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동네문화 카페의 프로그램 중 ‘영화와 철학’이라는 과목에서 영화 ‘메멘토’에 이어 두 번째 영화로 1987년에 독일 감독 퍼시 아들론이 연출한, 미국과 독일의 합작품인 ‘바그다드 카페’를 시청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 주제곡이 늘 귓가에 맴도는 내가 손꼽는 내 20대 영화 중 하나라고나 할까? 판타지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고 행복한 결말과 상승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흐뭇함이 오래도록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영화였다. 한국에서 2021년에 재개봉되었으니,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 번씩 더 보게 되는 영화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여러 철학적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데 각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토론할 만한 여지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중, 브렌다는 지치고 날카로워진 모습, 그녀는 무능한 남편을 쫓아내고 가난과 일상에 지친 채 카페를 운영하고 하며 ‘실존적 위기’를 겪는 상태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야스민의 등장으로 브렌다의 삶에 변화가 시작된다. 물론 브렌다는 처음에 야스민에게 의심과 경계심을 보이지만, 점차 야스민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태도를 바꿔나간다. 즉 브렌다는 야스민과의 교류를 통해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되고, 카페를 열심히 운영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한편 독일인으로 미국에 남편과 함께 여행왔지만 남편과의 싸움으로 홀로 낯선 환경에 던져진 야스민은 소위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세계-내-존재'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야스민은 자신의 선택으로 바그다드 카페라는 새로운 환경에 머물며, 카페에서 마술 쇼를 선보이고 청소를 하는 등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이 선택한 개인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야스민은 브렌다와 카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며 그녀의 행동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특히 브렌다와 야스민의 관계 발전은 실존주의적 '공동-존재'의 개념을 잘 보여주는 예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흑인과 백인, 가난과 부유함)을 가졌지만, 비슷한 삶의 무거움에 공감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해 나가는, 즉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형성하는 예가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브렌다와 야스민은 각자의 존재 의미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데 이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황량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등장한다. 야스민이나 브렌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영화 세트를 그리던 백인 화가로, 카페 근처에 캠핑카를 두고 지내며 작품 활동을 하는 인물인 콕스는 영화 속에서 야스민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며,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찾고, 인간적 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브렌다의 아들 살라모는 어떤가?
아마도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지만 그 나이에 엄마 없는 아들을 낳아 자신의 엄마인 야스민에게 아들을 키우게 했던 살라모는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야스민이 오기 전까지는 카페에서 아무도 그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았던, 특히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시끄럽다고 핀잔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야스민은 살라모의 피아노 연주를 진지하게 듣고 감상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야스민은 아마도 독일인이었기에 유럽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상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살라모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함으로써 살라모에게 자신감과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될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기도 하고 야스민에게 바흐를 헌정할 정도로 그녀의 존재에 영감을 받으며 그의 음악적 성장의 기회를 찾는다. 즉 야스민과 살라모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 관계를 넘어, 서로의 예술적 감성과 인간적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깊은 유대관계로 발전하며 이를 통해 영화는 음악과 예술이 가진 소통의 힘, 그리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렇듯 인간의 고독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 자아실현을 통한 자존감 회복, 공동체 속에서의 소속감, 그리고 깊은 우정 등이 고독을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가 기대하는 '마술의 순간'이 나와 너의 삶에도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불어 영화는 일상의 반복성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에 대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야스민은 원래 무기력하고 고립된 상태였지만, 황량하고 지루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바그다드 카페에 머물면서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며 변화하기 시작하고 특히, 야스민이 카페를 색다르게 꾸미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카페 자체가 따뜻한 공동체의 장소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야스민이 피아노 연주와 마술 공연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단순히 일상을 벗어나는 차원을 넘어, 주변 사람들과 진정으로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통해 영화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이러한 변화를 통해 감독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인간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 주목할 것은 두 주인공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의 전개는 여성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페미니즘적 요소를 읽을 수 있겠다.
이러한 영화의 다층적인 내러티브와 캐릭터들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실존주의와 자아실현, 문화적 다양성과 공존, 변화와 성장의 철학, 페미니즘과 여성의 연대, 예술과 삶의 관계 등에 대한 많은 사유를 이끈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넘어, 일상의 마법 같은 순간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자아 발견과 삶의 의미 찾을 수 있는, 바로 이 자리 이 순간이지 않을까?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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