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이 사는 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으며, 소망 없이 사는 걸 모두가 불행하게 생각했다. 다른 삶의 형태와 비교할 가능성도 없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욕망도 없었을까?
문제는 어머니가 갑자기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배우고 싶어했다. 그건 그녀가 아이였을 때 무언가를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 관해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람들이 <난 내 자신을 느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건 최초로 가진 소망이었고, 그 소망을 끊임없이 말하다 보니 급기야는 고정 관념이 되어버렸다.
(19쪽)
작가의 말처럼 인생의 모든 행과 불행은 바로 그 “욕망”으로부터 출발한다에 한 표...
이 책은 인생에 무엇인가를 욕망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객관적으로는 한 여자의 일생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아들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쓰여진 에세이라고나 할까?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는 자신의 글쓰기의 주제나 소재를 바로 자기 자신에서 찾는다고 한다. 역시 오늘의 작품 <소망 없는 불행/1972년>도 그런 주제 의식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작품이며 그의 작가로서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토요일 밤 A면(G읍)의 51세 가정주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이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실제로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작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쓰여진 산문으로 자신의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이 자아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인 여자의 삶은 오스트리아 역사와 뒤엉켜 그야말로 질곡이 많은 형태로 그려지지만 감정이 절제된, 작가의 시선으로 담담히 그려진다.
기독교적 분위기가 만연한 시골에서 독자적인 삶을 꿈꾸었던, 무엇인가를 배우게 해달라고 <애걸 복걸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자 열대엿 살에 무작정 집을 나와 호숫가의 한 호텔에서 요리하는 것을 배우고 도시 생활과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유부남을 사랑해 사생아를 낳고, 아들의 아버지가 필요해 혹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감동에 그럭저럭 결혼했지만, 결국 성(性)이 없는 존재가 되어 일상의 사소함 속에 자신을 묻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팔라다, 크누트 함순,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 토마스 울프, 윌리엄 포크너를 읽으며 토론을 하며 비로소 “난 다시 한 번 젊어지는 것 같구나.”라는 생각을 가지지만 문학은 그녀에게 자신에 대한 생각하도록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작가의 서술은 왜 책의 제목이 “소망 없는 불행”인지를 알게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지난 삶의 고통에 대한 회한으로 “난 항상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약해지고 싶었단다.”라는 고백을 이끌며 결국 “난 이제 인간도 아니다.”란 결론에 이르러 자살을 하게 된다.
외로움과, 욕망과 가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여자의 전투는 왜 이렇게 쓸쓸한지,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마지막 희망은 “여자의 자살”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자살에 찬성하는 쪽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에 대한 욕망과 소망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되고자 했던,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를 충족치 못했던 루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살”이라는 형태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위로의 유일한 방법이자 마지막 욕망의 실현이었음에 쓸쓸하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나”는 누구이며 인생에 무엇을 욕망하며, 그 욕망을 향해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게 했던 책...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1942년 오스트리아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포룸 슈타트파르크>와의 인연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5년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발표한 첫 소설 『말벌들』이 주어캄프 출판사에 채택된 것을 계기로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66년 미국 프린스턴에서 열린 <47년 그룹>의 모임에서 독일 문학을 과격하게 비판한 한트케는 같은 해에 연극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첫 희곡 『관객 모독』을 발표하면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3년에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수상하였고, 이후 실러상, 잘츠부르크 문학상, 오스트리아 국가상, 브레멘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오늘날 강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트케는 희곡 「카스파」, 소설 『소망 없는 불행』, 『진정한 느낌의 시간』, 『왼손잡이 여인』 등 현재까지 8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함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알라딘 제공)
'戀書시리즈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마타 신스케의 영리 (0) | 2019.04.24 |
---|---|
히라노 게이치로의 달 (0) | 2019.04.22 |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파랑새의 밤 (0) | 2019.02.11 |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의 소설 납장미 (0) | 2019.02.11 |
Monica Maron " 슬픈 짐승"/문학동네 (0) | 2019.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