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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소설화

그녀의 영정 앞 풍경 .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7. 4.

  텅 빈 장례식장 안, 손님이라곤 그 남자뿐이었다.

   남자의 등 뒤로, 영정사진 속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마치 남자가 와 주어서 기쁘기라도 하다는 듯.

   여자의 가족이라는 것도 있을 성 싶은데 무슨 까닭으로 남자는 혼자 저렇게.

   안주라곤 달랑 김치조각 몇이 전부인 상엔 남자만큼 외롭게 소주병 하나가 덩그마니 서있었다. 그것도 곧 바닥을 드러낼 만큼 비워져 있었고, 남자는 노래인지 푸념인지 모를 소리들을 웅얼거렸다. 남자의 소리들은 텅 빈 장례식장 안을 휘돌아 다시 남자의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취하기엔 이른 저녁인데 남자의 시선은 몽롱했고 굼뜬 남자의 동작들은 지치고 가난해보였다. 먼 이역 땅을 헤매느라 젊음을 소진하고 뒤늦게 찾아 온 그곳에 여전히 자신을 기다려 줄 것만 같았던 여인을 잃은 허탈감이 뭉텅뭉텅 남자의 소주잔 속으로 함께 가라앉았고 남자는 한 모금 한 모금 소주인지 후회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것들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듯했다.

  “이런 유언 미리 해도 될까요?”

   장난처럼 여자가 해사하게 웃었다.

“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다 잊어주세요. 그러나 한 가지,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제 영정 앞에서 소주 한 병이 비워질 때까지만 머물러 주시겠어요? 미처 제 소식을 듣지 못하셨다면 제 가루가 뿌려졌을 그 지점에서 딱 소주 한 병만 비워주세요. 그것으로 충분해요.”

   여자는 쑥스러운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먼 곳, 허공을 향해 깔깔거렸다. 그녀의 깔깔거리는 소리들은 햇빛 속에 드러나는 먼지 알갱이만큼 반짝거리더니 곧 사라졌다. 지금의 여자처럼 영원히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 순간만큼은 남자의 귓전에 그때의 그 여자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깔깔깔, 깔깔깔.”

   너무 가벼워서, 먼지보다 가벼워서 오히려 손아귀에 붙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참 철없는 여자였다. 남자의 기억 속의 여자는 대책이 없을 만큼 뜬금없는 여자였는데. 남자는 여자의 그 말을 잊지 못했다. 약속 같은 것은 애초 없었다. 약속 같은 것을 하기에도 모자란 찰나였던 만남이었고 그 의미 또한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치부해버려도 되었지만. 한 가지 남자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웃고 있으면서도 울고 있었던 그 여자의 그때의 절실함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한 번이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었을까 되묻고 싶을 만큼 여자가 보여주었던 간절함의 농도였다. 그것은 짐짝처럼 남자의 마음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고 가끔씩은 뜬금없이 성가기기조차 했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참 모를 일이었다. 한 번도 안아본 적도, 안아보고자 했던 욕구마저 일으키지 않았던 여자였는데. 남자는 여자의 일방적인 바람을 지키기 위해 혼자 여자의 장례식장에 덩그마니 앉아 청승을 떨고 있는 자신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으며 왜 자신이 여자와의 일시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되새김질 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