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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책 추천 - 명상록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2. 4.

 

 

나의 루나에게

 

 

게으르게 깨어나는

겨울 아침 하늘은

잔뜩 잿빛인데

 

하늘을 향해

앙상한 가지들을 뻗고 있는

몇 그루의 나목들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으니

 

이 또한

정적이고 고요한

그림의 한 장면처럼

나를 물들이는 시간

 

오늘은 어쩐지

먼 곳에서

반가운 님의 소식이

잿빛 바람을 타고

혹은

겨울비와 함께

날아올 것만도 같고.

 

아마 그것은

이미 도착해버린

너의 문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깐 혼자 웃기도 했지.

 

“20대 초반 학생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며칠을 고민했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어느 책 중 하나를

꼭 고르기가

분명 쉽지 않았어.

 

내가 읽었던

모든 책들이

나에게 의미였고

내 삶을 조금씩

다른 색으로 채색해갔으니

어느 한 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가

솔직한 심정이라면 심정이야.

 

너의 문구를 읽자마자

떠오르던 책명들도

수십 권은 족히 되었지만

 

이제 난

딱 한 권을 고르려고 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고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내 삶의 지침서가 되었던

이 책을

나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첨부해서

들려주려고 해.

 

분명

네가 살아갈 시대와

내가 살아온 시대는

모든 것이 달라

네가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조금 염려가 되기는 하지만

어쩌면

내 마음의 간절함

지극함이 닿을 수 있으리라

나는

혼자 웃어.

 

너로부터 시작한

젊은 삶의 열기가

나에게 전달되어

나를 웃게 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날

 

나는 너에게 선물할 책 속에

이런 문구들을 써 넣었어.

 

“Every good thing in the world,

started with a dream.

So you hold on to yours.”

 

며칠 전에 보았던

영화 웡카에서

주인공 윌리 웡카의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말이야.

 

네 꿈을 간직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애를 쓸 너를

늘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이끌어가는 어느 삶의 단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틴어: Marcus Aurelius Antoninus, 121426- 180317)는 후기 스토아학파 철학자로서 5현제(賢帝) 중 마지막 황제로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161 180)였는데 아우렐리우스는 처음엔 철학자로서의 삶을 선호해 황제 즉위에 대한 거부감, 일종의 황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스토아 철학자로서의 단련에 의해 황제가 되는 것이 그의 의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결국 이런저런 주변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어쩌면 강제로 황제로 즉위하게 되는데 당시 로마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고대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페스트까지 덮쳤으며 황제는 끊임없이 주변국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는데요, 아우렐리우스는 결국 게르만족과의 전쟁터인 도나우 강변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그의 저서, “명상록은 고대 스토아 철학을 오늘날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는데 그의 죽음 수 세기 뒤에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작가들, 철학자들, 군주들, 정치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답니다.

저 또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고등학교 이후, 지금까지 제 삶의 지침서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데요, 그 시작은 이러하답니다.

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농부의 맏딸이지만 어려서부터 활자 중독자일 정도로 무엇인가 읽는 것을 몹시 좋아했어요. 5학년 당시 담임은 저에게 학교 문고의 지킴이, 다시 말하면 학교 문고의 대출과 관리를 맡겼는데요. 수업이 끝나면 500여 권 넘을까 말까 한 초라한 장서량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수위 아저씨가 몰아낼 때까지 책을 읽으며 보냈어요. 아쉬웠지만 어둑한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할 때, 저는 무엇인가 제 안으로 기어드는 것들에 대한 황홀함을 잊지 못해요. 막 지는 태양의 꼬리를 물들이던 찬란한 노을이 제 인생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어요.

