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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선물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9. 30.


   계절이 바뀔 때면 찾아오는 반가운 이가 있다. 커피 한 잔마저 사양하며 오롯이 앉아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읽었던 글에 대한 감상에서 시작해 쓴다는 것에 대한 필연성과 쓰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갈등에 대해 나누다보면 결국 자신의 글에 대한 욕망을 발설하게 된다. 같은 처지이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위로가 되는 까닭에 출구가 없어 답답했던 것들이 일시에 풀리기도 한다. 과거에 발설했던 심상과 현재의 상태에 대한 어긋남에 서로가 웃으면서도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것으로 달래며 터미널까지 배웅이 끝나면 그 날 밤은 어김없이 뒤척이며 깊어가는 어둠에 익숙해진다.


행 복


                             /박인환


노인은 육지에서 살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시들은 풀잎에 앉아

손금도 보았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정사한 여자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을 때

비둘기는 지붕위에서 훨훨 날았다

노인은 한숨도 쉬지 않고

더욱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성서를 외우고 불을 끈다

그는 행복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잠드는 것이다



노인은 꿈을 꾼다

여러 친구와 술을 나누고

그들이 죽음의 길을 바라보던 전 날을

노인은 입술에 미소를 띄우고

쓰디쓴 감정을 억제할 수가 있다

그는 지금의 어떠한 순간도

증오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죽음을 원하기 전에

옛날이 더욱 영원한 것처럼 생각되며 자기와 가까이 있는 것이

멀어져 가는 것을 분간할 수가 있었다














 

  들려주고 간 이야기를 되씹는 시간이다. 


  지난 몇 달간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던 어떤 것들이 조용히 가라앉을 시간이 되었나보다. 이제 맞이할 손님이 내 앞에 서 있다. 기다렸던  손님이었기에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가만 마음을 내밀어 정성스레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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