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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엄마없는 날/이원수/웅진주니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6. 8.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2023년 6월 8일 동화읽는 어른 모임에서 이야기할 책은 이원수님의 단편 동화집 “엄마 없는 날”이다. 간략한 후기를 쓴다.
 
 
 
1. 도깨비 마을
도깨비 카아와 쿠우의 이야기인데 읽다 보니 우리의 남북한 문제의 상징으로 읽힌다.
열강(카아와 쿠우)에 의해 분열된 남과 북, 아이들이란 미래에 의해 분단이 해소될 것이라는 작가의 염원이 꼭 이루어져 남과 북에도 오월의 따슨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오기를.
 
2. 해바라기
해바라기의 외로움이 전염되어 마치 해바라기가 “나”인 것 같았다. 해바라기의 가슴에 사 무친 마음이 날마다 해님이 사랑해준다는 확신에 의해 비로소 해바라기는 자신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씨를 맺어 떨어뜨린 후 남은 대마저 가난한 정이네의 새빨깐 불덩이가 되어 그들을 데웠다니, 마치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가 연상되었다. 나도 무럭무럭 자라 누군가를 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 었다.
 
3.엄마 없는 날
시골 외갓집에 가신 엄마가 두 밤 자고 오신다 했는데, 내일이 바로 그날인데 그 전날의 어린 영이의 기다림이 이해되었다. 시간이란 고무줄 같아서 그 그리움의 농도가 진한 날은 더 긴 것처럼 느껴지지만 의젓하게 행동하는 영이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달님을 바라 보며 엄마의 얼굴을 연상하는 영이, 엄마 달의 노래를 듣고 산 위의 달님도 영이의 마음도 빙긋 웃는 모습이 상상되어 내 마음에도 달이 뜨고 나 또한 달을 보고 웃을 수 있겠다.
 
4. 불꽃의 깃발
나무의 혼, 노인 나무의 혼이 어린 나무의 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은 곧 현재의 노인들이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여하튼 양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의도가 보여 씁쓸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법칙, 우주의 법칙, 우리가 마땅히 해내야 할 모습은 아닐 까요? 이원수님, 미워!!!
 
5. 은이와 나무와 엄마의 애기는
모두 부모님의 마음을 아이들이 깨달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은근 미소를 짓게 했다.
 
6. 불새의 춤
두루미 무용원의 두루미들이 불쌍하다. 악덕 주인인 원장을 만나 혹사당하는 모습에 마음 이 아프고 28호 두루미의 어리석은 결정에 화가 났다. 왜 자신을 희생시켜야만 할까? 이 동화는 악덕 기업주들에게 희생되는 현시대의 젊은이들이 연상되었다. 희생하지 말고 당당 히 맞서 싸워주길, 기대하게 하는, 28호 두루미 또한 원장을 위해 자신을 불태워 불꽃이 되지 말고 다른 두루미들과 힘을 합쳐 무용원을 탈출시켜야 비로소 이 동화를 쓸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아쉬운 이야기였다. 이것이 이원수님의 한계였을까, 아 니면 내가 작가의 의도를 읽지 못하는 것일까?
 
7. 장군의 화경
아이들이 개미국을 폭격하는 모습을 보며 장군 또한 바나나국 중심부의 폭격을 중지했으면 바라게 되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이고 아이들 또한 어른들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일깨웠던 이야기였다.
 
8. 비옷과 우산
새로 산 비옷을 입고 싶어 손꼽아 비오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어린 시절 내 마음 하고 똑같아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
 
이원수문학관 www.leewonsu.co.kr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평산로
 

 
 