중학생 때는 당시 면서기였던 외가 쪽 5촌 당숙이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했던 정음사판 세계문집들 속에 파묻혀 살았는데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와 앙드레 지드, 톨스토이, 헤르만 해세 등의 작품들은 내 문학적 원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천방지축인 친구들이 전 참으로 한심했답니다. 제법 건방졌죠. 어느 날 무엇이 원인인지, 누구였는지 확실히 기억할 수 없지만 저는 제 인생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전쟁을 급우 중 한 명과 가지게 되었는데요. 그녀와의 싸움 중 저는 눈이 뒤집히고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해요. 학교가 발깍 뒤집힐 정도의 쇼킹한 뉴스가 말 많고 호기심이 많았던 여고생들의 얼마나 재미있는 수다거리가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오지만 그 사건은 제가 제 안의 악마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겠지요. 마치 마을의 간질 환자였던 동네 오빠처럼 저도 일종의 정신병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자신을 억압 혹은 다스려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저는 제 인생의 어떤 지침들로 무장해야 했으니 그 첫 출발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지요.

최고의 복수는 너의 대적과 똑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바른 원리들을 따라 행하는 데 늘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데 염증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실패했을 때에는 계속 반복해서 시도하고, 네가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네가 무수히 실패하는데도 끝까지 추구하고 있는 그 길을 사랑하라.”

네 자신의 생각이 네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면, 너는 얼마든지 그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 나는 나를 괴롭히는 온갖 것들에서 벗어났다. 아니, 그것들을 던져버렸다. 그것들은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즉 내 자신의 판단에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어떤 예기치 않은 온갖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살아가는 일은 춤추는 것보다는 씨름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죽을 수도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파도가 자기에게 끊임없이 밀려와서 부서지지만, 그 자신은 견고히 서서 주변의 용솟음치는 바닷물을 고요하게 만드는 해안의 넓은 바위처럼 되라.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은 내게 불운이다˝라고 말하지 말고, 도리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현재 일어난 일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두렵지 않으며, 이렇게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은 내게 행운이다˝라고 말하라.”

당시 저를 감동시켰던 이러한 문구들은 주로 스스로 자신을 다스려야만 제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당시 사건의 충격에 의해 자라나기 시작했던 제 자의식의 발로이자 앞으로 살아갈 제 인생의 굳건한 청사진이 되었답니다.

또한

어떤 일을 행하는 것만이 불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불의가 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큰 축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마음껏 즐기려고 하라.”

우쭐함이 없이 겸손하게 받고, 주저함이 없이 기꺼이 내어주라.“

너의 일은 무엇이냐. 선한 자가 되는 것이다.“

신들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라. 인생은 짧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한평생 살아가고 난 후에 수확할 수 있는 것은 거룩하고 정의로운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위들뿐이다.“

라는 제가 살아가는 현재의 공동체 속에서의 제 달란트에 대한 생각과 행동의 기준점이 되기도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위의 모든 것들을 제가 행해왔다는 것은 물론 아니겠죠. 오히려 이러한 지침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제 인생은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자신을 움직이는 듯, 저 또한 지금까지 그 방향성으로 제 인생을 노 저어왔고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이 태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요.

네가 태어난 것이나 죽는 것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불어 이제 이승의 소풍을 마감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현실 앞에 저는 때때로 죽음의 두려움에 빠질 때도 있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마감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아쉬운가? 무엇인가 이생의 소풍을 끝내기 전, 제 인생의 달란트를 수행하든, 아니면 공동체를 위해 무엇인가 의미 있는 족적(足跡)을 남겨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할 때조차 있죠. 그럴 때마다 저는 명상록 속의 이 글귀를 떠올리며 저를 다스리곤 해요.

제가 30대 후반쯤, 여행사에 근무할 당시 여행객을 동반해 로마에 갔는데요.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동상 앞에 선 저는, 참으로 감개무량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제 인생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그 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우렐리우스의 문구들은 여전히 신념처럼 저를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요? 그렇다고 제가 아주 근사한 인생을 살아왔거나, 그 신념들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근사치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요. 소소하지만 평범하지 않게 살아왔던, 아마 저에게 주어진 제 인생의 나머지 시간들도 아우렐리우스의 지침들로 채워갈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어느 순간, 찰나의 지점에서 명확하게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은 그 사람의 인생에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과제로서 나타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시간, 비록 아우렐리우스의 명상적인 교훈들이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구호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요즈음의 MZ세대들에게 은근하지만 또한 강력하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저는 꼰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