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과목: 국문학 개론
과제명: 『금오신화』를 읽고 독후감 쓰기
24년도 1학기 마지막 리포트를 끝낸 아침,
이제 기말고사 준비에 매진,
목표는 All A+
그러나 결과는?
시대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 김시습의 『금오신화』
일반적으로 문학은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문학 작품은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탄생해 시대를 반영하고 비판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영웅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전통, 사상, 문화적 가치, 신념, 관습 등을 표현했으며 1949년 집필 당시 기준으로 먼 미래인 1984년을 지배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오세아니아에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겪는 사건을 다룬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인 『1984』는 20세기 중반의 정치적 분위기를 반영해 전체주의와 감시 사회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또한 현재 한국 문학으로서 2016년에 출간되어 이후 2019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현대의 젊은 여성 세대가 겪는 현실과 고충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인 성차별 문제를 다루며 미투 운동과 맞물린 현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인 젠더 평등과 여성 인권,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여 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에 큰 몫을 담당했음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들어선 현대 문학 또한 인터넷 소설, 전자책 등의 다양한 멀티미디의 형식을 빌어 복잡하고 다층적인 시대의 거울로서 시대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과제로 읽은 한국 문학사 최초의 한문 단편 소설집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또한 당대의 시대 상황과 가치관, 풍습과 개인의 신념 등을 기저에 깔고 만복사에서 벌어진 한 기이한 사건을 다루며, 사랑과 집착, 그리고 윤회의 주제를 담고 있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사회적 신분 차이와 사랑의 비극을 통해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드러내며 사회를 비판하고 인간 본성인 욕망과 도덕적 갈등을 탐구하는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유교 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에 따라 기자조선을 강조하는 조선 전기 지식인들의 역사관을 드러내며 쓸쓸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로 부벽정에서의 신비한 경험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조화를 묘사하는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불교의 윤회 사상과 이상적인 세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유학자로 출발해 승려 신분으로 살아가며 동시에 우리 도교사(道敎史)에도 발자취를 남긴 김시습의 사상적 경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넌지시 환기시키는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와 철학적 사유와 불교적 세계관의 반영, 용궁이라는 환상적인 배경 속에서 인간의 현실적 갈등과 꿈을 동시에 탐구하며 환상과 현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려는 어린 시절 세종의 후의(厚意)로 구경했던 궁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투사하는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의 5편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와 인간의 본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단순한 서사 구조를 넘어 다양한 주제와 심오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는 김시습의 뛰어난 상상력과 철학적 깊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간 존재와 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데 그의 인생의 여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띠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시습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깨쳤고 세 살에 시를 지었는데 다섯 살 때는 세종대왕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숙부(수양대군)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죽음으로 내몬 사건을 알고 당시 21세였던 김시습은 크게 통곡하며 읽던 책을 전부 불태우고 승려가 되어 방랑길에 올랐다고 한다. 나중에 세조가 법회를 열고 김시습을 청했지만 미친 척하며 뒷간에 뛰어들어 나서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에게 당면했던 시대는 패륜이 정의를 압도했던 까닭에 시대와 자신의 고뇌의 해답을 찾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고 현실에서의 이룰 수 없는 자기실현의 욕구를 몸부림치며 작품 속에 녹아냈을지도 모르겠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쓰고 나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감정을 술회했다고 한다.
“등잔불 돋으며 밤새도록 향 피우고 앉아 인간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글을 한가롭게 짓노라.”
설화, 패관문학, 가전체 등의 우리나라 서사 문학의 전통에 『전등신화』같은 중국 전기 소설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다고도 말해지는데(뒤에 다시 언급) 『금오신화』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 날카롭게 드러나고 정교한 구성과 서정적 묘사가 돋보이는 한편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독창성과 자주성을 보여준다고 알려졌다.
