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하는 예술가, 박찬욱을 다시 만나다』
지난 학기 영상 문학론 수업에서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작은 전환점 같은 감정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한국 영화보다는 외국 영화에 더 익숙했고, 자연스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건 아마도 시대적 취향이자, 은연중 내면화된 문화적 편견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업을 통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나의 그 익숙함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국 영화는 낯설지 않지만, 그 깊이를 성찰한 적은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은 나에게 하나의 성과이자 기회였다. 한국 영화의 감수성, 연출의 밀도, 감정의 결을 새롭게 읽어내고, 그것을 나의 사유와 언어로 정리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며칠 전에 2025년 추석 연휴에 SBS에서 2부작으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 《뉴-올드보이 박찬욱》은 단순히 한 거장의 필모그래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박찬욱이라는 인간이 예술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고, 어떻게 자신을 갱신하며, 어떻게 타인과 함께 창작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초상화에 가까웠다.
박찬욱이라는 이름은 단지 영화감독을 지칭하는 호칭을 넘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은 장르적 쾌감 너머에 인간의 내면을 향한 집요한 탐구가 있으며,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단순히 서사 속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의 삶과 사유를 흔든다.
특히 그의 창작 철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새로움’에 대한 집요한 추구였다. 그는 “내 영화는 남의 영화와 달라야 하고, 내 이전 영화와도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스타일의 변화나 장르적 실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반복에 대한 두려움, 익숙함에 대한 저항, 그리고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낯선 것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박찬욱에게 새로움은 선택이 아니라 윤리이며, 예술가로서의 존재 이유다. 동시에 “영화는 완성되는 순간 죽는다”는 그의 말은, 예술이란 완성의 순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미완의 상태에서 끊임없이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박찬욱은 그 불안과 허무를 견디며, 다음 질문을 향해 나아가는 자다. 그의 영화가 늘 사랑, 죄의식, 용서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윤리를 다루는 이유도, 그가 예술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매력은 박찬욱 감독 본인의 솔직한 목소리와 더불어, 정서경 작가, 송강호, 이병헌, 탕웨이, 박정민 특히 류승완 감독과 등 오랜 시간 함께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생생한 증언이 교차하며 감독의 다면적인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영화는 늘 사랑의 다른 이름을 묻는다”는 송강호 배우의 말이나, 이영애 배우가 언급한 “대사 대신 눈빛만 찍자”고 했던 일화는 그의 작품이 장르적 쾌감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리듬에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준 부분은 그의 협업에 대한 태도였다. 그는 감독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권위보다는 동료애를 중시한다. 배우 이병헌이 그를 ‘선비’라 칭하고, 현장에서 “어떡하니”라는 말 한마디로 갈등을 정리하는 모습은, 그가 창작의 현장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감독이 화를 내면 존경이 사라진다”는 조명감독의 조언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는 일화는, 그의 리더십이 단지 인격적 덕목이 아니라, 예술적 윤리의 실천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는 창작이란 타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존중과 침묵, 그리고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몸소 증명해 왔다.
지난 학기 수업에서 제공된 작가론 자료는 박찬욱의 세계관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영화는 인간의 본성, 금기와 욕망, 복수와 속죄, 그리고 탐미적 형식미학에 대한 집요한 천착으로 구성된다. 그는 인간이 윤리, 종교, 법, 문화에 의해 억눌린 상태에서 어떤 극단적 상황에 놓일 때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박쥐》와 같은 작품에서는 금기를 위반하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불가항력적인지를 보여주며, 신마저 망각하게 만드는 욕망의 힘을 탐구한다. 그의 복수 서사는 단순한 대리만족이 아니라, 죄의식과 속죄의 윤리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으며, 복수의 완성은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는 비관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또한 박찬욱의 영화는 화려한 미장센과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유명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외화내빈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형식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의 스타일은 이야기의 핵심을 전달하는 살아 있는 언어이며, 시각적 쾌감과 철학적 성찰이 공존하는 독창적 미학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된다”는 명제를 통해, 인간이 복수라는 정념에 사로잡힐 때 어떻게 괴물로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과정을 날것 그대로 목격하게 만든다.
결국 《뉴-올드보이 박찬욱》은 단순히 한 감독의 연대기가 아니라, 인간의 죄의식과 연민, 그리고 용서라는 묵직한 주제를 평생 탐구해 온 한 예술가의 철학적 초상화다. 지난 학기 영상 문학론 수업에서 우리는 그의 영화 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했으며, 박찬욱의 작품은 나에게 어떤 인식의 지평을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 나는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던져진 질문들을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박찬욱의 예술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흔들고, 성장하는 ‘뉴-올드보이’의 여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앞으로 던질 ‘새로운 질문’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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