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투명했지. 새벽이슬처럼. 고백컨대 그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난 너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느낌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너의 여린 모습이 뭔지 모르게 아슬아슬하기도 했어. 막 20대 초반에 접어든 꽃봉오리. 네가 피어오르는 것을 훔쳐보며 난 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부러워하다가 결국 질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아무리 질투라는 희뿌연 안경을 썼어도 여전히 너는 눈이 부셔 도리 없이 너를 안을 수밖에 없었을 때, 나는 기뻤단다. 그 무렵 나도 지나치게 오만했던 때였으니까. 타인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어. 그렇게 너를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난 뭔가 내 인생의 한 고비를 넘었구나, 뭔가 인격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는 자부심까지 느꼈단다. 한 인간이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의 인생을 자신의 세계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아니겠니?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층 넓고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같아. 스스럼없이 쉽고 빠르게 껴안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네가 알다시피 난 늘 모든 것 앞에서 멈칫거리며 남보다 한 템포가 느린 사람. 고치려고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더라.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세월이 벌써 30여년 가까이 되었구나. 그 시간만큼 우린 함께 웃고 울고 때론 싸우며 화해하고 기다렸고 이 지점에 이르렀어. 아, 이런 관계가 바로 인생의 동반자라는 것이지, 은밀히 혼자 웃으며, 어쩌면 내 장례식장에서 날 회상하며 울어줄 사람이 너라는 확신까지 들었단다. 나이가 들수록 나도 모르게 널 의지하는 나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놀랍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 인색하기만 하나님은 그래도 너라는 보물을 내게 주셨으니 투정부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날 위로한 적도 있단다. 어느 덧.
그런데, 이건 뭘까? 네가 아주 담담하게 타인의 일처럼 아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난 도시 믿을 수가 없었으면서도 가슴속 대들보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 자리엔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칼바람이 한바탕 날을 세우며 휘젓더라. 머리는 아찔해 정신이 없었고, 뭔가 말해야하는데 말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한 마디를 덧붙였지.
“그깟 유방암 아무 것도 아니야. 내 친구들 보니깐 다 낫더라.”
“나을 확률이 92프로쯤 되는데 8프로가 나일지도 몰라.”
넌 농담처럼 웃었지.
“지금까지 내 인생은 이 8프로에 속했으니까.”
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고. 속도 떨리고 머릿속은 빙빙 돌고.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인생에 대한 내 사소한 투정이 사뭇 부끄러워지는 시간들이었다. 밥 먹는 것조차 너에게 미안했어.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또 시간이 하루하루 흐르다보니, 당연히 너는 괜찮아질 거고, 인생은 잠시 한 인간을 시련에 빠지게 할망정 그렇게 간단하게 누굴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날 위로하더라. 너를 위로하는 나는 없고 나를 위로하는 나만 발견하니까, 또 너에게 미안하고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날 압박하고. 내 생각 하나하나가 부질없기도 하고, 네 고통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넌 방사선치료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여전히 씩씩하게 너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견딘다고 했어. 그런데 이건 뭐니? 난 너에게 전화해 먼저 소식을 물을 수조차 없으니. 겨우 카톡을 날리는 것뿐. 그것조차 망설여진다는 사실. 가끔 새벽에 깨어 네 생각을 해. 그런 날이면 어수선한 꿈에 시달리고. 이건 지독히 내 이기주의적인 바램이겠지만 건강히 내 곁에 있어주렴. 무사히 이 고비들을 견디고 씩씩하게 웃어주렴. 내 쓸쓸할 장례식에 꽃같은 네가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뼈가루를 뿌려줄 사람이 너 일지도. 네가 이 글을 읽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