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t Baker - In a sentimental m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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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렴하게 쏟아지는 가을빛은 호수의 물 등마루를 타고 쉼 없이 수런거렸다. 한적한 산책길로 휠체어 하나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미끄러져갔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의 스카프를 들썩였다. 휠체어를 밀던 할머니가 휠체어 앞으로 나서더니 무릎을 굽혀 손수건을 꺼내 할아버지의 입가를 닦았다. ‘우이, 우이.’ 할아버지의 입에서 새어나온 소리가 방향을 잃고 주위를 맴돌았다. 자신이 내뱉은 소리들을 쫓기라도 하듯 휠체어 위의 할아버지가 한쪽 팔을 높이 들고 휘저었다. 휠체어 앞의 할머니는 힘겹게 일어서며 할아버지의 높이 든 팔을 붙잡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키드득키드득’ 장난이라도 치는 것일까, 할아버지의 입에서 웃음소리 같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반달이에요.”
할머니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뒤따랐다.
“노래를 부를까요?”
대답도 듣지 않고 할머니가 휠체어를 밀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고 할아버지가 웅얼웅얼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했다.
산책길, 붉게 물든 벚나무 잎이 땡그랗게 원을 그리며 할머니의 하얀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할머니의 머리핀이 되어버린 낙엽이 가을빛을 받아 반짝였다.
웃기지요? 30년 후쯤 내 모습이에요. 가을빛이 지나치게 좋아서 실내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 부르기라도 하는 것일까, 호수를 찾아 달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호수물위로 쏟아지는 가을빛은 온통 몸통을 드러낸 물고기의 비늘마냥 쉼 없이 일렁였죠. 가만 벤치에 앉아 시선을 멀리 두니, 쓱싹쓱싹, 마음속 붓 하나가 서서히 일어서며 몸을 털었어요. 마치 요술을 부리듯 알록달록 색칠까지 하다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가슴 속 은빛물결이 함께 춤을 추듯 요동했지요. 툭 지나치게 익어 뱃살을 뛰쳐나오는 밤톨처럼 웃음이 막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답니다. 그대와 대면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내 비루한 일상에 작은 위로가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얼마쯤은 또 시간을 견딜 수 있구나, 큰 한 숨이 웃음을 대치했어요. 그만큼의 거리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다가오지 않아도, 설령 내가 다가갈 수 없어도 충분하다고 애써 그렇게 생각할래요.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