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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성혜령의 단편 「원경」을 읽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5. 19.

 

 

 

 

 

 

현대소설강독 수업의 이번 주 토론 작품은 2025 16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의 성혜령의 단편 원경이다.

 

성혜령의 단편 원경을 읽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부드러우며, 나무와 풀은 제각기 녹음의 결을 달리하며 제 생을 한껏 확장하는 중이다. 살아 숨 쉬는 계절의 충만함 속을 걷다가 문득,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이란 뭘까. 그 질문은 너무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늘 다시 낯설다. 감정이라고 말할 수도, 선택이나 신념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요즘의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사랑이란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감정으로만 머물지 않는 무엇이다. 나 아닌 타인의 세계에 머무는 능력, 그리고 그 타인이 바뀌거나 무너져도 함께 있으려는 의지, 그런 머무름. 좋을 때만이 아니라, 어긋날 때, 병들 때, 늙을 때, 그 사람의 불완전함까지 나의 삶에 받아들이려는 자세. 그런 사랑 앞에서 나는 번번이 무력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적처럼 강인해지기도 한다. 사랑은 결국 내 안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가장 단단한 부분이 동시에 드러나는 거울이다. 나는 그런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 동시에, 그 앞에서 나의 이기심이 얼마나 빈번하게 작동해 왔는지를 안다.

 

그런 사유 끝에 나는 한 편의 소설을 떠올렸다. 성혜령의 원경,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과, 그럼에도 돌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마침내 구덩이를 파고 다시 삶을 응시하려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

 

성혜령의 단편소설 원경은 유방암 가족력을 지닌 연인 원경과 미래를 꿈꾸던 남자 신오가 불확실성과 고통의 예감을 견디지 못해 이별하고, 몇 년 뒤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인내, 돌봄과 책임, 생존과 죄의식이라는 주제를 치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24년 자음과 모음에서 펴낸 산으로 가는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으로 나는 문학동네의 202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다. 산이라는 구체적이자 상징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삶의 불가항력성과 인간의 회피 본능, 그리고 그 이후를 끈질기게 묻는다.

 

소설은 신오가 연말 건강검진에서 복막 전이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살아왔기에 병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문득 과거의 연인 원경을 떠올린다. 과거 원경은 자신에게 유방암 가족력이 있다고 털어놓았고, 신오는 그 고백을 듣고 난 뒤 원경이 병에 걸릴 가능성과, 자신이 감당하게 될 미래의 돌봄과 고통을 상상하다 결국 이별을 선택했다. 그러나 병을 마주한 신오는 다시 원경과 그녀의 이모가 있는 산속 집을 찾는다. 그 집은 산불로 이미 사라진 뒤이고, 남은 것은 그들이 매일같이 오르며 불씨를 확인하는 산과 잿더미뿐이다. 신오는 그들과 함께 타버린 산을 오르며, 불 속에서 남겨진 것들과 자기 내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회피의 흔적을 파내듯 구덩이를 판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기억과 죄의식, 그리고 관계의 흔적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원경은 신오, 원경, 이모 세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각 인물은 병과 상실이라는 공통된 조건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신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책임과 인내, 예측 불가능한 미래까지 감당하는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친다. 그는 스스로를 상식적인 사람이라 여기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수반해야 하는 돌봄의 무게와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 그는 한없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물일 뿐이다. 원경이 혹시 내 가슴에서 뭔가 만져지면 알려줘라고 말했을 때, 그는 곧장 수술, 치료, 병원 생활을 상상했고, 그 상상이 두려워 원경과의 미래 자체를 포기했다. 이후에도 신오는 철저한 자기 관리에 몰두하며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말기암 진단이라는 우연 앞에서 무너진다. 결국 그는 자신이 회피했던 것이 병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당하고자 하는 사랑의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자각은 뒤늦었고, 그는 끝내 구덩이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신오는 깊이 나는 구덩이에 빠진 듯 외로움을 느꼈다는 서술은, 신오가 살아 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자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원경은 훨씬 더 강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검사 결과를 담담히 말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남겨진 삶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픈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인내가 필요하니까라고 말하는 그녀의 진술은, 신오가 두려워했던 바로 그 사랑의 형태를 요약하는 동시에, 이 소설 전체의 윤리적 핵심을 이룬다. 그녀는 이모가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산으로 내려올 만큼 돌봄의 실천적 윤리를 체화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모는 이 소설에서 가장 묵직한 인물이다. 가부장제 가족 내에서 아무도 탐내지 않던 산과 폐암자가 딸린 선산을 상속받았고, 그곳에 혼자 집을 짓고 살아왔다. 결혼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는 그녀는 산을 일구며 자신의 삶을 꾸려낸다. 산불로 집이 타버린 이후에도 그녀는 매일 산에 올라 남은 불씨를 확인하고, 재 속에서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묵묵히 다듬는다. 그녀는 불에 탄 나무들은 토양에 영향을 주어 다른 나무들이 자란다더라, 불이라는 상실이 끝이 아니라 생명의 토양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이모에게 삶이란 다시 살아내는 것이며, 돌봄이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다. 성혜령은 이모라는 인물을 통해,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어떻게 가장 근본적인 삶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원경은 단순한 이별 서사나 병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상실 이후의 태도, 사랑과 삶의 책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내는지를 묻는 이야기이다. 신오가 불탄 산 위에서 구덩이를 파고, 뼛조각을 응시하는 장면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장면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응시이기도 하다. 이모, 보살, 원경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잿더미 위에 남겨졌지만, 그들은 기억하고 돌보며 살아남은 자들이다. 이들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상실 이후의 윤리를 감당하는 삶을 의미한다. 반면 신오는 과거의 회피 속에서 여전히 멈춰 있는 자이며,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채 구덩이 안에 머물러 있다.

