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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돌베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6. 8.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군산대 독서 모임 필담의 이번 책은 출판사 돌베개에서 펴낸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다.

 

오래전에 보리 출판사에서 펴낸 김수박 작가의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와김성희 작가의 먼지 없는 방이라는 르포 만화집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택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병을 다룬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산업 재해 중 하나를 알게 한 책들이었다.

 

 

 

 

이번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또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죽음으로 내몰린 앳된 청소년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들의 죽음에 대해 애통해하며 사회를 바꾸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우리의 사회 현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기술되어 있지만 특히 슬픔에 처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법에 대해, “죄를 지어야만 잘못이 아니라 선함을 행하지 않음이 잘못이다.”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문장을 보고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청소년 노동에 대해 안쓰럽다,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청소년 또한 당당한 노동의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거론되는 문제들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했다.

 

은유 작가님의 말처럼

이 작지만 큰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삶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기를, 이미 노동자이거나 언젠가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존엄을 지키는 노동의 가치관을 심어주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지워주기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도 괜찮다는 가능성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것, 공동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의 미래의 선택지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게 했으며 이 시점에서 나 또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래도록 생각할 숙제를 남겼다.

 

 

 

 

은유

10 - 12)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어느 삼십대 남성은 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은 살면서 특성화고 졸업생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와 마주보고 있던 나는 여상을 졸업했다. 그가 말하는 특성화고 졸업생이 바로 나였다. () 특성화고 학생은 현장 실습생의 죽음같은 기사를 통해서만 불우한 존재로 납작하게 재현된다. 매스컴에 의해 반복적으로 호명되면서 그들이 처한 부당한 상황은 그들 삶의 기본값처럼 인식된다. 원래 불우했으니 계속 불우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무지와 무관심은 이렇게 폭력의 구조를 공고히 한다. ‘특성화고 학생이나 현장실습생이라는 분류 코드의 구성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우리 공동체에서 진지하게 시도되지 못했다. 이 아이들의 정체성이 현장실습생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죽는 순간 비운의 현장실습생으로 박제되고 만다. 그뿐인가. 죽어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 , ○○ 양으로 불려나오기 바쁘다. 현장실습생 김군 혹은 이군이 아니라 오롯한 존재, 저마다 고유한 관계 속에서 경험과 기억을 쌓아갔던 복잡하고 다채로운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다. 이 아이들은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 물음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가를 묻는 과정에서만 조금씩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13 14)

그렇다면 우리는 자라면서 언제 어떻게 배우는 걸까. 부당한 상황에서는 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위험하면, 불안하면, 힘들면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회사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을.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입사 3년차, 10년차가 지나면 자동으로 터득할 수 있을가. 제아무리 자기를 지키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가 훼손되는 느낌은 안다. 안전한 울타리에서 막 벗어났을 때 느끼는 뿌리 뽑힘의 상태, 최초의 충격이 존재를 극도로 위촉시키고 사고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17)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흩어진 사고의 기록을 모아놓으면 공통의 문제점이 보인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초반 적응 시스템이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기본적인 노동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 조직의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다는 것,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18)

대개의 사람들은 가치와 의미가 충만한 인생을 추구하지만, 고통받는 이들은 늘 제자리를 지키는 냉장고처럼, 만만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처럼, 평범하게 돌아가는 일상을 갈구한다. 아니, 일상을 떠받치는 사소해 보이는 존재와 행위와 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뒤늦게 자각한다.

