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도 더 지난 기억이다. 우리 동네에 일본식 가옥이 딱 세 채 있었다. 우리 집 바로 옆의 교장 사택과 농장, 업춘이 아저씨네. 교장 사택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없어졌고, 업춘이 아저씨네 가옥은 그 한참 뒤에도 세월의 무게를 지닌 채 버티고 있었는데. 내가 대학생 무렵이었을, 그 때쯤 사라진 것 같다. 그리고 농장 집. 왜 그 집을 농장 집이라 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일본인 농장주가 살았던 집을 현재의 집 주인이 적산가옥으로 물려받았을 것으로 유추된다.
농장 집은 큰 도로에서 150M정도 안 쪽에 있었다. 진입로 입구엔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오랫동안 서서 진입로 끝의 농장이라는 일본식 가옥을 바라보노라면 현실이 아닌 꿈, 그 어딘 가에 있는 듯 아득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분에 사로잡혀 기억을 되살리다보면 일본 기생이 나왔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스라이 그려지는 풍경들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어렸을 적부터 농장 집은 나에게 꿈의 집이었다. 형편없이 작았던 초가집인 우리 집에 비해 농장 집은 저택이었다. 무엇보다도 뒤꼍의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앉아있는 농장 집의 외관은 촌뜨기 어린 여자아이에게 ‘미’라는 관념의 세계를 선물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이상 벚꽃나무도 서 있지 않고 가옥은 낡을데로 낡아 형체만 서 있다. 하여도 여전히 농장 집은 나에게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품게 한다.
“임대로 나왔다는데.”
그 한마디에 덜컥 계약을 하고 말았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설령 귀신이 나올 만큼 낡았다 해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이었으므로.
동생의 힘을 빌려 손수 페인트칠을 하고 바닥 공사를 했다. 아직 이사를 오는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걸로 예상되지만 오늘 아침엔 마당에 이불 빨래를 해서 널었다. 그 풍경이 얼마나 흐뭇하고 설레던지.
언젠가 꼭 그 집에 한 번 살아보면 좋겠다고, 꿈으로 간직했던 것이 이루어지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다른 꿈들도 언젠가 오랜 열망으로 간직한다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내년 봄엔 마당에 채송화와 백일홍과 사루비아와 칸나를 심어야지, 그래, 허브들도. 열어 제킨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며 누워있으려니, 매미의 울음소리와 참새가 짹짹 지저귀는 소리에 모든 세상시름이 녹아내릴 것 같다. 아이고, 출근하기 싫다. 하루쯤 작정하고 쉬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