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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소설화

To. 엘리엇 4.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7. 10.

  “있지요 어젯밤 울다 자가지고 좀 지금 기분이 그래요 너무 보고 싶어서요. 어젯밤 짜증나게 보고 싶어서 울었는데 또 우는 것까지 짜증났어요. 울면서도 짜증나고 또 그게 짜증나고 그러다가 잤어요. 일찍 근데 또 깨서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찔끔 났어요. 왜 근데요 왜 내 앞에 나타났어요. 나빠요 나는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살다 죽으려했는데 왜 또 나타나서 나를 힘들게 할까요. 틀림없이 앞으로 더 힘들 것 같은데 무서워 죽겠단 말이에요.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참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참기 힘든 일이 너무 많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냥 나 혼자문제라면 나는 얼마든지 참고 나를 다독이고 잘 살 수 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문제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웬만하면 관계를 짓지 않으려고 했고 아, 시! 그런데 이건 또 뭔가요? 아 나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안 보고 싶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고 싶다고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모르잖아요. 또 안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이성적으로 조절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그걸 너무 잘 아니까요.”


                                                                                         *


   "아, 있지요. 새벽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더니 되게 잠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한 두 시간 내리 잤나 봐요. 지금 쪼금 정신이 흐리멍덩한데 응, 이 말이 되게 많이 하고 싶었어요. 나에게 말귀신이 붙었나 봐요. 왜 이렇게 말이 많이 하고 싶을까요? 못 받아주는데 안 받아주겠다는 데 나는 왜 말이 많이 하고 싶을까요? 이런 사람들도 있나 봐요. 병들었나, 이것도 일종의 정신병인가. 진짜 한 번 깊게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요. 근데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을수록 뭔가 말하고 싶어 죽겠어요. 이건 뭐죠? 뭘까요?  응. 너무 보고 싶다. 아이구. "


                                                                                       *

  AC8!!!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며 춤추는 내 모습이 처연하다. 우르릉 쾅쾅 번개도 치고 주룩주룩 비는 퍼붓는데 사위는 이를 데 없이 적막하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내 풍경이 참으로 쓸쓸하다. 그만 파하고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

   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붉은 태양이 솟는 아침에도, 자박자박 속삭이는 듯 비 내리는 아침에도, 미친 바람이 지랄 떠는 아침에도, 밤새 소복이 쌓인 눈바람이 휘날리는 아침에도,

  그대,

  안녕하신가? 안부를 묻는다.


                                                                                        *

  오늘,

  또, 그대

  안녕하신가? 같은 하늘아래 같은 아침을 맞이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아침. 바닷가 우체국 창문 앞에서 쓰던 청마의 편지를 나는 작은 방 컴퓨터 앞에서 대필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대,

   안녕하실 오늘 아침도 나는 세상에서 진정 행복한 여인이 되어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

  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자다가 갑자기 깨어 그대 생각에 눈물이 난다. 어떡하면 좋냐? 이렇게 그대가 매일 보고 싶어서 어떡하면 좋으냐? 한 밤중에 깨어 주룩주룩 베갯잇을 적시는 눈물을 흘려본 일이 있는가? 참말로 사랑이란 놈은 무슨 그리 포원이 많아 오밤중, 아니 이 좋은 새벽을 눈물바다로 만드는가? 수신인이 없는 절절한 음성 메시지들은 시시때때, 마음이 動하면 언제든 재생 반복되어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으로 새겨지며, 그곳 핏빛 무늬 영글며 쓸쓸한 웃음을 부르는데

   “참 지랄 떤다. 염병헐, 고만 좀 혀야 안 쓰것나? 그마, 세월이 아깝지 않나?"

   핀잔을 한다.


                                                                                                  *


  어제는 오랜만에 오, 기다리던, 아, 기다리던 지인들이 "울주 복순도가" 막걸리 이병을 들고 왔다. 쓰르륵 뚝딱 색색안주를 눈 깜짝할 사이에 요리해 겸상을 하고

  "그대 한 잔 하이소, 지도 한 잔 따라주고."

  알콩 달콩 주거니 받거니 요상스런 웃음을 흘려가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언뜻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쏟아지더니 풀풀 아직 성긴 눈발이 날린다. 커튼을 젖히고 조명의 조도를 옴팍 낮추고 Nina Simone을 올리니 야, 요기는 맨하탄, 아니 시애틀 뒷골목 담배연기 자욱한 Blue Moon되었다. 그 사이 "첫 눈이당." 메시지를 한 방 때린다. 수신인이 없는 메시지는 내 가슴으로 반사되어 핏빛 찔레꽃으로 들어앉는다.

  "호호하하"

  옆지기들은 예의 그 요망한 웃음을 흘리며

  "선생님의 남아있는 꿈 세 가지 말해보세요."

