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하여도 살아야 하는 내일은 온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9. 20.

   고적하다. 몸을 부려 자리에 눕다가 잠이 든 오후, 나른하게 스며드는 감정들이 성가시기만 하다. 손에 든 책은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노트북을 열어 본 것은 또 언젠지? 무엇이 나를 이토록 게으르게 하는가?

   이른 퇴근을 하려는데 바람이 날을 세운다. 저절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숨을 내쉰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별 몇 개, 달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결이 나를 만지며 흐른다. 바람이라도 따라가 볼까, 핸들을 틀면 한적한 호수가 지척이다. 검은 호수의 물결이 쉼 없이 일렁인다. 자박자박 바람이 걷는 소리를 눈으로 듣고 희미한 달빛을 귀로 본다.

   “안녕하신가?”

   묻고 또 묻고 싶은 얼굴이 그림자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따른다. 혼자가 아니라서 좋구나,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호숫가 잔풀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넌 어떻게 살아가니? 묻고 있는 내가 우습기만 하다. 설핏설핏 스며드는 내일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려 고개를 젖힌다. 잿빛 구름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보름달이 반갑다.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구름 위, 달빛 속, 백옥루 안식이 그리운 것은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까? 어느새 시커먼 구름발 속으로 숨어버린 달. 희읍스름한 달빛에 일렁이는 망상들이 버겁다.

   이것저것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인생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리.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진다. 어둠 속 호숫가 빈 의자에 엉덩이를 부린다. 초점 없는 눈, 생각들이 여지없이 뒤엉킨다. 매듭지을 수 없는 것들은 그냥 엉킨대로 내 버려두자, 이를 악문다. 현실의 모든 계루로부터 자꾸만 엉덩이를 빼려는 습성에 젖어든 지 오래되었다는 인식이 뾰족이 또 고개를 쳐든다. 호수의 검은 물결이 성큼성큼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뜬다. 호숫가 검은 산 너머로 구름을 헤치고 나온 보름달이 생긋댄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며 속삭이는 것일까?

   이랬다저랬다 뒤스럭뒤스럭 나잇값을 못하는 나를 고백하고 싶은 밤이다. 코푸렁이 같은 내 삶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부끄러워 자꾸만 숨어버리고 싶다하였더니, 뱅긋대던 보름달마저 구름떼에 묻히고 손에 잡힐 듯 소소리 높은 검은 산봉우리가 나를 응시한다. 마음을 기울여 듣고 싶은 소리를 듣는다.

  "하여도 살아야 하는 내일이 있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물  (0) 2016.09.30
여자의 산책  (0) 2016.09.24
소는 왜 내 앞에 나타났을까?  (0) 2016.09.20
너도 변했을 거야, 내가 변한 것처럼  (0) 2016.09.12
수런 수런, 밤의 수다  (0) 201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