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戀書시리즈 - 독후감

아녜스 바르다의 말/마음산책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1. 13.




#책소개


아녜스 바르다의 말/마음산책


평생 자기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아가며,
늘 경계에 서 있었던 주변인,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하며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예술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을 찾아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던 아티스트,

아녜스 바르다 (1928년 5월 30일 - 2019년 3월 29일)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예술의 주름들>이라는 시인 나희덕님의 책이었다.
그 후로 영화를 찾아보겠다 했는데 깜빡,
마음산책 인스타를 보다가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에 감전되어
<아녜스 바르다의 말>을 만났다.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

은 물론 많은 지면에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영화에 대해 말하지만,
예술 전반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삶을 대하는 방식으로까지 확대됨을 느끼게 했다.

책의 삼분의 일 쯤에 도달했을 때 도저히 그의 영화가 궁금해 참을 수 없었고
“드그드그드그”
드디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영화까지 나아갔다.



바르다의 영화와 접속되다니,
참을 수 없는 희열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
시적 영감으로 가득찬 언어들,

75살 최소생계보장금으로 살아가는 포니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겠다며 바르다와 JR을 초대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여기선 무엇을 해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아요.
우린 별 안에 있어요.
나는 별의 보호 아래서 태어났죠.
나의 어머니, 달이 준 차분함
나의 아버지, 태양이 준 따뜻함
그리고 삶의 터전,
우주 인생에서 나의 무대는 광활해요.”

있는 존재를 그대로 바라보는 바르다의 시선을 통해
시인인 포니를 보여주며
다른 존재의 다른 삶의 방식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틀린이 아닌 다름을 경험하게 한다.







그야말로 영화는 사람, 동물, 식물, 사물 그리고 태양, 비, 바람,
이 모든 것에 바르다의 우아한 손길이 가닿으면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보는 관객들은 영화 속 시공간들을 유영하는 연상 작용을 통해
어느 사이에 생뚱맞게 마술적 리얼리즘의 어느 경계까지 도달하게 된다고 말한다면
나의 지나친 확장일까?
(나는 그가 보여주는 현실이 왜 가끔은 환상 같을까? 내가 인식하는 세계, 특히 인간에 대한 신뢰감의 부재일까. 사유해야 할 지점인 듯)


겨우 한 권의 인터뷰집을 읽었고
한 편의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그를 향한 “행복한 과대망상환자”가 되었나보다, 나는.

이것은 어쩌면 ‘누벨바그의 대모’라고 불려온 그가
나에게 “마술적 주문”을 건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

을 통해 무한 확장되는 또 하나의 나의 다른 세계가 열린 듯하다.
그가 제시하는 은유의 바다에서
별의 보호를 받으며
달이 준 차분함과
태양이 준 따뜻함에 기대

나는 오랫동안 유영할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말, 책중에서 밑줄긋기)

P. 37
제게 누드 테마는 형식적 아름다움과 도덕적 아름다움의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이요. 이 지점은 특권적 영역이죠. 벌거벗은 몸은 아름다움의 척도예요. 더욱이 정신적으로 벌거벗은 사람은, 다시 말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은 감동적이고 아름답죠.

P. 39
글쓰기는 목격자가 되는 거예요. 제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무언의, 비밀스러운,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것들이에요. 직감의 영역은 느낌의 영역 못지않게 많은 것들을 품고 있어요.

P. 41
때때로 삶은 앎(인식)의 또 다른 단계로 향하는 길을 열어줘요. 자신이 몰랐던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죠.

P. 60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없는 픽션은 있을 수 없고, 미학적 의도가 없는 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P. 62
이렇듯 촬영은 영화언어들 가운데 하나예요. 구도 잡기나 편집과 마찬가지로요.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하기도 하죠. 관객들의 감정선을 제 의도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어요. 궁극적으로 모든 창작자는 매개자예요. 삶과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직감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생산물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개자죠.

P. 65
사진을 찍는다는 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에요. 몇 년간 사진가로 일했죠. 지금은 아니고요. 감은 잃겠지만 보는 눈은 결코 잃지 않았어요. 요즘은 주로 영화 촬영 장소를 물색할 때 사진을 찍어요. 책상 위에 근사한 18×24인치 크기의 사진을 올려놓고 보는 것만큼 사물들, 풍경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도 드물어요. 이렇게 하면 시나리오를 쓰는 데도 도움이 돼요. 일련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일종의 연결 고리 같은 게 자연스레 생겨나요. 거기서 뭔가를 ‘읽어’내기도 하죠. 아주 고무적이에요.