『금오신화』의 원본은 당대부터 희귀본이어서 간혹 문헌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는 있으나, 대한제국 말엽까지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일본에서 간행되어 전해오던 목판본 『금오신화』를 최남선(崔南善)이 발견하여 잡지 『계명(啓明)』 19호를 통해 1927년에 국내에 소개했고 해당 목판본은 1884년(고종 21) 도쿄(東京)에서 간행된 것으로, 상하 2책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1884년 일본 간행본은 상권이 32장으로 서(序) · 「매월당소전(梅月堂小傳)」 · 「만복사저포기」 · 「이생규장전」 · 「취유부벽정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하권은 24장으로 「남염부주지」 · 「용궁부연록」 · 발문 · 평(評)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매월당소전」과 발문 2편 가운데 1편은 한말의 정계 및 종교계에서 활약했던 이수정(李樹廷, 1842~1886)이 쓴 것이다. 하권의 말미에는 이 책을 ‘갑집(甲集)’이라고 한 기록이 있어, 본래의 작품 수는 5편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1884년 간행된 목판본 『금오신화』는 1653년(효종 4) 일본에서 간행된 판본을 중간한 것이며, 1653년 간행본의 대본은 오쓰카(大塚彦太郎)의 가문에서 오랫동안 전래되던 자료였다.
이보다 앞선 시기 조선에서 간행된 『금오신화』 목판본이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해당 판본은 중국 다롄도서관 소장본으로, 1책의 목판본이다. 다롄도서관 소장 조선 간행본은 명종연간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권수면 하단에 파평후학(坡平後學) 윤춘년(尹春年)편집(編輯)이라는 문구가 수록되어 있다. 중국 다롄도서관 소장본은 [양안원장서(養安院藏書)], [율전만차랑소장(栗田萬次郞所藏)] 등의 인문이 답인되어 있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약탈된 문헌이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이후 중국 다롄도서관으로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한국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1884년 도쿄에서 간행된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1952년에는 정병욱(鄭炳昱)에 의하여 필사본으로 된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이 발견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임진왜란 이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며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전설로만 남아있다 1927년 최남선에 의해 일본에서 원문이 발견되고 최남선은 해제를 덧붙여 『계명』 19호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다.
이 작품이 창작된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30대의 어느 작자가 경주의 금오산 용장사(茸長寺)에 은거하면서 지은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 배경으로는 우선 문학사적 전통을 들 수 있다. 나말려초의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전기(傳奇) 또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이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에 의해 마련된 서사 문학적 전통이다. 또한 창작 당대에 있었던 사회사 및 사상사의 새로운 전개가 창작 배경이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의 건설자들은 주자학을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채택해서 지배 질서를 확립하고 전제개혁(田制改革)을 단행하여 집권층의 생활 기반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역사적 운동의 과정에서 이른바 신진사류로 불리는 일련의 소외된 지식인들은 민중의 처지에 동조하면서 새 왕조의 이념적 모순과 사회적 폐단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상을 모색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김시습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이(理)를 만물의 본질로 보는 주자학의 주리론(主理論)이 지배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론이라고 공격하면서 기(氣)를 만물의 본질로 보는 일원론적(一元論的) 주기론(主氣論), 곧 기일원론(氣一元論)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사상을 수립하고, 이에 입각하여 만물을 객관적 · 합리적으로 인식하고자 했다. 여기서 개인과 사회의 대립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면서 그것이 작품 창작의 또 하나의 배경으로 제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상적인 면에서는 불교사상 및 도교사상 등 다른 사상과의 관련성도 무시될 수 없으며, 따라서 크게 보면 유자(儒者) · 선승(禪僧) · 방외인(方外人)으로서의 김시습이 상호 이질적인 다양한 사상적 근거 위에서 나름대로의 글쓰기 방식을 개척하고 정립하는 과정에서 『금오신화』가 창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래적 요인으로서 명나라 구우(瞿佑)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도 고려될 수 있으나 이 영향설은 한때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어 『금오신화』는 『전등신화』의 단순한 모방작품 정도로 처리되기까지 했으나, 계속된 새로운 연구에 의하여 그러한 영향설은 크게 극복되었다. 『전등신화』의 영향이 있기 이전에 이미 우리 문학사 자체 내에 『금오신화』가 창작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과 요인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금오신화』는 『전등신화』의 수준을 크게 능가하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전등신화』와 『금오신화』 사이에 소재 및 내용상의 유사성이 있어 영향이 일단 인정되지만 유사성을 모두 그 영향의 결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언한 바처럼 『금오신화』에 수록된 다섯 작품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을 더 자세히 부연해 보면,
첫째,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등장인물로 하여 한국인의 풍속, 사상, 감정을 표현하였다.
