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창작들

새우젓 김밥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5.

새우젓 김밥

오늘 보행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는 아흔 살의 엄마와 함께 은파호수공원 벚꽃 길을 걸었다. 화창한 날씨 탓인지,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 탓인지, 휴일 탓인지 유난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벚꽃은 아직 절반쯤 피어 있었다. 터질 듯 부푼 꽃망울들이 가지마다 매달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이미 활짝 핀 꽃들이 하얗게 빛났다.

 

그 길 위를 다정히 손을 잡고 느리게 걷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나란히 걸으면서도 자꾸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좁혀지는 간격, 웃음이 번지는 얼굴들. 아흔의 엄마는 보행기를 잠시 멈추고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눈빛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왜, 엄마? 아빠 생각나서?"

"무슨, 이리 좋은 날 함께 있다면 좋았을 것이지만."

 

엄마의 얼굴에서 잠깐 쓸쓸함을 보았다.

 

"엄마, 아빠와의 좋은 추억 생각나는 것 없어?"

 

엄마는 그저 긴 한숨만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 얼마나 많은 날들이 들어 있을까. 엄마 대신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김밥이 생각났다.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부르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오는 것, 냄새처럼 색깔처럼, 가슴 한켠을 불쑥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김밥을 싸는 일은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일이다. 냄비에 고슬고슬 밥을 짓고 참기름과 소금을 살짝 뿌려 주걱으로 살살 섞는 것부터가 이미 시작이다. 달걀지단을 부치고, 단무지와 햄을 썰고, 게맛살과 우엉, 데친 당근을 나란히 준비해 놓으면 도마 위가 작은 채색화처럼 환해진다. 김발에 김을 올리고 식혀둔 하얀 쌀밥을 얹은 뒤 깻잎 몇 장을 깔고, 재료들을 색색이 배치해 꼭꼭 눌러가며 두툼하게 말아낸다. 그렇게 완성된 김밥을 얄팍하게 썰어 색을 맞춰 그릇에 담는 순간, 그것이 김밥 싸는 재미의 으뜸이다. 요즘은 골목마다 이천 원짜리 삼천 원짜리 김밥이 넘쳐난다. 그래도 손수 싸는 김밥에는 그 어느 것도 흉내 낼 수 없는 손맛이 있다.

 

오늘처럼 벚꽃 길을 걷다가 살며시, 아버지가 그리운 날이 있다. 목까지 타고 오르는 긴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의 끝에는 언제나 새우젓 김밥이 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소작 농사를 지으셨다. 그러다 때마침 군산에 영진주철이 생겼고, 아버지는 그곳에 입사하셨다. 워낙 성실하고 우직하신 데다 손재주도 많으셨던 분이라 남들보다 빠르게 일을 익혀 작업 반장까지 오르셨다. 소소한 권력도 생기고 인정도 받으시니, 동네의 송씨 아저씨, 박씨 아저씨, 말더듬이 최씨 아저씨까지 너댓 명을 입사시켰다. 추석이나 설날이면 돼지고기 몇 근쯤의 뇌물도 받으신 것 같다. 명절이면 왠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집에서 군산 팔마재 공장까지는 20리 길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그 길을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녘에 나가셨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고 한참 지나서야 들어오시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야간 작업이 있는 날은 며칠씩 얼굴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아마 그때가 영진주철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웃집 초등학교 선생님 월급이 겨우 20만 원 안팎이던 시절에, 아버지는 28만 원, 30만 원을 가져오셨다. 어머니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슬며시 자랑하시는 소리를 듣고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큰딸,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 3년 터울로 올망졸망 4남매를 거느리고, 뽀얗고 야무지고 살짝 사납고 부지런한 아내 곁에서, 해마다 쌓이는 논밭 문서를 바라보며 하루 열 시간, 열두 시간씩 주물 일을 하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행복의 열쇠였을 것이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복한 시간이, 지금 돌아보면 우리 남매에게도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 시골 아이들이 좀처럼 맛보기 어렵던 삼립 카스테라를 일주일에 두세 번 반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공장에서 새참으로 나눠주던 카스테라를, 아버지는 당신은 드시지 않고 집으로 하나씩 가져오셨다. 어머니는 그것을 정확하게 네 등분해서 참새 새끼들처럼 쪽쪽 받아먹는 아이들 입에 하나씩 넣어주셨다. 칼로 네 등분하는 과정에서 부서진 카스테라 가루, 그것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럼, 아버지의 새참은 무엇이었을까. 수북한 흰쌀밥과 구수한 누룽지, 그것이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식단이었다.

 

새벽녘이면 어머니는 도시락을 두 개씩 쌌다. 귀하디귀한 김 위에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을 얹고, 그 위에 오직 하나, 새우젓만 넣은 김밥이었다. 재료도 없고 살림도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 김밥이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달걀도 없고 단무지도 없고 햄도 없이, 오직 새우젓 하나만 들어간 그 단순한 김밥이. 어쩌면 그것은 김밥이 아니었다. 새벽이 빚은 한 줄의 사랑이었다. 자는 척 누워 아버지와 어머니가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훔쳐 듣던 새벽의 온기, 그 온기째로 말려낸 김밥이었다.

 

그런 김밥이 유난히 그리운 날이면, 색색으로 예쁜 김밥을 싸서 아버지 산소로 소풍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벚꽃 잎 하나 어깨에 내려앉는 봄날, 커피 한 병을 챙겨 발걸음 가볍게. 아버지 앞에 김밥을 펼쳐 놓고 이렇게 전하고 싶다.

"아빠 덕분에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어요. 그 새벽마다 아빠가 혼자 삼키셨던 것들이, 우리에게는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물론 이건 그냥 상상이다.

 

마침 여동생이 엄마와 몇 주를 함께 보내고 싶다고 비행기편을 미루면서 엄마 곁에 있게 되었다. 봄이 가기 전, 엄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새우젓 대신 아보카도와 연어가 들어간 화려한 김밥을 들고 나들이를 가볼 생각이다. 봄은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소풍을 이미 우리 마음에 선물했다.

 

 

#새우젓김밥 #추억의맛 #아버지의사랑 #어머니와함께 #벚꽃길산책 #가족이야기 #따뜻한기억 #김밥에세이 #봄날의추억#그리움 #은파호수공원 #수필 #lettersfromatrav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