 

산과 불, 구덩이와 뼛조각, 재와 나무 뿌리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은 모두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압축한다. 불은 삶의 모든 기반을 지워버리는 동시에 새로운 생의 조건이 된다. 잿더미 속 구덩이는 죄의식과 과거의 응어리를 파내는 상징이며, 그 안에 쌓인 뼛조각은 생존하지 못한 자의 흔적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할 기억의 무게다. 구덩이를 함께 파고, 잿더미 속을 응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을 다시 살아내는 행위이자, 과거와 마주하려는 몸짓이다.

성혜령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 ‘책임이란 무엇인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윤리를 요구하는가와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신오는 그 질문들 앞에서 도망쳤고, 그 결과로 삶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이르렀다. 반면 원경과 이모는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그것을 실천해 왔다. 결국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인내와 돌봄, 책임의 형태로 확장되는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감당해 낸 자들만이 진정으로 살아남는다.

 

물론 이 작품이 완벽하다고만은 할 수는 없다. 몇몇 지점에서는 아쉬움과 조심스러운 비판도 가능하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인물 심리의 비대칭성이다. 소설은 신오의 내면을 매우 섬세하고 복잡하게 조망하는 반면, 원경과 이모는 다소 상징적인 인물로 기능하며, 그들 역시 가지고 있을 법한 갈등이나 감정의 결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원경은 윤리적 우위에 놓인 인물처럼 묘사되지만, 그가 감내해 온 고통이나 갈등은 표면적으로만 제시되어, 서사 내내 신오의 성장과 반성을 떠받치는 장치로 머무는 인상이 있다.

 

또한 상징의 과잉 역시 하나의 비평 지점이 된다. 산불, 잿더미, 구덩이, 뼈 같은 이미지들은 구조적으로 잘 설계된 장치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의도된 느낌을 주며 독자의 해석을 과도하게 유도한다. 그 이미지들이 아름답고 효과적인 동시에, 너무 완결된 기호 체계처럼 작동하면서 작품의 숨통을 다소 조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후반부의 보살님과 금괴, 그리고 멸종 동물의 뼈라는 설정은 서사의 리얼리즘과 어긋나는 장르적 이질감을 야기한다. 그 에피소드들은 분명 흥미롭고 이야기의 층위를 넓히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초반의 정서적 밀도와 비교하면 문체적, 정서적 톤이 이탈하는 인상을 준다. 결과적으로 후반부는 서사의 긴장감보다는 우화적 장면들의 병치로 다소 산만하게 흐를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징과 절제된 문체의 조합은 때로 독자에게 정서적 거리감을 유발할 수 있다. 신오라는 인물이 너무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어, 독자가 그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에서 그의 고백을 듣는 느낌으로 작품을 접하게 된다. 그 거리감이 소설의 사유적 깊이를 살리기도 하지만, 감정의 공명보다는 이해의 층위에 머물게 할 위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포함해 본다면, 원경은 일정한 미학적 완성도와 윤리적 주제 의식을 갖춘 작품이지만, 그 서사의 구조와 장치들이 가지는 기능적 한계와 감정의 편향도 함께 짚어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은 쉽게 흘려보내기 어려운 어떤 침묵을 남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소설을 읽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살아남은 사람인가? 이 질문은 단지 소설 속 인물에게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금의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물음이다.

 

나는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꿈꾼다. 누군가의 고통을 나의 일로 여기고, 누군가의 쇠약함 앞에서 떠나지 않을 용기를 가진, 그렇게 사랑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싶다. 그 꿈은 진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그 진심 앞에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쉽게 나는 나의 이기심에 굴복했는지를. 사랑이 인내라면, 나는 아직 그것을 끝까지 살아낸 적이 없다. 누군가의 고통을 나의 삶에 온전히 들이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나는 안다. 상상 속에서조차 그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멈춘 적이 있었고, 나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길 원했다. 그러나 사랑이란 단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나 애틋한 감정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미래까지 끌어안으려는 노력, 끝까지 남아 있으려는 자세, 즉 사랑 너머의 살아 있음의 윤리까지도 내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대답 앞에서 동시에 두 가지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대답 앞에서 동시에 두 가지를 느낀다.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간절함, 그리고 그 사랑 앞에서 번번이 무력해지는 나의 이기심. 이 양가적인 감정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나란히 놓인다. 그 둘을 함께 끌어안는 태도, 그것이 지금의 내가 사랑을 향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사유다. 그리고 그 사유의 끝에서 나는 다시 계절을 바라본다. 무성한 신록이 앞다퉈 피어나는 5, 생명은 매일같이 반복되고 확장된다. 사랑도 그런 것이기를, 나 역시 언젠가 그 흐름 안에서 조금 더 깊고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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