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정적이 어둠 속에서 나를 감쌌다. 들어서자마자 거실의 불을 켜고 다음으로 안방의 불을 밝힌다. 앗, 드디어. 그가. 기다렸던. 각오하고 있었다가 맞겠지. 가슴이 떨린다. 안방구석에 잔뜩 몸을 펼친 그도 당황했으리라. 갑작스런 인간의 등장과 더불어 초강력 형광등 불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다니. 내가 그를 훔쳐보는 동안, 분명 그도 나를 경계했으리라. 오히려 나보다 더.
빗자루를 찾는다. 쓰레받기가 어디 있더라? 두리번거리는 동안에 힐끗 돌아다보니, 슬슬 도망칠 궁리를 하는 모양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에프킬라가 먼저 눈에 띠였다. 빠르다, 쏜살같이 구석 벽을 기어오른다. 우선 기절시키자, 도망치지 못하도록. 약품의 무차별 투하에도 몸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잠시 기절한 듯 꼼짝하지 않는다. 잠시 후,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는지 꿈틀거리며 기어간다. 내 마음만 급해진다.
“꼼짝 마, 그대는 네 손아귀에 있어.”
등면은 흑녹색에 20쌍은 족히 넘을 다리들. 징그럽고 겁이 났지만 몸뚱이만은 내 중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크기이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뿌리고, 또 뿌리고. 아, 이놈의 화학약품 냄새라니, 그대보다 내가 더 싫다. 나는 숨을 멈추고 얼굴을 잔뜩 찡그렸고 그는 버둥거리고, 흐느적거리면서도 여전히 필사적인 탈출을 도모한다. 약품의 독성에 기가 죽었는지 몸뚱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신문지 조각으로 그의 몸뚱이 위를 덮는다. 그가 있을 법한 위치에 빗자루를 들어 크게 한 번 내려친다.
“죽지는 마라. 그대 목숨도 제천일진데.”
쓰레받기를 신문지 밑으로 밀어 넣으며 제발 기절만 했기를 빌어본다.
“나한테 복수할 생각일랑 마라. 그대 친구라도 불러올 일은 없겠지?”
꼭 암수 한 쌍씩 짝을 지어 나타난다는 엄마의 말에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지가 쓰레받기 위에 올라오고 바닥에 그의 몸뚱이는 보이지 않았다. 전속력으로 달려. 현관에서 50미터가량 떨어진 풀밭에 쓰레받기를 그대로 던졌다.
“넌 내일아침에 다시 찾으러 올게. 고마워. 그를 잠깐 네 몸 위에 얹게 해줘서. 네가 나와 같지 않아서, 감정을 표하지 않아서 더할 나위 없었어.”
현관문을 꼭 잠그고 한 번 더 쓰레받기를 내던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발 부탁이니 죽지는 말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게. 제발.”
그도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혹시 복수라도 하겠다고 친구들을 동원하면 어떡하지.
요즈음 불을 켤 때마다, 이불을 들출 때마다, 옷을 입을 때마다. 두려움이 잠깐씩 스친다. 분명 낯설지 않은 그였지만, 그와의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