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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Ornette Coleman and Charlie Haden의 스튜디오 앨범 - Soapsuds, Soapsuds(1977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8. 5. 22.

Ornette Coleman and Charlie Haden의 스튜디오 앨범
- Soapsuds, Soapsuds(1977년)

오넷 콜맨








“Ornette Coleman 과 Don Cherry & Billy Higgins 와 나는 동시에 만난 것이 행운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음악에 대한 같은 식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마치 우리가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을 때처럼 즉흥 연주를 할 때 새로운 코드를 만들며 연주해야한다는 것이다. 오넷과 연주를 한다는 것은 분명 경험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연주했던 모든 것을 정말로 들어야만 했다. 왜냐면 그는 항상 한 키에서 다른 키로 음을 조절했고 나는 밴드에서 유일한 화음 악기였다. 화음을 연주하는 피아노도 기타도 없어서 나는 나의 베이스 라인 연주에서 코드들을 연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새로운 코드의 구조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우린 정말 멋진 밴드였다."

라고 헤이든은 오넷 콜맨과의 연주에 대해 회상합니다. 이들은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콜맨의 Atlantic 데뷔 앨범 The Shape of Jazz to Come(1959년)에서 뿐만 아니라 70년대 중반 까지 꾸준한 협연을 하게 됩니다.

재즈 타임즈의 Duck Baker는 "오넷의 연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선은 찰리 헤이든이 70 년대 중반에 그룹을 떠난 것일 수 있다. 몇 년 후 이 듀오 세트는 많은 초기 클래식 레코딩에 결정적이었던 텔레파시를 나누게 된다. 이 앨범은 정교하고 편안한 최고의 연주이다."라고 언급합니다.


새로운 실험적인 소리와 음악에 대한 갈구로 아방가르드적 색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오넷은 이 앨범에서도 테너와 트럼펫을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느낌일까요? 오넷의 혼의 소리는 슬픔의 색조가 기저에 배어있습니다. 뭐랄까요? 극한의 슬픔, 그것을 견디기 위해 애쓰는 고독한 사람을 엿보는 것 같다면, 아마추어의 섣부른 판단일까요? 저에겐 오넷의 혼만큼, 가득한 슬픔을 안고 있는 연주자를 못 만난 것 같네요.

"나도 그래요. 당신도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라고 물으며 끄덕끄덕 그의 음악에 공감해 주길, "산다는 것이 그렇답니다." 은근, 나지막히 속삭이는 것 같죠. 듣다보면 가슴 밑바닥의 슬픔마저 잠시 소용돌이치다, 가라앉습니다. 마치 눈물의 카타르시스처럼... 그리고 정적이 찾아오고, 어쩌면 새로운 인간이 될 것 같은 희망을 안게 합니다. 참으로 오묘하고, 이상하고, 고마운 음악입니다.


Ornette Coleman and Charlie Haden의 스튜디오 앨범
- Soapsuds, Soapsuds(1977년)

레이블: Artists House AH6
녹음일: 1977년 1월 30일
발매일: 1977년
길이: 38:11
스타일: Free jazz
프로듀서: John Snyder



Track listing(언급된 곡 이외에는 모두 Ornette Coleman 작곡)
Side A
1."Mary Hartman, Mary Hartman" (Sanger D. Shafer) – 7:44
2."Human Being" (Charlie Haden) − 7:46
3."Soap Suds" – 5:12

Side B
1."Sex Spy" – 9:55
2."Some Day" – 7:34

Personnel
Ornette Coleman - Tenor Saxophone, Trumpet
Charlie Haden - Bass





https://youtu.be/_9wERGINUI0






찰리 헤이든(Charles Edward Haden)(193786- 2014711)은 색소포니스트 Ornette Coleman과의 오랜 협연으로 유명한 재즈 더블베이시스트이다.

헤이든은 미국 미주리주에서 태어나, 가끔 라디오에 출연해 컨트리 음악이나 미국 민요를 연주하곤 할만큼 음악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헤이든은 두살 때 이미 전문적인 가수로 데뷔를 했고, 14살에 가벼운 소아마비를 앓을 때까지 계속 가족과 함께 노래를 했다. 소아마비는 그의 목 근육과 성대에 상처를 남겨 그 결과로 헤이든은 노래를 부르면서 음 높이를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소아마비를 앓기 몇 년 전 헤이든은 재즈에 흥미를 보여 형의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보컬 대신 베이스 연주자가 되었고, 1950년대 중반에 LA로 자리를 옮겨 피아니스트 Hampton Hawes나 색소포니스트 Art pepper와 협연하는등, 빠른 속도로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헤이든은 50년대 후반과 60년대에 앨범 ‘The Shape of Jazz To Come(앞으로 다가올 재즈의 모양)’으로 정점을 이룬 오넷 콜맨과의 실험적인 공연을 함께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앨범은 당시 많은 비평적인 찬사와 비판을 받았었다. 헤이든은 하모로딕(오넷 콜맨이 그 당시 새로 주창했던 재즈 음악의 이론) 스타일의 연주가 처음에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냥 묵묵히 콜맨의 진행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가 공연 때 스스로만의 연주를 시작할만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오넷 콜맨과의 협연 말고도 헤이든은 Keith Jarret의 트리오에 속해 있었으며 Paul MotianDewey Redman과 함께 “American Quartet”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Old and New Dreams’라는 그룹에 참가했다.

그는 1970년대에 Carla Bley에 의해 대규모로 편성된 Liberation Music Orchestra(LMO)를 이끌었다. 그들의 음악은 매우 실험적이었고, 재즈와 정치적 음악활동의 영역을 동시에 개척하는 참신한 시도였다.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다룬 LMO의 첫 앨범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재즈 스탠다드로는 여겨지지 않는, 색다른 주제를 가진 장르의 음악을 개척하는 것은 그의 Quartet West와 함께 찰리 헤이든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1987년에 결성된 찰리 헤이든의 쿼텟 웨스트는 색소폰의 Ernie Watts, 피아노의 Alan Broadbent, 드럼의 Larance Marable로 구성 되었다. 이 그룹은 Broadbent의 푸릇푸릇하고 현악을 동원하기도 하는 로맨틱한 편곡과 많은 어워드의 수상자로 인기를 얻었다. 헤이든은 프로듀서 Hank Jones, 그룹의 동료들과 함께 ‘American Hymns’에서의 미국 전통 음악, ‘Always Say Goodbye’에서의 필름 누아르 음악, ‘Nocturne’에서와 같은 쿠바 전통 음악등의 발견을 통해 새로운 종료의 영가를 개척하였다.

1997년 후반에 그는 기타리스트Pat Metheny와 함께, 그들이 미주리에서 겪었던 유년 시절에 영향을 받았던 음악들, 그들이 미국적인 음악이라 부르는 음악들을 재발견 했다. 이 협연은 그들의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ies (Short Stories)’와 그들이 함께한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찰리 헤이든은 그의 특징인 시적인 베이스 연주와 함께, 현재 가장 존경받는 재즈 베이스 연주자이자 재즈 작곡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딸인 PetraRachelThat Dog이라는 그룹에 속해있었던 뮤지션이며, Petra는 현재 That Dog을 나와 인디 락 그룹인 The Decemberists에 속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