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마론(Monica Maron 1941년)은 나치시대, 분단, 구동독, 통일 시대의 독일 역사의 흐름과 함께 낳고 성장하며 동독과 서독의 분단을 주제로 삼으며 구동독 체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에 소개할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슬픈 짐승”은 문학 동네 팟캐스트에서 평론가 권희철님의 낭독으로 짧게 접해봤던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소설은 그야말로 기이한 시대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된다.
베를린의 자연사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동독 출신 여성 고생물학자인 ‘나’는 통일 직후에 서독 출신의 개미연구가 프란츠를 만나 불륜의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그 후의 일들을 회상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 의미를 찾아간다.
그 과정 중에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나는 사랑에 빠졌던 과거에 멈춰있고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랑을 끝없이 반복되는 현재진행형으로 서술한다.
더불어 기이한 시대인 통일 이후의 나 이외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며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 개인적, 사회적인 변화와 혼란 속에서 기독교식 품성이 몰락하는, 자기 자신과 베를린 시의 혼란을 동일시하며 전쟁과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남성사회와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다.
“나는 사랑이 안으로 침입하는 것인지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조차도 아직 알지 못한다. 가끔은 사랑이 어떤 존재처럼 우리 안으로 침입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몇 달 동안, 심지어 몇 년 동안이나 주위에 숨어 우리를 엿보다가 어느 때인가 기억이나 꿈들의 방문을 받고 우리가 갈망하며 숨구멍을 열 때, 그때 그것이 숨구멍을 통해서 순식간에 밀고 들어와 우리의 피부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과 뒤섞인다.
사랑은 바이러스처럼 침입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틀어박혀 조용히 머물다 있다가 어느 날인가 우리가 충분히 저항력이 떨어지고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그때 불치의 병이 되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사랑이 죄수처럼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사랑이 해방되어 우리들 자신인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데 성공하는 일은 가끔씩 일어난다. 사랑이 감옥을 부수고 나온 종신형 죄수라고 상상해보면, 얼마 안 되는 자유의 순간들에 사랑이 왜 그렇게 미쳐 날뛰는 것인지,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온갖 약속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가 곧바로 온갖 불행 안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를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사랑을 내버려두기만 하면 사랑이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사랑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벌을 받아 마땅하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P 24 – 25)
아이고, 바이러스처럼 침입하는 사랑이란 독감에 걸려봤으면, 반미치광이 같은 소설 속 주인공인 “나”가 되어봤으면, 그것이 종신형 죄수라 해도, 평생을 불행 속에 무자비하게 짓밟힐지라도 인생에 이런 경험 쯤 한 번 해볼 수 있었으면, 이 지리하고 싱거운 인생이 왜 이리 슬프고, 아쉽기만한 지, 내 인생의 사랑의 용량은 왜 이리 적을까, 아마도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길들여진 도덕적 감성은 영원히 깨트릴 수 없는 나의 한계가 아닐까, 씁쓸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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