P. 93
감독은 자신만의 어휘를 사용하고 싶어 해요. 자신의 느낌을 신뢰하고요.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형성돼 있는 이런저런 관념들과 부딪히게 돼요.

P. 95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작가가 되는 거예요. 감독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감독이 되는 거고요.

P. 105
남자와 여자는 말없이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우린 믿어요. 그래서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실상 그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럴 경우, 말이란 건 사실 필요치 않죠.

P. 122
우리는 영화가 대중 예술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요. 사람들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에 가요. 늘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하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지루한 영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P. 137
침묵하는 다수는 단호한 성격이고 그들은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죠. 그럴 시간도 없어요. 뭔가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저 존재하고, 생존해나가는 데만도 여러 많은 문제가 따르거든요.

P. 147
아마도 제가 하는 작업은 목격자로서의 작가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해요. 저는 ‘작가주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가주의’란 말을 좋아하진 않아요. 너무 제한적 의미를 갖고 언급하는 경우에 있어서는요. 어떤 경우든 저는 늘 영화 속에 제 자신을 드러내죠. 자아도취로 인한 건 아니고, 영화에 진솔하게 접근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P. 148 - 149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사회적 관계에서도 그렇고, 사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정체성 찾기는 영화감독으로서도 의미가 있어요. 저는 한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드니까요.

P. 163
우정은 하나의 강력한 연결 고리예요. 질투도 유발하고 그리움도 만들어내지만, 함께할 때 생성되는 그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들은 대단하죠. 사랑의 경우는 좀 더 나아가요. 서로를 만지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되는 지점에 도달해요.

P. 165
저 역시 누구보다도 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바위들 사이에 작은 샘이 있고, 그 샘은 마르지 않죠. 이 철없지만 집요한 낙관주의는 제 행복의 원천이기도 해요.

P. 196
제게 ‘좋은 작품’이란 다른 뭔가를 의미해요. 상상력을 통해 클리셰와 고정관념을 새롭게 조명할 때, 마음을 풀어놓아주고 연상 작용이 자유롭게 진행될 때, 순수하게 영화적인 언어로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져 이전까지 우리 안에 억압되어 있거나 숨겨져 있던 이미지와 사운드가 밖으로 드러날 때, 그래서 그 모든 고양된 정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 저는 그 영화를 ‘좋은 작품’이라고 지칭해요.

P. 196
저는 항상 제 삶을 진행 중인 하나의 작품처럼 여겨왔어요. 경력을 쌓아간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아요.

P. 199
영화에서의 시간과 관련해서 제가 흥미를 느끼는건 영화의 시간 그 자체예요. 촬영을 하고 있는 시간. 시간이라는 것 그 자체. 그 갑작스러운 밀도. <클레오>에서 저는 이 화두를 가지고 작업했어요. 시간은 갑자기 밀도를 갖기도 하고, 다시금 자유롭게 흐르기도 하죠. 혈액의 순환을 닮은 것 같기도해요. 또는 <도퀴망퇴르>에서처럼 시간은 물질들을 모두 비워내고, 순수한 공간이 되기도 하죠. 해변처럼요. 또는 미로에서 두 구조물 사이의 통로처럼요.

P. 213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이 단편을 장편영화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여기는 것과는 달리 저는 수시로 단편영화를 만들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감정들, 상상의 순간들, 여러 발견들을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어요. 이 영화들은 제 작품 세계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죠. 그리고 미래의 관객들과 저의 지각 또는 인식을 미리 짜 맞춰 보는 그런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훈련 같은 역할도 하죠. 저의 눈과 귀, 이런저런 모든 것을 단련시키는.