 

19)

슬픔에 처한 사람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공부였다.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라는 말 뜻이 무엇인지 그는 긴 시간을 할애해 들려주었다. 자식을 잃고 매일 돌아오는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내기까지, tpRol 식사를 차리고 세상에 복귀하기까지, 사람들이 모여 너나없이 자식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1)

그런데 너나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었을까. 지금에야 그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중략)

 

죄를 지어야만 잘못이 아니라 선함을 행하지 않음이 잘못이다.”(성경 구절)

 

 

22)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했디 때문이다.”(후지이 다케시 무명의 말들)

 

24)

저는 작은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저는 그 사람을 작으면서도 큰사람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고통은 사람을 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스스로 제 책들에 작은 역사를 털어놓으면, 그 사람의 작은 역사는 큰 역사가 됩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기에 입을 열어야 합니다. 소리 내어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7)

청소년 노동에 대해 안쓰럽다혹은 보호해야 하낟고 막연히 생각하던 나 같은 어른의 입장이 왜 문제인지를 알았다. 그건 청소년을 동료시민으로 보지 않는 친절한 차별주의자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 청소년이 당당한 노동의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면 현장실습생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이 드러난다.

 

28)

문제의 본질은 청소년 노동을 악용하는 어른들이고 존엄한 노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 시스템이지 청소년 노동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실패자다

 

29)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힘을 너무 많이 가졌다는 현실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30)

존엄한 노동의 보장을 사회문제나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자신을 책임지지 못한 개인에 대한 처벌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살면서 그다지 실감하기 어려운 명제지만 자기 아픔을 용기 내어 이야기하면 타인의 아픔이 들리기 시작하고 모든 존재의 고통이 연결돼 있음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31)

자기 아픔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씩씩하다. 자기 불행을 마주하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중략) 다 잃은(것 같은) 젊앙에서만 삶이 내어주는 진실이 있기에 타인의 아픔을 듣는 일은 삶의 중핵에 다가가는 귀한 체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픔의 이야기 끝에는 배움의 이야기가 꼭 딸려나왔다. ”삶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ᅟᅡᆮ. 우리가 삶을 저버릴 수 있을 뿐이지요. 어떤 유형의 삶이든 우리에게 용기를 가져다줍니다.“라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32 33)

다나 해러웨이의 한 장의 잎사귀처럼에 나오는 겸손한 목격자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목격은 보는 것이고, 증언하는 것이며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본 것과 묘사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본 것과 묘사한 것에 심적으로 상처받는 것이지요. 목격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고, 틀리기 쉬우며, 무의식적인, 부정된 욕구들과 두려움들로 가득 찬 사람들이에요.“

 

이 작지만 큰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삶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기를, 이미 노동자이거나 언젠가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존엄을 지키는 노동의 가치관을 심어주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지워주기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도 괜찮다는 가능성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은유)

 

강석경(김동준 이모)

49)

인생은 잘되는 것도 있지만 잘 안 되는 것도 있고, 배신, 치욕, 수치 이런 부분들이 엮여서 하나가 돼 흘러가는 건데. (중략)

예전에 아버지가 해준 얘기가 생각나요.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나는데 못 크는 감은 우수수 떨어진대요. 아버지가 떨어지는 건 둬야 한다고, 붙어 있어도 못 자란대요. 사람도 그렇게 떨어지는 건가, 그런 건가. 그러면 어떻게 자식을 낳아서 키워야 되는 건가…….

 

 

74)

보통 사람들은 감정이 전염이 돼요. 기쁜 것도 전염, 슬픈 것도 전염. 슬픈 감정도 거부하는 거지. 누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깊이 생각하고 세상을 바꾸긴 힘들어요.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문제점을 애기하고 바르게 살자,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애기하면 듣기 싫은 거죠. 자기는 자유롭게 살고 싶고 아직까지 아무 일 없으니까, 대의적으로 어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무너가를 해야 하지 않나, 국민청원에 서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귀찮기도 하지만, 작은 것부터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우리 또래만 해도 그걸 싫어해요.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때서야 생각하죠. 자식 키우는 일에 어떤 공식을 적용할 수 없어요. 부모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아이가 잘 크는 건 아니에요.

 

P75

네가 죄인이다. 살인하고 도둑질해서 죄인이 아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데 행하지 않는게 죄인이다.”

