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문장
[100-25] 4기 김은
[원 문장]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김주일 옮김
"나는 뤼시아스에게도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값으로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쓰라고 충고하네."
나의 문장)
위의 문구는 뤼시아스가 연설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비꼬며 수사학(소피스트들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 간의 대화 내용이다. 파이드로스는 뤼시아스의 연설을 소크라테스에게 읽어주었고, 뤼시아스의 연설은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오히려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유익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뤼시아스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 감정적 애착이 없는 관계가 더 안정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관점을 제시했으나, 소크라테스는 이를 빈정거리며 조롱한다. 뿐만아니라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뤼시아스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수사학적 기교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하기 위함이다. 뤼시아스의 연설은 감정 없이 이성적으로 관계를 선택하라고 권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무의미하게 취급하며 이러한 논리가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즉 소크라테스는 사랑이 단순히 계산된 판단이나 이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고양시키는, 신적인 영감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적 신념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이 인간의 영혼을 진리와 선으로 이끄는 힘이자, 내적 성장을 자극하는 고귀한 경험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사랑을 뤼시아스와 같은 단순 수사학적 접근이 아닌, 진리에 다가가려는 철학적 탐구의 형태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진정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플라토닉 러브’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의 희열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중학교 때였을까? 앙드레 지드(André Gide)의 소설 『좁은 문(La Porte Étroite)』을 읽었는데 사촌 간이었던 알리사와 제롬이 등장한다. 제롬은 어릴 때부터 알리사를 사랑하지만, 알리사는 자신의 신앙적 이상과 금욕적 삶을 선택하여 제롬과의 사랑을 거부하는데 알리사는 육체적 사랑을 넘어서 영적 순수함을 지키고자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며, 자신의 구원과 도덕적 완전함을 위해 세속적 욕망을 억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은 결국 그녀에게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고, 제롬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앙드레 지드는 소설에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종교적 신념의 딜레마를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고, 지나친 도덕적 이상이 인간 본성을 거스르며 오히려 삶의 활력과 행복을 빼앗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사춘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읽은 대문호의 소설을 나는 내 식으로 해석하며,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플라토닉 러브’의 위대함, 순수함에 대해 열망을 가졌고, 그로 인해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판타지가 내 삶의 중반기인 거의 40에 이르게 되었으니, 어찌 썩소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플라토닉 러브’를 상당히 오해한 까닭에 결국 변변한 사랑한 번 못한 나의 청춘을 지드의 탓으로, 아니면 플라톤 탓으로라도 돌려, 애꿎은 나의 무지를 변명하고 싶은 시간! 이제야 비로소 플라토닉 러브의 진정한 의미를 헤아리게 된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에로스(Eros), 즉 사랑의 신을 매우 심오하고 상징적인 존재로 묘사하며 에로스를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나 감정이 아닌, 영혼을 진리와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으로 설명한다. 플라톤은 에로스를 우리의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중요한 매개체로 여긴다. 에로스는 인간에게 하늘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고, 진리를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신적 영감”인 셈이다. 즉 플라톤은 영혼이 하늘의 이데아의 세계를 기억하게 만들며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에로스의 역할이라고 한다. 이러한 에로스의 힘은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어, 지혜와 미덕에 도달할 수 있게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영적 성장과 자기 성찰을 통해 완전함에 이르도록 돕는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특히 플라톤은 에로스를 “광기”(divine madness)로 묘사하며 이는 일반적인 미친 상태가 아닌, 신성한 감동에서 비롯된 고양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신적인 광기는 영혼을 순수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으로 이끌며, 단순히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인간을 고양시키는 힘으로 여긴다. 즉 에로스를 단순한 감각적 만족을 넘어선 더 높은 진리와 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신성한 모습으로 그린다. 바로 이 지점이 플라톤의 철학적 사랑(플라토닉 러브)의 개념이 된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플라토닉 러브는 단순한 육체적 관계를 넘어 정신과 영혼의 성숙을 추구하는 사랑의 한 단면이겠다.
가을이 되니, 마음이 추워지니, 왠지 모르게 끌리는 ‘사랑’이란 단어! 노년의 나의 사랑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 오랫동안 사유할 일이다.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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