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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추락/존 쿳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1. 5.

 

 

 

원제 Disgrace, 치욕 정도로 해석 될 텐데 번역자에 의해 추락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다. 치욕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지만 추락은 스스로에 의해 발생된다는 어느 블로거의 해석이 흥미롭다.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존 쿳시의 장편소설로, 흑인에게 정권이 이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작품의 무대이다. 백인 식민주의의 잔재와 흑백간의 갈등, 거기에서 비롯되는 폭력의 양상이 현재형의 문장을 통해 그려진다. '추락'이라는 제목과 현재시제의 사용은, 삶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그 상태에 머물러있음을 의미한다.50대 백인교수인 데이비드 루리는 제자 멜라니와의 관계로 인해 추문의 주인공이 된다. 그 사건 때문에 사직하게 된 데이비드는 딸 루시가 소유한, 흑인들이 사는 지역의 작은 농장에 은거하게 된다. 동물보호소에서 개들을 보살피는 등 한동안 평온하던 그의 삶은, 불의의 폭력으로 인해 깨어지는데...<출판사 제공>

 

 

‘시간은 정말로 모든 것을 치유한다. 아마 루시도 나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나아가는 게 아니라면 잊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 날의 기억에 막이 생기고 딱지가 생겨 아물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우리가 강도를 당했던 날을 언급하며, 그걸 단순히 그들이 강도를 당했던 날로 기억할지도 모른다.<213쪽>

 

 

아버지 루리는 강간당한 딸 루시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쩌면 가끔씩 추락하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지요. 부서지지만 않는다면요.”<253쪽>

 

 

멜라니 아이삭스의 부모를 찾아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루리를 비웃는 멜라니의 아버지를 향해 루리는 자조 섞인 말을 내 뱉는다.

 

풍부해졌다. 그는 멜라니에 의해, 토우스 리버에서의 그 여자에 의해, 로잘린과 베브 쇼와 소라야에 의해, 그들 모두에 의해, 풍부해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도, 실패에 의해서도, 풍부해졌다. 그의 가슴에 피는 한 송이 꽃처럼, 그의 가슴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넘친다.<289쪽>

 

 

루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건다. 결코 자신의 인생은 추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라고. 어쩌면 루리의 삶은 수직이동이 아닌(추락이 아닌) 수평이동의 삶, 즉 색깔이 다른 삶을 살게 되는지도...

 

 

강간의 결과로 생긴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낳아야겠다고 주장하는 딸 루시는 아버지 루리의 추궁해 대해 강력하게 말한다.

 

 

“제가 하는 일을 아버지가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맞춰 제 삶을 살아 갈 수는 없어요. 아버지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아버지 삶의 일부인양 행동하시잖아요. 아버지는 중심 인물이고, 저는 이야기의 반이 지날 때까지는 나타나지 않는 주변인물이고요.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중심과 주변으로 나뉘어 있지 않아요. 저는 주변인물이 아니에요. 제게도 아버지 삶이 아버지에게 중요한 만큼이나 중요한 삶이 있어요. 제 삶에서, 결정을 하는 건 저예요.”<298쪽>

 

 

각자의 삶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루시의 말들이 눈물겹다.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이 선택하는 삶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설령 부모의 눈에 자식이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다하더라도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까. 딸 루시는 이제 옆 농장주인 나이 먹은 흑인인 페트루스에게 그녀의 농장을 양도하고 그의 3번째 첩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한다.

 

 

“굴욕적이죠. 그러나 어쩌면 다시 시작하기에는 좋은 지점일 거예요. 어쩌면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걸 배워야 할 거예요.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걸 배워야죠. 아무 것도 없이. 어떤 것밖에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이. 카드도 없고, 무기도 없고, 재산도 없고, 권리도 없고, 위업도 없고.”

“개처럼”

“그래요, 개처럼.”<309쪽>

 

 

과연 루시의 선택은 루시에게 최선일까? 설령 최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그것이 옳은 것이다. 설령 개 같은 삶이 기다릴지라도.

 

 

 

1. 멜라니 아이삭스는 루리에 의해 강간당한 것인가?

2. 루리의 딸 루시는 왜 강간당한 농장에 계속 머무르며 페트루스의 보호아래 있기를 주장 하나? 루시의 주장을 이해하지만 진정으로 동의할 수 있나?

3. 마지막 루리가 단념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이 순간에 이루어지나? 추락이 아닌

4. 처음부터 끝까지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단순히 바이런 이 낭만적의 연애의 표상이어서일까? 아니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해석자의 말처럼 남아공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역사와 정치, 문화를 아우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여하튼 술술 읽혀지긴 했다. 나처럼 인생의 낙관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떨떠름한 이야기.

 

 

작가 쿳시는

“내 소설이 지향하는 것은 벌어진 틈, 거꾸로 된 것, 아래쪽에 있는 것, 베일에 가려진 것, 어두운 것, 묻힌 것, 여성적인 것들 타자를 읽는데 있다.”

며 작품을 통해 자신 나름의 세상읽기를 한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내 자신의 작품들에서 어떤 색깔의 세상읽기를 지향해야할까? 인생찬미라고 주장해왔지만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생각이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