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이번 주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의 책은 황선미 작가님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줄거리는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양계장을 나온 암탉 ‘잎싹’이 오리의 알을 품어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 초록머리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오리 무리를 따라 사는 삶을 살겠다는 초록머리를 놓아주며 제 목숨을 족제비에게 내어 주기까지의 잎싹의 삶과 죽음,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소망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실현해 나가는 삶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주인공 잎싹은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난용종 암탉이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자신도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일로부터 그녀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꿈꾸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온갖 고난에도 오리의 알을 품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자신의 새끼라고 믿고 있는 초록머리를 위해 잎싹은 목숨마저 잃는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오버랩되었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듯 꿈꾸지 않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비록 외롭고 쓸쓸하고 힘겨웠지만 꿈을 꿈으로써 자신의 삶을 온전히 견디고 받아들여 사랑의 열매를 맛본 잎싹의 삶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은,
또한 끊임없이 잎싹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족제비, 그녀도 역시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사냥을 해야 함을 잎싹은 깨닫게 된다. 모든 자연계, 사람의 세상까지도 물고 물리는 게 이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삶을 위해 더, 더, 더를 외치며 자연계를 훼손하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20년도 더 전에 쓰여진 동화임에도 어찌나 세련되었는지, 또 책 속에 실린 윤예지 작가님의 그림들은 한 장씩 따로 떼어내 벽을 장식하고 싶은, 글도 그림도 자주 들춰보며 미소를 머금을 것 같은 책이었다.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책속에서
잎싹은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믿었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14쪽)
청둥오리도 잎싹이라는 이름이 어째서 훌륭한지 생각하는 듯했다. 가끔 부리로 꽁지에 있는 기름을 발라서 깃털을 다듬으며,
˝잎사귀는 꽃의 어머니야. 숨쉬고, 비바람을 견디고, 햇빛을간직했다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키워 내지. 아마 잎사귀가 아니면 나무는 못 살 거야. 잎사귀는 정말 훌륭하지.˝
“잎싹이라……. 그래. 너한테 꼭 맞는 이름이야..”
잎싹은 흐뭇했다. 이름을 불러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잎싹은 청둥오리에게 불만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중에 떠드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어야 친구니까.
“그런 이름이 없어도 너는 충분히 훌륭한 암탉이야, 너한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었어.”(72쪽)
잎싹은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돌봐준 친구를 속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에겐 소망이 하나 있었어.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거야. 닭장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 그래서 더이상 알을 낳고 싶지 않았는데……나는 영원히 그럴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잎싹아, 너는 훌륭한 어미닭이야.”
“아냐, 그런 말을 듣자는 게 아냐.”
“그래도 말하고 싶어. 나는 날지 못하게 된 야생 오리고, 너는 보기 드문 암탉이야.”
“그래.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된 거야.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나는 너를 존경해.” (79쪽)
저수지로 가는 오리들 소리가 들려 왔다. 어제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해도 잎싹에게는 특별한 아침이었다. 들판 구석구석에서는 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 누가 죽는가 하면, 또 누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별과 만남을 거의 동시에 경험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만은 없다. (88쪽)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148쪽)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157쪽)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입싹은 날개를 퍼덕거려 보았다. 그 동안 왜 한 번도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을까. 어린 초록머리도 저 혼자 서툴게 시작했는데.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빈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잎싹은 지독하게 외로웠다. (185 – 188쪽)
나무위키에서)
황선미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1963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의 아동문학 작가로, 대중들에겐 대표작인 마당을 나온 암탉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검정고시로 고졸 학위를 따내야만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어려운 생활을 전전하다 1995년, <농민문학상>으로 늦깎이 데뷔에 성공한다.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던 중,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1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다.
따뜻한 휴머니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진솔하고 담백한 문체와 심오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동화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유치하지 않다는 평.
어쩌다 어른에 따르면, 소설 소재를 모을 때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한다고 한다. 여러 보육원을 방문해 입양 가정과 보육원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조사하고, 복지관에 방문해 미혼모 관련 정책을 알아봤다고 한다.
다만 몇 몇의 작품은 잔인한 묘사도 서슴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깨끗하고 순수한 것을 보여주어야한다는 동화의 기존 타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 때문인지, 학부모들에 의해 대표작인 마당을 나온 암탉이 유해 도서로 선정된 적이 있다.
작품 목록
나쁜 어린이 표
초대받은 아이들
마당을 나온 암탉
열한 살의 가방
엑시트
과수원을 점령하라
건방진 장루이와 68일
샘마을 몽당깨비
찰랑찰랑 비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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