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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뮤지션

쟈니 하트만(Johnny Hartman/1923년 7월 13일 – 1983년 9월 15일)은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였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9. 9. 22.

 

 

 

 

 

 

쟈니 하트만(Johnny Hartman/19237131983915)은 시카고 태어났다. 이미 8살 때부터 피아노와 노래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후에 시카고 음악 대학에서 음악공부를 하며 프로로서 연주하기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곧 군에 입대하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이 종전 된 후 그는 다시 음악을 시작하는 데 1947년에는 얼 하인즈 악단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1948-49년까지는 디지 길레스피와 그리고 1949년에는 에를 가너와 함께 연주와 공연을 하였다. 물론 그 후에도 그는 나이트클럽이나 텔레비젼에 다수 출연하면서 그의 경력을 쌓아 나간다.

1960년대에 쟈니 하트만은 존 콜트레인이라는 색소폰의 거장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함께 작업을 하였는데. 국내 재즈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1963년에 발표한 그들의 발라드 앨범 (존 콜트레인 &자니 하트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후에도 그는1977년에 롤랜드 한나와 조지 므랴즈와 함께 일본 도쿄에서 연주와 녹음을 하였으며. 1981년 발표된 그의 앨범 (Once In Every Life)는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와도 협연을 하였고, 클락 테리와도 함께 연주를 하였으며 알 가파와의 협연에서는 기타 하나를 백으로 해서 노래를 부르는 등 많은 연주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그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인기를 높였다 (ByThe Time I Get To Phoenix)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그의 노래는 컨트리 음악을 기저로 재즈 스탠더드, 파퓰러 송. 그리고 이지 리스닝 계열((Raindrops Keep Fallin'on My Head))의 음악을 다 소화해 내고 있다. 부드러운 그의 음색은 듣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갖게 하고, 재즈 매니아 뿐만 아닌 모든 사람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는 청중의 층은 다양하고, 그 폭 또한 매우 넓다.

그는 모든 단어에 힘을 불어 넣는다. 그러면서도 음절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듯한 깨끗한 발음을 유지한다. 그의 바리톤 보이스 안에는 풍성함과 깊이가 있고. 오리지널 멜로디를 벗어나지 않는 음에 대한 신뢰감으로 많은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내면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또한 그는 모든 템포를 이용하여 새롭게 곡을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창조적인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빌리 엑스타인의 후진이라는 인식이 그에게는 어쩌면 청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요소 중에 하나였겠지만, 한편으로는 1983915일 그가 자신의 60 인생을 마감할 때 까지도 엑스타인의 그늘이 덮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쟈니 하트만의 노래를 사랑하는 재즈 팬이라면 이러한 사실 보다는 그가 만들어 내는 그만의 색깔이 가득한 그만의 노래를 더 먼저 기억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깊고 풍성한 음색. 흑인 특유의 뛰어난 스윙 감각에 백인적인 깔끔한 사운드와의 조화. 그러기에 그가 재즈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그리 작지만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