  "팔순이 되어도 넘치는 SEX를. 그것도 오직 한 상대만으로 나눌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겄소."

  이런 시덥지 않은, 그러나 아마도 아직도 남아 있는 인생의 로망을 실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뱉어 내고 있건만. 그 달달하고 5도밖에 되지 않는 복순도가 막걸리에 취해 난, 무지막지한 잠이 쏟아지고 시꺼먼 정지된 화면만을 고수하는 전화기에 수없는 눈화살이 꽂히건만

  "오늘밤은 해운대에 눈이 내릴 것이라 하니 목욕 제계하고 기둘리시오. 이만 총총"

  간절한 메시지가 허공만을 배회한다. 아마도 와야 할 주소를 아직 받지 못했을 꺼나, 아니면 잘못된 주소가 기재되었을 수도. 그렇게 시덥지 않은 첫눈도 아닌 그래도 첫눈이라는 성긴 눈발이 비쳤던 밤.

  "내 꿈도 꾸시지 마시고 내 꿈속으로 마실도 나오지 마시고 푹푹 오늘밤도, 그대, 안녕!"

  자동 입력되는 메시지가 "쑤웅" 쏜살같이 날아가지만 부메랑이 되어 제자리로.

  내 또 하루가 이렇게 마감되었다.


                                                                                                 *

   아침 햇살에 지 몸을 드러내놓고 날고 싶은 욕망을 저지당한 한 마리 鳶, 내 당최 그댈 보자마자 비상하고 싶은 콘돌을 연상하다니.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자유다." 외친 사내의 역설.

   나는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풀 죽어 생각해보니 원하는 족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을 하나하나 끊어내며 느끼는 희열은 더 클 법. 마치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길수록 늘어나는 탄력성처럼 어느 날 내 그렇게 내 가진 모든 인연과 집착을 저당 잡히지 않고 과감한 비상을 하려 할 때 작금의 이 긴장은 비상의 추진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보는 시간. 고상 떨며 기껏해야 접수되지 않는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혹은 수신할 수 없는 음성 메시지를 반복해 듣고 있는 내 우스운 꼴이 너무 싫다. 오늘은.

   항상 드러난 현실과 꿈꾸는 이상사이의 간격은 늘 내 것이 아니라는 현실로 귀결되건만

  오늘도 나는 그대를 꿈꾸는 미칠 것 같은 별종의 나를 확인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무엇이 되어있는 그대가 너무 밉고 때려주고 싶어 실컷 욕을 해대고 패대기 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행여 내 생각대로 될까봐 나를 단도리하는 이건 또 뭔 지랄?

"그래 실컷 놀아라. 그대도 한 목숨인디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고 한들 그 누가 틀렸다 말할 수 없건만 이것 하나는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 이 나이 먹도록 살아본 게 내 몸과 마음이 허기졌던 것은 바로 진정성의 결여였더라. 누군가를 향한 진정성의 결여가 나를 늘 허기지게 했고 상대의 진정성에 대한 외면이 나를 늘 죄의식에 시달리게 했다니“

   이런 생각에 도달하여 보니 또 살아온 세월이 헛것이 아니었더라. 늘 배고파하고 있는 그대를 볼 때마다 어느 날인가 그대, 또한 그대의 허기짐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 것인가? 내 오랫동안 안타까움에 동강동강. 나이가 몇인데 여직도 사는 일에, 관계된 인연에 진정한 마음을 쏟지 못하는 그대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기다리는 것뿐이라니.

   내 식의 편지를 써대고 내 식의 욕설을 해대고 내식으로 희죽거려도 보고, 내 식으로 그대를 안아 보아도, 그대는 언제나 그만큼, 그대가 가진 용량만큼만 품지 못하는 그 한계가 오늘은, 참 나를 쓸쓸케 한다. 눈물 나게 한다.

   "오살놈의 사랑아!"

   내가 아니어도 좋다. 허기져 가끔씩 지친 그대 얼굴을 떠올릴 때 마다 꼭 내가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진심으로 살아가 주기를, 누군가의 진심도 진심으로 안아주기를, 그렇게 눈물들이 짜기도 하지만 짠 눈물이 씻어내는 아픔도 치유였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내 오늘 기도 하고 싶다. 그대를 위해. 이것 또한 나에게는 한 마리의 비상하는 연이 되어 내가 나를 극복할 수 있는 날개 짓인 걸, 무심한 세월을 한 참 이나 지날 미래의 어느 날의 일을 미리 앞당겨 오늘 깨달을 수 있어 포진 나를 만난 것 같으니 이것 또한 나의 진정성에 대한  보답 선물이 아닐까 하여 속이 없는 나는, 또 그대가 고맙기만 하다. 아이구, 정말 짱 못났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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