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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난다, 2017(초판 2008)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3. 23.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난다, 2017(초판 2008)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 산문집을 읽고

  산문집이나 수필집을 드물게 읽는다.

느리게 읽혀지는 그 여백의 공간 속에서 나는 자꾸 길을 잃는다. 미친년이 달밤에 내몰려 춤추듯, 온갖 생각의 편린들이 제 갈 길을 잃고 내 안에서 뒤엉키다 며칠씩 마음살을 앓게 한다. 아마도 아직 내 안에는, 그 글들이 내보이는 여유를 온전히 소화해낼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탓이리라. 그 여백을 감당하기에 내 일상이 너무 빽빽하거나, 혹은 너무 지쳐 있거나.

 

  그런데 이 책이 내게로 걸어왔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책 제목 하나가 나를 붙들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누군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 세우는 것 같은 그 제목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융이 말하는 동시성의 원리였을까. 마침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지쳐 있던 어느 계절의 끝자락, 책은 스스로 내 손 안으로 들어오듯 그렇게 왔다. 그리고 나는 그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도종환. 잠시 정치 외출을 했지만 나에게 그는 여전히 서정시인이고 그리고 이 책은 그가 수년간의 손질 끝에 다시 세상에 내놓은 산문집이다.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이 충청도 보은 법주리 산방에 홀로 머물며 5년을 보내는 동안 써온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자연의 아름다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 모든 사물에 대한 관대함과 배려. 그런 것들이 담긴 글들이라고 책날개에는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읽으며 이미 무언가 물러서는 것을 느꼈다. 방어하던 것들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책 78쪽에서 나는 오래 멈추었다.

강연호 시인의 시구 하나가 인용되어 있었다.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알레그로와 비바체로 몰아치던 여름의 바람이 뜨거운 남쪽 바다 위 어딘가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수굿한 바람이 천천히 건너온다”

 

도종환은 적었다. 안단테, 안단테, 하면서 낮게 노래하듯 다가오는 바람의 속도를 살갗으로 느끼며 우리도 삶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고.

이분쉼표. 나는 그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어 두 번 읽었다. 바람이 쉬어 간다. 바람도 쉬어야 할 때를 안다. 그것을 악보의 언어로 받아 적은 시인도, 그 시구를 끌어다 9월의 숲을 설명한 산문가도, 그 문장을 어느 계절의 끝자락에 읽고 있는 나도, 모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

그리고 189쪽에서 또 한 번 멈추었다.

 

차윤정 박사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었다. 나무가 열 장의 잎을 생산한다면, 그중 두 장은 자신의 성장에, 두 장은 꽃과 씨앗에, 두 장은 자신을 지키는 물질에, 두 장은 스스로에게 저장되는 몫으로 쓰이고, 나머지 두 장은 숲의 다른 생물들을 위한 것이라고. 나무는 자기 것 열 중에서 둘을 숲에 내어준다. 계산하지 않고, 아까워하지 않고, 조용히.

나는 그 대목에서 책을 덮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반복되는 소란스러운 삶 속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내어주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너무 꽉 쥐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불현듯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인지 허기인지 모를 감각이 가슴 어딘가를 천천히 눌렀다.

 

구구산방. 도종환이 5년을 머물며 이 글들을 써낸 그 산속 공간의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구구산방. 어딘가 쓸쓸하고 어딘가 넉넉한 울림이 있었다. 그 숲속의 생명들이 펼치는 향기를 담아 내놓은 소박한 초대 앞에서,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해온 나는 어느새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초대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책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숲으로 오라고 닦달하지도, 도시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하고 물을 뿐이었다. 그 물음이 강요보다 깊이 닿았다. 언제라도 와도 좋다는 말, 올 수 있을 때 오면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읽는 내내 나는 여러 번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여백이 많은 책이라는 것은 읽는 사람이 그 여백을 채우며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글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독자 자신이 들어가 앉아야 하는 글. 나는 그 여백 속에서 내 일상의 소음들과 잠시 거리를 두었고, 오래전에 덮어둔 어떤 조용한 감각들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산문집을 드물게 읽는다고 했다. 여전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내게로 걸어왔고, 나는 그 초대에 응했고, 9월의 이분쉼표 같은 어느 저녁에 나는 비로소 잠시 멈추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숲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고, 나는 언제고 다시 그 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무겁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이처럼 가볍게, 그러나 제 안에 신명 하나 품고서,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하고 조용히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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