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혼자 앉아있었다. 여자 앞, 작은 찻상위엔 마치 일부러 장식이라도 한 듯 식은 찻잔이 무렴하게 놓여있었다. 미세한 바람이 여자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여자의 초점을 잃은 시선은 무엇을 보고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란 것을 쫓는 것일까? 무거운 정적이 그녀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있었다.
분명 여자는 마룻바닥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여자가 공중부양이라도 한 듯 바닥으로부터 1미터 상공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여자의 초진공 상태는 물체를 지구의 중심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조차 무화시킨 것일까? 무엇이 여자로부터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할 당위성을 배제시켰을까?
"비가 올 것 같아. 이불을 걷어야 하지 않아?"
말짱한 하늘을 두고 나는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처음 나는 여자를 향한 묘한 호기심에 머쓱했다. 여자와 어떤 것을 공유했을 때 은밀한 기쁨을 느꼈다. 아프다 말했을 땐, 도와주면서도 비틀린 내 삶의 작은 위안이 느껴져 부끄럽기도 했다. 때론 그녀를 향한 무력함이 안타까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근래 내가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그냥 옆에 있어주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고, 여자 또한 그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가만 여자 옆에 앉아 잠시 여자의 옆 얼굴을 주시했다. 가느다란 턱선 아래 목주름이 자글거렸다. 내 시선을 의식했던지 여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내가 예뻐?"
"후훗, 그래 예뻐."
여자는 키득거리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오늘 하루, 내가 그녀를 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