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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몽실 언니』권정생/창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6. 15.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이번 회차 독서는 권정생 작가의 몽실 언니. 판화가 이철수님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아스라한 내 추억의 한 갈피를 꺼내 보는 재미도 있었다.

 

 

 

고향 동네 철도 옆에 딸만 12명이 있었던 집이 있었다. 딸 부잣집, 열두 번째 딸을 우리는 막내 언니라고 불렀다. 기억으론 무척 청초한 미인이었다. 어느 날 막내 언니는 언니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미군 병사와 함께 왔고 어른들은 그 언니를 양갈보라고 수군거렸다. 양갈보가 무엇인지 모르던 어린 시절이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어쩐지 언니가 무척 신식으로 세련돼 보였다. 곧이어 어느 날인지,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 비행기가 낮게 빙빙 돌더니 초콜릿이며 껌, 과자들을 담뿍 떨어뜨렸고 동네의 아이들은 코피가 터지도록 달려 그것들을 주워 먹었다. 나는 그저 관조자에 불과했지만 막내 언니의 신랑이라는 사람이 무척 마음씨 좋은 사람이구나, 한편으론 막내 언니가 부럽기조차 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된 한참 후, 친정엄마로부터 막내 언니의 소식을 들었다.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막내 언니가 가난한 자신의 조카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교육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녀 또한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었고, 고향에 돌아온 막내 언니가 친정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막내 언니의 해피 엔딩이 그려졌는데 권정생 작가의 몽실 언니를 읽으며 잠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6,25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배고파 죽을 수도 있었던 몽실과 난남이를 불러들여 가족처럼 함께 살았던 양색시 서금년, 그 서금년을 소개 시켜준 배근수, 이밖에도 비록 가난하지만 성의껏 몽실이를 도와주려 애쓰던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증폭시켰다.

 

물론 몽실이 아버지 정 씨, 몽실이를 절름발이로 만든 의붓아버지 김 씨 같은 못된 캐릭터들도 있지만 그 시대에 틀림없이 있음직 한 사람들이기에 크게 밉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모순을 받아들여 고난 속에서도 피붙이, 혹은 타인들을 받아들이는 몽실의 삶을 나는 한편으론 긍정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는 어머니를 때리고 어머니를 밀쳐 결국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의붓아버지 김씨에게 왜 반항하지 않았을까? 반항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나, 또한 자신의 아버지와 난남이를 위해 왜 구걸로 그쳤을까? 꽃 파는 소녀처럼 몽실도 구걸보다는 무엇인가 긍정적인 일을 찾을 수 없었을까, 그것이 몽실의 한계였으리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처럼 마냥 몽실에게 연민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참 이상하게도 이 나이가 되어보니 인생의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 싸우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일더라. 어린아이 시절부터 대의를 위한 것은 아니어도 아주 사소한 주변의 것들의 부조리함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교육이 있었으면 싶다. 그것이 더 성숙한 공동체를 위한 발걸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몽실의 해피 엔딩이었다. 작가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결말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그것이 때론 비굴하게, 때론 칭찬받을 만한 행동들이 아니었어도 책의 구절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버리고, 어머니가 버리고, 이웃들이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칼과 창이 가엾은 몽실을 끊임없이 괴롭혔지만처럼 무사히 살아 그녀 몫의 삶을 누렸다는 것이 읽는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물들였다.

 

어떻게 사느냐, 혹은 살아내느냐는 각자의 몫이고 다만 자신의 선택한 삶에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 곧 그것이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어른이 되어서 읽는 몽실 언니는 슬프고도 연민스럽기도 때론 답답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흐뭇했다가 내 전반적인 느낌이었다.

 

여태까지 모든 일들이 몽실이 뜻대로, 몽실이 바라는 대로 된 적이 없었다. 결국 몽실은 혼자가 되는 것이다. (276)” 그렇지, 인생은 결국 혼자야, 권정생 작가의 말년의 삶이 연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렇게 혼자될 것이 그려지니,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했다.

 

 

책 속 구절들에서)

길을 가는 나그네는 참 고달픕니다. 때로는 평탄한 길도 있지만 가파르고 험한 산길도 있고, 대로는 강을 건너고 위험한 벼랑길도 가야 됩니다. 그 고달픈 길에서 어떤 때는 무서운 짐승도 만나고 날강도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갑자기 맑은 날씨에 구름이 끼고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 깊은 산속을 헤맬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나그넷길을 우리는 어떻게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누구나가 한번 쯤 생각해 보았겠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73)

 

누구든지 길을 가자면 그 길의 멀고 가까움과 어느 정도 험한가 평탄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지요. 우리들이 지금 공부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 그 길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가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76)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느꼈을 때만이 외로움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이든 낯모르는 사람이던, 사람끼리만이 통하는 따뜻한 정를 받았을 땐 더 큰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112)

 

비릿하고 우울한 항구 도시는 먹고살기 위해 서로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먹고사는 일 외에 좀 더 즐기기 위해 남을 해친다. 어떤 방법이라도 가리지 않고 많이 차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268)

 

몽실은 죽은 밀양댁과 북촌댁을 생각하고, 금년이와 비교도 했다. 단지 배고파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버리고 김 씨한테 후살이 시집을 갔다고 동네 사라들한테 손가락질 받던 어머니였다. 북촌댁도 그리고 서금년이도 여자라는 것 때문에, 어른이라는 것 때문에 괴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272)

 

여태까지 모든 일들이 몽실이 뜻대로, 몽실이 바라는 대로 된 적이 없었다. 결국 몽실은 혼자가 되는 것이다. (276)

 

 

다음백과사전에서 빌려옴)

 

권정생(權正生 1937. 9. 10, 일본 도쿄에서 출생, 2007. 5. 17., 경북 안동에서 사망)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으나 빈곤과 6·25전쟁 등으로 곧 가족들과 헤어졌다. 그는 대구, 김천, 상주 등 객지를 떠돌며 나무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 온갖 일을 하다가 폐결핵, 늑막염 등의 병을 얻어 195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고향으로 돌아왔다.

병이 깊어져 신장결핵, 방광결핵 등으로 전신에 결핵이 번져 생사를 넘나드는 가운데 더욱 그리스도교에 의지하게 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1965년 집을 나갔다가 1966년 다시 들어와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떠돌이 생활 중에도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왔으며, 건강이 호전되고 교회 문간방에 정착한 이후부터 작품을 발표하였다. 베스트 셀러 작가된 된 이후에도 1980년대 초 교회 뒤 언덕에 지은 작은 흙집에서 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권정생은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에서 주는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강아지똥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생명이 자기희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져 아동뿐 아니라 유아와 부모들에게도 손꼽히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였다.

1973조선일보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무명저고리와 엄마는 일본의 침략과 6·25전쟁 가운데 일곱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자식을 빼앗기고 잃는 어머니의 슬픔을 그린 단편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게 하고, 한국 어머니의 모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화이다.

장편으로는 대표적으로 1984년 출간한 몽실언니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6·25전쟁을 배경으로 어른보다 더 큰 고난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살아가는 몽실이의 이야기이자 모진 고난을 헤쳐나온 민족의 이야기이며, ·북한군 양쪽을 민족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평화의 메시지이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을 보면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똥 등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저서로는 동화집으로 강아지똥·사과나무밭 달님·하느님의 눈물·몽실언니·점득이네·밥데기 죽데기·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한티재하늘·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무명저고리와 엄마·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깜둥바가지 아줌마등이 있고,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우리들의 하느님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