 

 

92)

이 사회에서 특성화고 아이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일부러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순진하고 멍청하게 개처럼 일하길, 무식하기 바라는 거예요. 기업이 성장, 성장 일변도예요. 기업 분화에 철학이 없어요. 정치도 장기적인 안목이 없고요. 지금 저출산이 문제인데, 출산 장려금 백만 원, 오백만 원 갖고 누가 애를 낳느냐고요. 기업과 국각가 같이 완전히 애 낳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지, 어떻게 사람 귀한지 모른는데 누가 애를 낳을까요. 사람들은 자기 일, 자기 문제가 되기 전까지 산재 사건이나 차별문제 같은 걸 떠올리기 싫어해요. 그런 풍토가 바뀌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이 바뀌어야 해요. 어릴 때부터 기본 노동인권 교육이 있어야 해요.. 교사가 장애인이나 소수자를 대할 때 차별적인 뉘앙스로 대하면 안 돼요. 선생님이 차별이라고 응징하기엔 뭐한 스테레오타입적인 말을 하면 그런 말이 애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요. 동성애에 대해서 선생님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야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이상한 거야라고 지나가면서 애기를 해도 애들은 그런 판단을 자기가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판단을 차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부모님이 장애인을 보고 몸도 성치 않은데 왜 돌아다녀라고 애기하면 애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요.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에게 똑같이 반복적으로 들은 사람은 몰라요. 종교도 어릴 때부터 하느님이 당연히 계신 줄 알고 기도하면 의심이 없는 거예요.

 

93)

부모님, 선생님, 주변 어른, 티브이로부터 영향받은 말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가치관이 되고, 또 그게 폭력적인 말이나 행동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거죠. 우리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할 때, 학교교육을 생각해요. 그것도 당연하지만, 더불어 부모들이 바뀌어야 해요. 성인들을 모아놓고 주입식이 아니라 직접 발표 수업을 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평생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95)

싫으면 하지 마, 넌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있어. 기존의 잣대로 널 재려고 하지만, 그 자가 틀렸을 수도 있어.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넌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어. 때론 가족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진 않아.“

그 상황을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을 속이지는 마. 그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의 사람과 떨어져서 시간을 가져봐. 그리고 필요할 땐 시민단테나 믿을 만한 사람한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해. 정확히 도움을 주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거야.“

 

김기배(김동준 사건 담당 노무사)

97)

한국사회는 어쩌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일지 몰라요. 어떤 식으로든 작은 충격이라도 주어서 장기적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돼요. 제 입장에선, 이 죽응을 개인적인 죽음으로 남기지 않고 사회 전체적인 싸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108 109)

우리에게 주어진 빈틈, 체워져야 할 빈틈이 있다는 거죠. 내가 나한테도 빈틈이 있다는 걸 모를 정도로 우리에게 빈틈이 많은 거예요. 빈틈을 장기적으로 계속 채워가야 해요. 예전에 열 개를 몰랐는데 이제 세 개 정도를 아는 사람이 되었어요. 한 사람이 싸워서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꿨어요. 그런데 이 사람도 불행히 일곱 개를 모르는 거예요. 그 상황을 계속 채워야하는거죠. 노동부도 모르고 교육부도 모르지만 10, 20년이 지나면 노동부도 조금 알고 교육부도 조금 알 수 있도록 하려면 이런 작업이 계속 있어야 돼요. (중략) 뚜렷한 선과 악은 소설에 나오는 거고, 인간의 삶은 보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위치하는 거죠. 따라서 그들을 쉽게 공격하거나 쉽게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에요. 세상에 이런 것들이 너무 만연하니까요.

 

112 113)

요즘 사람들은 실증이나 숫자 이런 것만 좋아해서 위험의 전가까지 넘어가지 못해요. 위험의 전가라고 하면 근거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상상력을 키워서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을 넘겨준 걸로 봐야 하지 않느냐, 이 사건을 단순 사고로 단정 짓지 말자고 쓴 건데, 그게 가슴 아프더라고요. 죽음이라는 사건을 다루는 데에는 상상력을 포기 하지 않는 명민함이 되게 중요하다는 거겠죠. ‘팩트라는 이름으로 현상을 확인하는 식의 사고 방식은 우리의 인식을 가로막아서, 드러난 것에만 집중하게 하고 그 아래, 구조를 바라보지 못하게 해요. 그 밑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래가 보일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질적 인식을 왜곡하지 않는 조금 더 밑에 있는 걸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116 - 118)

