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부터 “인형의 집” 노라가 되어 집을 뛰쳐나왔다. 유책배우자가 나였으므로 딱히 주장할 것도 없는 처지라 그냥 내 짐만을 가지고 나왔는데 막상 손에 쥔 것이 없어서 지금은 보증금100만원에 월 15만원 짜리 방 두 칸에 살고 있다. 젊었던 시절 인생의 부침을 선택해 살았던 경험으로 지금 나의 이런 삶도 그런 데로 감사할 뿐이다.
그렇다. 가만 생각해보니 타인들처럼 나는 운명이나 혹은 가족 때문에 삶의 부침을 겪었다기 보단, 내 스스로 지랄 떨며 사느라고 외줄타기 광대처럼 아슬아슬 그 부침을 즐겨왔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보광동, 부암동, 신촌이나, 옥수동의 옥탑방을 전전하기도 했고 한때는 시드니에서는 비록 세집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수영장이 딸린 호화주택에 살아보기도 했다.
지금, 남편 덕분에 널따란 아파트에서 외로움에 못이겨 온갖 고상(?)을 떨며 살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어느 날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색깔의 삶을 쫒아 노라가 되어 과감히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지금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내 삶을 나름 즐기고 있다. 외로움의 다리를 건너 고독의 경지에 도달했고 그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마저 생겼으니 어찌 나의 선택을 자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13일 이었다. 내 방 월세 내는 날... ㅠㅠㅠ 돈이 한푼도 없었다. 통장잔고 딱딱 긁어 은행이자 넣고 나니 통장은 제로!!! 어이할까?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15만원쯤 빌려줄 친구가 열사람도 더 있으련만 차마 방세 줄 15만원의 용도를 말 할 수 없었다. 조마조마 기다린다.
“나의 방세를 해결해줄 오늘의 고결한 고객님들이여!!! 제발 오늘 만큼은 현금으로 계산하셔서 늦게나마 주인집 눈치 안 보게 해 주세용!!!” 하루 종일 빌고 또 빌었다. 그 날 하느님도 잠시 출타 하셨나보다. 나의 간절했던 바램도 기도도 영 효험이 없었다.
그렇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며 집주인 아주머니의 차가 주차장에 없기를... 그래서 안 부딪히고 내일을 맞이하길...그렇게 기원했건만 딱허니 주차장에 주인댁의 차가 주차돼 있었고...불편한 심경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녘 “띡”하고 대문 소리가 들린다. 오메, 퍼뜩 오금이 절인다. “방세 받으로 왔으면 어떻게 말하지,” “오늘 부친다할까, 아니면 밤에 돌아오면 드린다 할까?” 내 나이 몇이니? 이런 일로 오금이 절인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발자욱 소리만 나도 대문이 열리는 소리만 나도 두런두런 사람소리만 나도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3일간, 불과 몇 시간 밖에 집에 머물지 않았음에도 불과하고 안절부절...ㅋㅋㅋ *싸고 뒤 안 닦은 사람모양 좌불안석... 그렇게 시간은 갔고 드디어 월요일 16일 가맹비가 입금되어 잽싸게 방 월세를 부칠 수 있었다.
토, 일요일 우아한 도보여행과 사진을 찍으면서도 부치지 않은 월세에 대한 찝찝함을 훌륭하게 포장도 하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폼도 잡아보며 잘 견뎌온 내 자신에 대한 이 뿌듯함!!! 아마 이제 조금씩 면역력이 생겨 다음번 월세가 행여 채워지지 않아도 “내 뱃째라.” 우길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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