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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여자의 산책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9. 24.

   늦은 오후다. 문득 시선이 머문 그 곳, 허연 귀밑머리 성긴 여자의 머리털이 농익은 햇살에 반짝였다. 제법 낫살이 익은 가을 햇살은 부드럽고 깊어 여자의 몸속으로 사정없이 스며드는 모양새다. 여자의 시선은 마치 인생의 뒤안길이라도 집어보는 듯 무심한 듯 초점이 없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먼 쪽을 향했다. 한참을 제 자리에 서있던 여자가 천천히 발을 뗐다. 한쪽 손을 허리에 얹은 여자의 느린 걸음에 졸음에 겨운 햇살이 기지개라도 켰을까, 여자의 그림자가 길고 깊었다. 지칠 법도 하건만 여자는 자신의 속도대로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여자의 주위로 모든 사물들이 자신의 속도를 유지한 채 스쳐지나갔다. 어떤 것은 더 빠르게, 어떤 것은 더 느리게. 때론 여자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는 것들도 있을 것이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여자의 산책


  졸음에 겨운 여름햇살

  소슬바람 치맛단 속으로 미끄러지면

  가을햇살은 수줍고 속 깊은 홍분에 떨고

  검셌던 매미울음 잦아든다


  호수에 잠긴 산그리매

  물 주름 겹겹으로 일렁이고

  설핏한 하늘 저편으로 붉은 노을 타오르면

  여자의 한 숨소리 된비알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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