사회적 약자가 불미한 사고로 죽었다. 팩트는 기계 안에서 죽은 거예요. 문제는 이게 인식되지 않는 폭력이란 거예요. 인식하지 못하는 폭력이 폭력이란 걸 드러내야 해요. (중략) 빈틈이 채워지지 않는 폭력성이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누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식해야 해요. (중략)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아지려면 여린 사람들을 존중하고 여린 것들을 섬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문화가 없으니까 고인의 죽음을 두고 여린 친구가 몇 대 맞더니 심약하게 죽었다. 누군 입술 터지면서 그냥 다니고 인생이 그런 거지. 다 그렇게 알고 다니는데이런 해석이 나와요. ()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폭력 안에 놓여 있어요. 일상적인 폭력이 수많은 종류로 뻗어 있어서 온갖 죽음으로 발현되고 외로움으로 발현돼요. 우리가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이 사건의 본질 중 하나예요.

 

 

이상영(이민호 아버지)

130)

혼자만의 싸움이에요. 철저히 혼자예요. 다 쫒아가서 애기해 봐야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해요.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식 새끼들만 안 다치고 시간만 때우면 돼요. 그 사람들이 잘하는 소리가 있죠. ”저도 애 키우는 부모입니다.“ 그건 맞지, 그런데 자기 애가 죽은 게 아니잖아요.

 

136 137)

대한민국 국회는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법을 만들어요. 있는 사람들한테 밥 한 끼 얻어먹고 정치자금 뒷돈 받으면서 해달라는 대로 해주니까 없는 사람만 힘들게 하는 법을 계속 만드는 거예요. 자기들은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평생 연금이 나오잖아요. 출석 안 해도 지들 세비는 꼬박꼬박 잘 받아요. 그러면서 법은 잘 만들어요. 무슨 일만 터지면 무슨 법, 무슨 법. 민호 일 겪고 나서 저는 엄청 바뀌었어요. 이제 대한민국 공무원이나 그 누구도 안 믿어요. 아무리 정직한 공무원이라고 해도 안 믿어요. 자기 일에는 불같이 날뛰지만 남의 일에는 나 몰라라 해요. 자기가 공직자라면 나라 세금 받아먹는 공직자라면 국민들한테 헌신해야 하는데 자기 신상에 이로운 일이 아니면 안 움직여요. (중략)

제가 느낀 게 뭐냐면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말 잘 들으면 죽는다는 거예요. 말 잘 들으면 회사에서 이용해 먹고 최악의 업무만 시키니까 말 잘 들을 이유가 없어요.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어요.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은 안 나와요. ?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다 힘 있는 사람이에요. 나올 수가 없어요. 평소 민호한테는 착하게 살고 남 해코지하지 말고 맡은 일 열심히 하고 살아라, 그렇게 말했어요. 민호는 그렇게 커줬고요. 결론은 말 잘 들으니까 세상을 등지게 되는 거예요.

 

 

142)

아픔이 크면 클수록 아픈 사람끼리 모여야 돼요.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이해는 못 합니다. 민호 엄마나 저나 집 밖에 안 나왔어요. 해를 보는 게 미안해서. 눈뜨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는 거예요. 하는 게 없어요. 기껏해야 방 청소나 하죠. 어떤 걸 해야 할지 찾아봐야 될 것 같아요.

 

임현지(유한고등학교 3학년)

 

180 181)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샘한테 말하라 했는데 저희도 못 할 것 같다고 얘기해요.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알지 못하잖아요. 이게 부당한지 아닌지 모르니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그 회사에서 원래 하던 일이면 위험해도 이거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한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해도 할 것 같아요. 그걸 못 하면 제가 일을 못하는 게 되니까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선생님한테 말하면 부모님도 알게 되고 그게 좀 그러니까. 부모님이 알면 걱정이 심해지니까 말 못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