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63
1학년 2학기 전공필수에
“유럽의 사상과 문화”라는 과목이 있다.
말 그대로 유럽의 사상과 문화를
한 학기 동안 훑어가는 과정인 듯.
첫 번째로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공부했다.
수업을 통해
소크라테스에 대한 오해가 많았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되었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실제로는
“너 자신을 잘 돌보라.”라는 말이고
이것은 “네 영혼을 돌보라.”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기쁘다.
결국 내가 알고 느꼈던 나의 무지의 자각이
오늘 이 시간 소크라테스를
새롭게 만나는 통로가 되었다는 사실,
그 통로를 산책하며
나는 그가 궁극적으로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받게 된 행운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따라서 나는 내 영혼을 돌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라는 끊임없는 사유의 세계로,
혹은 실천의 세계에서 노닐 수 있는
충만함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
간략하게나마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해보았다.
소크라테스 (Socrates): 철학의 아버지
제 1 장: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배경
흔히 철학의 순교자, 진리의 순교자 중 하나로 지칭되며, 서양 철학의 중요한 시작점 중 하나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 - 기원전 399년)는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발전을 경험하고 있었던 아테네에서 석수장이 아버지와 산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과거의 철학자들과 달리 철학적 사고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진리와 도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제 2 장: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방법과 가르침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직접 어떠한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들, 혹은 지인들인 플라톤이나 크세노폰, 소크라테스에게 비판적인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등이 남긴 저술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나 행적은 대부분이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 근거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와 질문을 통한 철학적 방법을 개척했는데 이 방법은 "소크라틱 메소드" 또는 "소크라틱 대화"로 혹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산파법(산파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화 방법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진리를 추출하고 도덕적 판단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영원한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의 생각을 추출하고 분석했다. 즉 거듭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유도 심문과도 비슷하지만 그것은 함정에 빠뜨리거나 혹은 심문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부터 검토해 나아가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개념이 사실은 오류가 있는 개념임을 깨닫게 되고, 당황하거나 화내거나 부끄러워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 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말의 진정한 뜻은 “네 영혼을 돌보라.”라는 말이라고 한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며 인간의 본질은 영혼이므로 우리의 영혼을 돌보면 행복에 이른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영혼을 돌보면 될까?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지혜, 즉 무지를 깨달은 후에 쌓이는 지혜, 이 지혜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철학을 통해 성찰하는 삶을 유지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말로 전환시킬 수 있다. 즉 소크라테스가 가장 마지막으로 죽으면서 한 말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언급했다니,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은 무지의 자각에서부터 시작하고 그 경로를 통해 지혜를 추구하며 이 지혜로운 자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 3 장: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유산
소크라테스의 지혜로운 사람으로 더 약한 논변을 더 강한 논변으로 만드는 자이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한 것들을 믿음으로 해서 불의를 행한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는데 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이유로서는 정치적으로 친스파르타(30인 과두정: 소크라테스의 열혈 제자들과 플라톤 집안의 어른들이 많았던) 정권에 협력한 것, 철학적으로는 당대 지식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된 상황, 마지막으로 대중들은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혼동함으로써 빚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쳤던 소크라테스를 기억했는데 이 말 자체는 소크라테스가 언급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웃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형선고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인물로 그에게는 죽음이란 영혼과 몸이 분리되어 즉 몸속에 갇힌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음 이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가 자신의 철학을 생명을 걸고 실천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의 영적 신념과 철학적 가르침을 빛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생애와 철학을 기록한 제자들의 작품을 통해 전해지며, 이를 통해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철학과 윤리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 4 장: 소크라테스의 영향과 중요성
소크라테스는 그의 생애 동안 논리와 도덕, 진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통해 서양 철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철학적 방법은 논리와 논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식을 추구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그의 영향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크게 확장되었으며, 그의 아이디어는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결국 현대의 우리, 나에게까지도 영감을 준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귀납적 방법론을 통해 비로소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직접적으로 계승되어, 더 나아가서는 2,600년 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형상 철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철학적 업적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당장 플라톤을 비롯해 그의 제자들이 각지에서 아카데미를 연다든가 하면서 각자의 철학 학파를 창설했고 소크라테스의 인기는 죽은 이후에 오히려 올라가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은 상당히 유행했다고 한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삶의 모습과 진리를 대하는 참된 자세, 그리고 죽음의 상징성이 매우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듯하다. 단순한 말로 귀결 짓는다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한, 가장 모범이 되는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윤리학, 정치철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그의 철학적 방법은 학습과 지식의 취득 방법을 개선하는 데에 기여했으며, 그의 논리적인 접근은 철학적 논의와 비판적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아버지로서 영원한 유산을 남긴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돌보기 위해 철학을 하고 지혜를 얻어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여정 중에 대화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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