둘째, 소재와 주제가 특이한 관계로 결합되어 훌륭한 문학적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소재에 귀신, 염왕, 용왕, 염부주, 용궁 같은 비현실적인 것이 많은데, 이러한 소재가 작품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수단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구실을 한다. 김시습은 귀신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서 행동한다든가, 현실 밖에 별도의 세계가 존재한다든가 하는 민간 속신을 논설을 통해 일체 부정했을 뿐 아니라, 작품구조에서도 그런 것이 실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는 작품에서 귀신을 통해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별세계를 통해 별세계의 존재를 부정했다. 비현실적 소재를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현실적인 것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고, 거기에 내포된 주인공과 세계의 대결을 더욱 날카롭게 부각시켜 문제의식을 부여했다. 이러한 방법은 고도의 창작기교의 하나인 역설법이며, 그것은 주인공의 요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계의 횡포와 거기에 맞서 세계를 거부하고 개조하여 세계와의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의 간절한 소망을 동시에 반영한다. 『금오신화』는 작자가 신비주의적 · 미신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합리주의적 · 과학적 세계관을 수립하면서, 그의 현실주의적 사상체계와 철학적 투쟁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셋째, 결말의 처리방식이 특이하다. 주인공들은 끝에 가서 하나같이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고전소설에서 종결부가 행복한 결말로 처리되어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주인공이 세상을 등지는 것은 운명에 대한 순종이나 패배가 아니라 그릇된 세계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단의 표현이다. 여기에 작품의 비극적 성격과 초월의 의지 같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넷째, 표현형식에 있어서 유려한 문어체 문장이나 시에 의해 대상이 서정적으로 미화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구성 또한 단편 소설적인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 시가 대량 삽입되어 인물의 심리와 분위기 표현에 독특한 효과를 낳고 있다. 시의 대량 삽입은 서정시가 국문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선 전기의 문학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의 삽입이 소설에 있어서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서사적 성격이 강한 서정시가 있을 수 있듯이 서정적 성격이 강한 소설도 있을 수 있으니, 시의 삽입이 장르 자체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여섯째, 이 작품은 작자의 생애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자 김시습은 학문적 능력은 탁월하면서도 정치 · 경제적 기반은 취약한 15세기 후반의 신흥사류로서 현실과의 심각한 갈등 속에서 극히 불우하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는데, 『금오신화』는 그러한 그의 생애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 자서전적 성격이 농후하다.
한편, 『금오신화』는 이른 시기의 소설인 만큼 소설 장르로서의 한계 또한 없지 않다. 경이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전설적 요소가 남아 있다든가, 소설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작품 외적 요소, 이를테면 기자조선의 멸망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나, 용궁 · 염부주 같은 특정한 민속적 사실이 생경하게 개입되어 있다든가, 서정시의 과다한 삽입과 갈등의 미약성이라든가 하는 것은 초기소설이 지닌 장르적 불안정성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금오신화』는 내용, 기교, 작가의식에 있어서 훌륭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론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소설의 출발점을 이룬다는 점과 후대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있다.
“백 년 뒤 내 무덤에 무얼 적으려거든, 꿈꾸다가 죽은 늙은이라고 해야 마땅하리라.” (김시습, 나 태어나〉 중에서). 라며 불의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평생을 방랑자로 살며 우리나라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민족의 사상, 풍속, 역사를 소재로 삼아 우리 땅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금오신화』는 속 이야기들은 김시습 문학의 독창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 사건으로 현실의 문제를 꼬집는 역설적 구조가 돋보이며,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랑을 통해 강렬한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금오신화』의 독창적인 구성과 탁월한 문학적 기법은 『운영전』과 『원생몽유록』 등 후대 작품들에 계승되었으며, 17세기 중엽의 일본 기담집 『오토기보코』(伽婢子)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한국 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뛰어난 상상력과 철학적 깊이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 존재와 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오늘날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혹은 나는 어떤 글들을 써야 할까, 라는 나의 사유를 이끌어 내는, 과거와 현재, 역사적 인물과 현재를 사는 나를 잇는 문학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귀한 경험이었다.
참고문헌: 1. 『금오신화』 김시습 저, 김풍기 옮김. 현대지성, 2024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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