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쳐 몸이 천근이다. 점심 장사를 끝내고 누워 잠을 청해본다. 하지만 의식은 더 명료하고 퇴고를 하고 있는 내용들에 생각은 줄달음친다.
“저 오픈 언제 하시나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고. 겨우 몸을 일으킨다. 헐, 이게 웬일인가? 낯선 이는 서울에서 일부로 나를 찾아 온 것이란다.
“2월 시인의 정원에서요. 너무 인상이 좋아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인상이 좋았다는 말을 아주 드물게 들어보았다. 좀 내가 험상궂게 생기지 않았나, 웃으면 몰라도. 생각도 못한 칭찬에 굳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칭찬엔 고래도 춤추게 하지 않다던가, 칭찬에 천근이던 몸도, 지쳤던 마음도 절로 따뜻해진다.
“이것 좀 보세요.”
가지고 온 배낭 속에서 책 몇 권과 사전 한 권을 내민다.
“아이들 손님을 위해, 사전은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굳이 나를 위해 서울에서부터 그 무거움을 감당하며 들고 온 책들, 사실 지금 있는 책들도 짐이라고 느끼는 판국에 크게 반가울 것은 없지만 그 마음만은 뭐라 고마움으로 대신해야 할 지?
“저, 삭발은 왜?”
2월까지만 해도 아니 지난 6월에도 나를 곁눈으로나마 보았겠지만 모자를 썼으므로 삭발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이야기 하자면 너무 길어서.”
그 호기심에 실실 웃음이 나온다.
가끔씩 그렇게 사람들이 물어올 때마다 ‘그냥 긴 머리가 귀찮아서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서울에서 오직, 나를 잠시 만나기 위해 온 분에게만은 진심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6시 30분 차 예매라서.”
헐, 겨우 3시간을 나를 보겠다고 서울에서 이곳까지. 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차로 터미널까지 배웅한다고 했더니 굳이 버스를 타고 가시겠단다.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들고 돌아오는 길에 이성당엘 들렀더니 하필 휴일. 달콤하고 시원한 팥빙수가 당기던 참이었는데.
며칠 인간사 때문에 내 마음에 11월 시린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쳤는데 이런 위로, 아니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은 하루였다. 세상 누군가는 이렇듯 무엇도 모르는 나를 찾는 이가 있구나, 에잇, 잘 살아야지. 실실 입 꼬리가 올라간다.
“반가웠습니다. 작가님. 다음에 만났을 때는 더 많은 시간 가지게요. 많은 시간 뺏은 것 같아 조금 미안 했고요.
터미널에서 카톡이 왔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안전히.”
당사자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투자한 하루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