P. 221
뭔가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저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죠. 홀로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물들을 관찰해요. 전혀 비용이 들지 않죠. 시간을 들여 꼭 알맞은 사람들을 선택해요.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그들의 복장을, 그들의 머리 모양을, 그들의 손을, 그들의 손톱을, 더럽든 깨끗하든, 그들의 도구를, 그들의 말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쓰죠.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들이 실제로 말을 한다면 이렇게 하겠지, 라고 상상하면서 대사를 써요. 그들의 현실도 최대한 활용해 작업하죠. 리얼리즘의 힘이라 할 수 있어요. 그들이 사는 곳,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들, 그들이 열고 닫는 서랍까지. 실제 생활공간이 그대로 영화 속 공간이 되니까요.

P. 224
시네크리튀르는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영화를 위한 탐사, 선택, 영감, 작성한 텍스트, 촬영, 편집 등 모든 것의 앙상블이죠. 영화는 이 모든 다양한 순간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에요. 저는 하루에 아홉 시간을 편집실에서 보내요. 영화는 그곳에서 한데 합쳐지고, 영화의 감정들은 명확하게 조율되고, 조정되고, 다듬어지고, 최종적으로 바로잡아지거든요.

P. 227
제 작품에서 가장 현재형인 건 촬영 당일의 바로 저예요. 몇몇 사람들은 안전망 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부분이 제 영화 작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영화에서 분명히 그걸 느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해요.

P. 241 – 242(영화 방랑자에 관해)
영화란 건 이미지와 사운드를 이용해 하나의 구조물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이 영화는 효과를 일으키죠. 우리 눈이나 귀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적’ 극장에서도요. 그 극장 안에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존재해요. 일종의 실시간 영화가 끊임없이 상영 중인 거죠. 이제 우리가 보는 영화는 내부로 들어와 기존의 것들과 뒤섞여요. 그리고 전형적인 영화 서사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된 모든 이미지와 사운드는 우리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죠. 거기엔 다른 이미지들, 이미지들로부터 연상된 것들, 다른 영화들이 이미 존재하고요. 그래서 영화 속의 새로운 이미지는 이미 그곳에 있던 다른 정신적 이미지들을 자극해요. 기존의 감정들도 자극하고요. 새로운 무언가를 보고 들었을 때 효과를 일으키며 제대로 작동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죠. 말하자면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감정들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반쯤 잠들어 있는데 어떤 특정 이미지나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 또는 여러 가지가 한데 묶여서, 예를 들어 두 개의 이미지가 연달아 나오는, 우린 이걸 몽타주 또는 편집이라 부르죠. 아무튼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벨을 울리는 거예요. 이 반쯤 잠들어 있는 느낌들이 이 효과들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영화는 이런 거예요.

P. 242 – 243
문화라는 건 이탈리아 회화나 스페인 회화, 이런 것들을 보고 배워야 하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이건 그저 문화에 관한 정보를 쌓아 올리는 행위일 뿐이죠. 문화의 의미는 우리가 보는 실제 사물들, 자연, 회화, 우리가 듣는 음악,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보는 영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우리의 실제의 삶, 우리의 정서적 삶과 연관시키느냐의 문제거든요.

P. 253(영화 방랑자에 대해 말하고 있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자 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전적으로 좋은 사람도 없고, 진정 관대한 사람도 없고, 진정 비열한 사람도 없다고 이야기하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P. 253
다른 존재의 다른 삶의 방식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게 쉬운일은 아니죠.

P. 259
사람, 동물, 식물, 사물 그리고 태양, 비, 바람, 이 모든 것에 바르다의 우아한 손길이 가닿는다. 바르다 덕분에 우리는 오감 전체를 동원해 현실을 느낀다. 바르다의 영화는 동물들 그리고 아이들로 가득하다. 어디로 눈을 돌리든 거기엔 개가 있고, 염소가 있고, 말과 닭이 있다. 또한 푸르른 나무들도 가득하고, 때론 파란빛으로 가득해 거의 ‘파란 영화’가 되어버린다. 사진가로서의 애정도 드러난다. 우편엽서, 오래된 가족 앨범, 때론 사물의 질감을 포착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리를 내주기도 하고, 음식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바르다는 모나와 마차가 함게 하는 장면에서 언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지만, 정비공 그리고 무척이나 감동적인 튀니지인이 보여주는 깊은 침묵의 순간들 또한 존중한다.

P. 260
우리는 어떻게 걸작을 알아볼 수 있을가?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이, 또는 카메라의 즐거움이 피사체의 슬픔을 극복할 때,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도 다시 봐도 당신이 바라보는 대상의 진귀한 샘물이 좀처럼 고갈되지 않을 때, 당신이 보고 있는 영화는 걸작이다.

