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9] 4기 김은 플라톤의 『파이돈』을 읽기 시작하며
플라톤의 『파이돈』
“사람들이 즐거움이라 부르는 이것은 얼마나 기이한 어떤 것인 듯싶은지! 그것은 그것에 반대된다고 생각되는 것, 즉 고통과는 얼마나 놀랍게 연관되어 있는지! 이 둘이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려 하지는 않을 텐데도, 만일 누군가가 둘 중 하나를 좇아 그것을 취하면 필연적으로 늘 다른 한쪽도 취하게 되게 마련이건든. 마치 그 둘이 한 머리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말일세.”
나의 문장)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플라톤의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로, 죽음의 의미와 철학자의 태도에 대한 대화체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직전 감옥에서 영혼 불멸설, 상기설, 이데아론, 철학적 삶의 중요성 등을 논하다가 마침내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여정을 함께 하게 되어서, 이건 나에게 마법과 같은 시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위의 원 문장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제자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며 육체적 고통과 쾌락의 관계를 통해 영혼의 불멸성과 철학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화 중 하나로 쾌락과 고통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는 말이겠다.
그에 따르면 쾌락과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한쪽을 추구하면 다른 쪽도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고 이는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상태들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삶과 죽음 역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육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새로운 형태(즉 영혼의 불멸 상태)의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며, 이를 통해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철학적 성찰을 통해 얻어질 수 있으며, 진정한 지혜와 자유는 육체적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데 있다. 아마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제자들에게 철학적 삶을 통한 진리 탐구와 영혼의 정화를 강조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맞이할 것을 가르치면서, 즉 그의 철학적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으로, 죽음을 담대히 맞이했음을 유추할 수 있겠다.
얼마 전 강의실에서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에피쿠로소의 쾌락주의를 강의하면서 물은 적이 있다. “당신들은 어떤 상태를 행복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학생 하나가 손을 들며 “저는 고통을 제거한 상태를 행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가감 없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20대 초반의 학생이 저런 사유를 하고 있음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순을 넘은 나는 그런 식의 사유를 한 번도 하지 못했음에 더 놀랐다. 이 예를 든 것은 위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쾌락과 고통, 삶과 죽음의 관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어느 한쪽 상황에만 몰려 있을 때, 반대쪽 상황 혹은 다면적인 사유를 통한 적절한 ‘나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나는 오늘 이 문구들을 만난 듯싶다.
앞으로 읽게 될 『파이돈』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시간, 수천년 전의 나의 스승들을 만나는 즐거움, 한편으로는 고통(그들의 가르침에 따른 현재의 내 삶에 대한 비판)조차 달달할 것이 기대되는 시간, 오늘도 멋진 하루가 되기를!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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