 50대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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