P. 266
돌아보면 저는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하기 위해 살아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요. 작년으로 영화 인생 30년을 맞이하면서 결심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자유롭게 하기로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제출하려고 시나리오를 쓸 생각이 없어요. 이제부턴 영화를 만들든가 만들지 않든가 둘 중 하나예요. 이제부턴 저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갈 거예요.

P. 272
한 여자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엉덩이가 근사하다, 라면 그건 사실상 그 여성을 파멸시키는 거예요.

P. 276
나이가 들면서 생겨나는 장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안에 뭐랄까, 누구도 만질 수 없고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고요. 그런 걸 갖고 있다는 게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글쎄요. 그저 제 바람일 수도 있고요.

P. 285
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소통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서예요. 소통이 성공한다면 관객들은 영화 속에 담긴 무언가를 전달받을 수 있겠죠.

P. 289
프랑스 영화 비평은 허세가 심해요. 그리고 ‘영화광’적인 면모가 있죠. 재밌는 게, 그들은 상당히 진지하게 접근을 하는데 저는 그들만큼은 아니에요.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한 편 만들면 영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요. 가벼운 마음으로 춤을 췄는데, 거기서 실존주의 논문을 기대하면 안 되죠.

P. 307
저는 영화를 이런 의미다, 저런 의미다, 단정 짓는 사람들을 싫어해요. 누구나 입맛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P. 319
저는 늘 제 마음이 향하는 곳, 저의 욕망, 저의 에너지가 가리키는 곳을 주시해요. 저는 영감을 받아서 작업해요. 거래를 하지 않아요. 비즈니스를 하지 않아요. 경력을 쌓아나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그저 영화를 만들 뿐이에요.

P. 343
영화 작업을 위한 여행도 여전히 즐기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가는 건 사실이죠. 제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아이디어를 줍고 이미지를 줍고 감정들을 줍는 작업이에요. 저는 영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 속으로 ‘들어가’ 살아가죠.
P. 354
마음속에선 늘 생각이 움트죠. 하지만 가벼운 생각들이에요. 저는 철학적이지도, 형이상학적이지도 않아요. 그럼에도 제 마음은 계속 활동하고, 제 작업은 마음속으로 흘러들죠. 이게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P. 374
직관에 따라 본능적으로 작업하는 게 예술가의 숙명이란 걸 이해했어요. 자기만의 느낌으로 최적의 장소에서 최적의 방식으로 최적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거죠.

P. 379
삶은 –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 즐거움, 재미, 놀이로 변모할 수 있어요. 그저 따분하기만 할 뿐인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거예요. 부담이 되는 상황 속에서도 재미를 탖아내고요. 언제든 무언가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어요. 이건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호 장치예요. 살아가다 보면 큰 불행, 큰 고통이 찾아와요. 하지만 저는 보호를 받아요. 심지어 제 곁을 영영 떠난 이들조차 저를 보호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겐 불평할 자격이 조금도 없죠.

P. 399
저는 제가 살아온 삶, 제가 사랑한 모든 것을 떠올리면 참 흥미로워요. 마치 기억들,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추억들로 가득한 백팩 같아요.

P. 405(옮긴이의 말)
바르다는 평생에 걸쳐 자기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아티스트였다. 지금 내가 관심이 가는 대상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P. 407(옮긴이의 말)
<아네스 바르다의 해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우리는 이제 원숙한 바르다를 만난다. 그의 즉홍적인 몸짓 하나, 말 한마디는 이제 그대로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된다. 영화를 하고 있거나 다른 예술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따스한 위로와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공식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바르다는 언제나 해변에서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반갑게 맞아준다.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주변인으로 여겼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예술로 자연스럽게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지금 자신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을 찾았다. 그의 삶이 그의 작품 목록만큼이나 풍성해 보이는 이유는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르다에게 주된 표현 도구는 영화였고, 그는 그 도구를 마음껏 활용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녜스바르다 #agnèsvarda #아녜스바르다의말 #마음산책 #오세인 #바르다가사랑한얼굴들 #visagesvillagesfacesplaces #나희덕 #예술의주름들 #누벨바그 #lettersfromatrav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