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삶의 깊은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곧 ‘실존’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존이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세상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기획하고 그것을 따라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기획투사’라는 용어로 표현했습니다. 기획투사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능성에 스스로를 던져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진정한 자기, 본래적 자기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김용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181쪽)
책속에 깊게 들어가려고 했는데 음악이 절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유혹당할 수밖에 없는 저라서 저는 늘 저를 쾌락주의자라고 여깁니다. 깊은 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려니, 너무 황홀해서 밴친님들과 공유하고 싶군요.
제 40대에 쥐꼬리만큼 배운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후엔 영어를 써먹을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써먹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인생은 참으로 예측 불가입니다. 해서 무엇을 하든 그때의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자했던 제 신념이 그른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위의 책을 세 번 째 읽는데, 지금은 제가 밑줄 쳐 놓은 것만 발췌해서, 영원한 저의 화두와 일치하는 “본래적 자기로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결심을 또 한 번 하게 됩니다. 혹시 이 시간 깨어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임이 분명하겠군요.
재즈를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도록, 늘 격려해주시는 리더님(근데, 꼼수가 넘 보여요. 자신은 포스팅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밴친님들에 참말로 고마운 시간입니다. 이 행복이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
위키에서)
1.
Danilo Pérez (born 29 December 1965)는 파나마 국적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Pérez는 1965년 파나마에서 태어나 그가 세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10살에 파나마에 있는 the National Conservatory 에서 공부했다. 그는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옮겨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와 펜실바니아의 인디아나 대학에 교대로 출석했다. 버클리에서 그는 Jon Hendricks, Claudio Roditi, Terence Blanchard와 함께 작업했다.
1989년에 그는 미국 길레스피 오케스트라 (Dizzy Gillespie's United Nations Orchestra)의 멤버가 되었다. the Royal Festival Hall 에서의 라이브 앨범은 그래미상을 받았다. 그는 1992년 길레스피가 사망할 때까지 그 밴드와 함께 일했다. 그는 나를 가르쳤던 길레스피의 것들 중의 하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훨 씬 더 이상으로 나 자신의 유산( 혹은 전통이나 혈통, 그가 파나마 국적으므로)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고 인디펜던트 (the Independent)신문 매체에서 진술했다. 그는 다른 것들에 대해 배우는 것 이상으로 너의 뿌리가 어떤 것인지에 아는 것이 대한 것이 무엇인지 얻는 것이 재즈에 대한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1965년에 아틀랜드 여름 올림픽에서 그와 마샬리스는 함께 공연을 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 특별 게스트로 공연을 했꼬 주제 송을 보여주는 빌 코스비 텔레비젼 쇼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꼬 특히나 그래미 에서 상을 받은 앨범인 Danzon에 참여했다.
2000년에 그는 John Patitucci 와 Brian BladeIn 과 함께 쿼텟을 이루어 Wayne Shorter 와 함께 결합햇다. 그는 그때 이래로 그 그룹과 함께 광범위하게 콘서트를 했으며 이 기간 동안에 만들어졌던 쇼터의 네 개(Footprints Live! (2002), Alegría (2003), Beyond the Sound Barrier (2005), and Without a Net (2013)).의 녹음에 모두 참여했다.
그는 전세계로 부터 온 재능있는 재즈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버클리 대학의 음악 세계 재즈 연구소의 예술 감독으로 임명 되었다.
2.
Michael Leonard Brecker (March 29, 1949 – January 13, 2007)는 미국 재즈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존 콜트레인 이래로 가장 영향력 있는 테너 색소포니스트라고 넓게 알려져 있는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연주자 이며 공연과 작곡자로서 15회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4년 버클리 음대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상 받았으며 2007년도 다운 비트 명예의 전당에 입성되었다.
Michael Brecker 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으며 그 지역의 교외인 Cheltenham Township에서 양육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Bob (Bobby)은 재즈 피아노를 연주했던 변호사였고 어머니 Sylvia는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Michael Brecker는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이른 나이에 재즈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적, 또는 좀먹는(enemy) 분야가 아니라 함께 생존 가능한 음악적 선택으로써 락음악을 보았던 재즈 음악가들의 세대의 일부로써 자라났다. (즉 락음악도 함께 공존하는 음악이라고 보는 재즈 세대)
그는 6살에 클라리넷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8학년 때에 알토 색소폰으로 전환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에 그의 첫번째 악기로서 테너 색소폰으로 안착했다. 그는 1967년에 Cheltenham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인디애나 대학 1년 후인 1969년 뉴욕으로 이사갔다. 거기서 그는 다이나믹하고 흥미진진한 재즈 솔로이스트로서의 그의 자질을 닦았다. 다.그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그의 형 Randy Brecker와 트럼보니스트인 Barry Rogers와 드러머인 Billy Cobham, 키보드를 연주했던Jeff Kent 와 베이스를 연주했던 Doug Lubahn를 포함하는 재즈 락 밴드 꿈( jazz-rock band Dreams)이라는 밴드의 멤버로서 21살에 뚜렸한 실력을 처음으로 발휘했다. 이 그룹Dreams 는 오직 일년이라는 짧은 활동을 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의 녹음 음반인Jack Johnson 의 녹음에 앞서 그들 중 몇 몇을 보았다.
그의 초기 작업의 대부분은 R&B saxophone과 락기타에 대한 지식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졌다. 드림즈 후 그는 the Brecker Brothers를 구성하기 위하여 그의 형 Randy 함께 다시 팀을 이루기전까지 Horace Silver 와 Billy Cobham과 함께 일했다. 그 밴드인 the Brecker Brothers는 그 시깅에 락의 락적인 재즈의 경향을 띠었으며 구조적인 편곡, 더 무거운 백비트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며 더 강한 락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 밴드는 1975년에서 1982년까지 유지되었으며 꾸준한 성공과 음악적 능력을 보였다.
브렉커는 뉴욕에서 백혈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뉴욕 Hastings-on-Hudson에서 2007년 1월 15일에 개최되었다.
Michael Brecker, Charlie Haden & Danilo Perez: Live in Montreal (2001)
Michael Brecker, Charlie Haden & Danilo Perez: Live in Montreal (2001) - YouTube
http://me2.do/GfUqDa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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