 
나무위키에서 빌려옴)
이원수 李元壽1912년 1월 5일[1] ~ 1981년 1월 24일 (향년 69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본관은 경주(慶州)
아동문학의 불모지 일제강점기에 방정환과 함께 아동문학을 싹틔운 선구자. 우리나라 근대 어린이문학과 문화운동의 거성으로 평가되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홍난파에 의해 작곡된 <고향의 봄>이 있다. 방정환이 한국의 페스탈로치라면 이원수는 한국의 안데르센. 이원수와 방정환은 약간의 접점이 있었다. 방정환은 생전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 행사 등의 활동을 했다. 방정환이 당시 이원수의 고향인 경남 양산까지 내려오자 이원수는 이에 대단히 감동했고 방정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가르침을 얻었다. 이는 이후 이원수가 어린이 문화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자 역시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오빠생각'이라는 동요의 가사를 지은 아동문학가 최순애(1914~1998)이다. 이 부분은 2018년 2월 1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2. 생애
1912년 1월 5일 경상남도 양산군 읍내면 북정동 하북정(現 양산시 북정동 하북정마을)에서 아버지 이문술(李文術)과 어머니 여양 진씨 진순남(陳順南)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창원군 창원면 소답리(현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다. 1922년 마산부로 이사해 마산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전학했다. 마산부에 정착한 후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와 '신소년'을 애독하며 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1924년 '신소년'에 '봄이 오면'을 발표했다. 마산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925년에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창원 소답리에서 지낸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를 그린 동요 '고향의 봄'이 1926년 4월 '어린이'지에 입선하면서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1925년 마산에서 활동하던 소년 단체인 '신화소년회'에 가입하여 문학을 접하고 민족애를 키워나갔다.
1926년 마산공립보통학교 6학년 때 조선인을 학대하는 일본인의 만행을 비난하는 글을 학급신문에 게재하여 경찰에서 문제를 삼았으나 당시 담임교사가 책임을 져 처벌을 면했다. 1928년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공립상업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기쁨사'의 동인으로 가담, '어린이'지의 집필동인으로서 동시 '비누풍선'과 누나에 대한 그리운 감정을 그린 '섣달 그믐밤' 등을 발표했다. 1931년 마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경남 함안군 함안금융조합에 취직하였다. 같은 해 9월 조선의 아동예술운동을 위한 단체인 '신흥아동예술연구소'가 창립될 때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1935년 2월 27일 상술한 함안금융조합의 조합원들과 결성한 항일 문학모임인 '함안독서회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5년 4월부터 10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5년을 언도받고 출옥했다. 1936년 1월 출감한 후, 6월 기쁨사 동인 최순애와 결혼했다. 한성당 건재약방의 서기로 잠시 근무하다 금융조합 이사 김정완의 도움으로 1937년 함안금융조합에 복직했다. 문제는 이 금융조합에 입사한 것이 이원수의 생애에 불명예를 안기게 된다.
광복 이후, 경남 함안군 가야면 치안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글강습소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1945년 10월 경기공립공업학교 교사로 취직하였고, 12월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입했다. 1945년 2월 8일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통합하여 결성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다. 당시 좌익계열의 '새동무'와 '아동문학', 우익계열의 '소학생'에 모두 참여하여 좌우익을 넘나들며 활동했다. 즉, 이원수는 좌파와 우파 모두 넘나드는 중도파로 분류되는 문학가였다. 그러나, 이러한 점 때문에 이원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국민보도연맹에 반강제로 가입해야했고, 우익 문학단체인 '한국문학가협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피난지 경기도 시흥군에서 영국군 부대에 노무자로 뽑혀 동두천에서 1년간 천막생활을 했다. 1952년 아동월간지 '소년세계'를 창간하고 주간으로 일했다. 1953년 창작집 '오월의 노래'와 '숲 속 나라'를 신구문화사에서 간행하였고, 1954년 한정동과 함께 아동문학회 창립에 참여하여 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56년에는 아동 월간지 '어린이 세계'의 주간을, 1958년에는 자유자유문학가협회 아동문학 분과위원장을 지냈으며, 1959년에는 서울시 문화위원회 문학분과위원을 지냈다. 1960년 삼화출판사 편집장을, 1965년에는 경희여자초급대학[12] 강사를 지냈다. 1968년 시 '고향의 봄'을 기리는 노래비가 경남 마산시 산호공원에 건립되었고, 같은 해 창작집 '메아리 소년'이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판되었다.
‘민들레의 노래’ ‘메아리 소년’ ‘호수속의 오두막집’ 등 반전(反戰)메시지를 담은 작품과 ‘땅 속의 귀’ ‘어느 마산 소녀의 이야기’ ‘벚꽃과 돌멩이’ 등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의식을 담은 작품, ‘토끼대통령’, ‘명월산의 너구리’, ‘잔디숲의 이쁜이’ 등 독재정치를 비판한 작품을 썼다. 또 전태일 분신 사건 때는 의로운 죽음을 의인동화에 담은 ‘불새의 춤’을 발표했다. 이후 1978년을 전후해서는 계몽사에서 발간한 소년소녀 시리즈(소년소녀 세계위인전집,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소년소녀 세계동화전집 등)의 감수를 담당했다.
아동문학에 많은 공헌으로 '고마우신 선생님상'과 대한민국문학상 등 각종 상들을 받았는데, 그만큼 그는 '아동문학계의 거성'이었다. 1979년 11월에 갑자기 구강암이 발병하여 1981년 1월 24일에 별세했다. 장례 후 용인공원묘지에 시신을 안장했다.
1984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1984년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그를 기리어 문학비가 건립되었고 경상남도 양산시에 고향의봄로가 명명되었다. 또한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경상남도 창원시에는 위 문단에 적힌 것처럼 산호공원에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고향의 봄을 쓴 곳이 바로 이 용마산 앞 오동동의 주택가 골목 하숙방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1970년대까지 활발히 활동한 아동문학가였기 때문에 작품도 상당히 많고, 동시, 동화, 아동소설, 위인전, 수필 등 장르도 다양하다. 활동 시대도 넓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1950, 60, 70년대의 사회 및 생활상이 작품 속에 다양하게 녹아 있다는 것도 특징할 일이다. 1983년에 웅진출판에서 이원수의 작품을 모두 전집으로 출간한 적이 있는데, 무려 30권의 분량이었다.
3. 친일반민족행위 전력
이원수는 아동문학계의 거성으로 어린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문학인이었다. 그리고, 이념도 중도적인 노선을 띠었던 인물이며, 항일문학모임인 함안독서회에서의 활동으로 감옥생활을 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참여하였으나, 2002년, 일제강점기 말 전시체제 때 내선일체에 관한 글들을 5편 기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인생 최대의 오점을 남긴 탓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까지 등재되었다. 어쨋든 잘못은 잘못이었기 때문에 2011년 이원수 선생의 유족들은 공식 사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