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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삶의 고해를 헤엄치기 위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5. 3. 24.

  아빠는 슈퍼아줌마와 함께 산 이후 우리에게 좀 무심해져 갔다. 우리에 관한 모든 일을 슈퍼아줌마에게 맡겨버린 듯했다. 슈퍼아줌마는 나를 데리고 말더듬이와 난독증을 고치기 위해 병원도 함께 갔다.

  “그냥 저절로 나아질 테니 기다리라고 하던데요.”

  슈퍼아줌마가 아빠한테 전해준 말이었다. 나는 고개가 갸웃거렸지만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분명 얼마간 병원을 다니며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슈퍼아줌마는 아빠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슈퍼아줌마의 거짓말은 끝이 없었다. 아빠 대신 내 담임을 만나고 왔다고도 했다. 친구들에게 간식을 제공해주었다고도 했다. 아빠가 지켜보는 곳에서만 우리에게 친절했다. 특히나 밥상머리에서 살갑게 구는 때는 밥도 잘 넘어가지 않을 만큼 역겨웠다.

  슈퍼아줌마는 잔뜩 눈웃음을 치며 아빠에게 살랑거렸다. 참고 또 참았다. 내가 참아야만 집안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에겐 고통이었다. 자꾸만 참아야 하는 일이 늘어갈수록 세상이 고해라는 책속의 말들이 실감났다.

  고해의 바다를 헤엄치기 위해 나는 책을 읽었다. 사실 나는 엄마의 책을 섭렵하고자 했다. 읽다보니 또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막연히 느꼈다. 어쩌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참는 따위의 일들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사는 늘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셈이다. 오늘 좋은 일이 꼭 내일까지 좋은 일이 되는 법은 아니니까. 하여도 책을 읽는 일은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이른 봄 눈 속에 피어오르는 복수초처럼 내 힘든 삶에 작은 꽃을 피우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아빠는 슈퍼아줌마가 엄마보다 더 좋은 듯 히죽거렸다. 그런 아빠가 나는 자꾸 멀게만 느껴졌다. 아빠는 점점 털이 빠진 수탉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아빠가 털 빠진 수탉이 되어 갈수록, 슈퍼아줌마가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되어갈수록, 나는 엄마가 남겨놓고 간 많은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했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한 방법이었고 한편으론 다다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나는 창수처럼 무작정 다다와 친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다다의 세상과 통하는 또 다른 통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뿐 엄마의 모든 책을 읽는 것은 힘들었다. 연두는 엄마의 모든 책을 읽고 말겠다는 듯 책속에 빠져 살았다. 때론 책에 빠져 언니인 나에게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연두가 점점 낯설어지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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