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중학생이던 슈퍼아줌마의 아들이 자꾸 나와 연두와 친해지려고 했다. 특히나 연두를 귀여워했다.
“오빠 말 잘 들어야 해.”
아빠도 슈퍼아줌마도 늘 우리에게 잔소리처럼 말했다.
“오빠는 친절해요.”
연두는 슈퍼아줌마의 아들을 따랐지만 나는 절대 싫었다. 자신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라며 우리를 상대로 연습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자꾸만 옷을 벗기려 했다.
“누구에게도 우리 놀이에 대해 말하면 안 돼. 만일 어른들에게 말하면 너희 아빠도 골로 가는 거야.”
나는 아빠를 골로 보낸다는 슈퍼아줌마 아들의 말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골이라는 말이 엄마가 가버린 그곳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생각만 했다. 절대 아빠까지 골로 보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빠와 슈퍼아줌마가 먼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가야했던 날이었다. 하룻밤을 서울에서 지낸다고 했다. 슈퍼아줌마의 아들에게 동생들을 잘 돌보라고 부탁도 했다. 그날 저녁 아빠도 슈퍼아줌마도 집에 없는 사이 슈퍼아줌마의 아들은 친구 하나를 더 데리고 왔다. 새까만 사마귀가 콧잔등을 누르고 있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영구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간질간질 웃음이 나는 것을 참느라 얼굴이 달아올라 힘들었다.
어른들이 안 계신 틈을 타 슈퍼아줌마 아들과 영구는 담배를 피우고 아빠가 마시는 술도 마시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빠진 나는 일찌감치 슈퍼아줌마의 아들을 피해 우리 방에 가 문을 걸었다. 연두는 슈퍼아줌마의 아들에게 계속 오빠라고 부르며 심부름을 했다. 슈퍼아줌마 아들의 친구에게까지 오빠라고 불렀다. 똑똑한 연두가 왜 그렇게 오빠도 아닌 애들에게 오빠라고 부르는지 나는 답답했다. 답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까지 났다. 하여도 나는 참았다. 연두가 더 똑똑했으니까.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위해 노력했다.
그날 밤 내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다. 연두와 나는 천둥이 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영태와 그 친구와 함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깜박 잠이 들었을까, 캄캄한 방안에서 나를 더듬는 손이 있었다. 처음에는 늘 그랬듯이 연두가 옆에 누워 자신을 만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냄새가 달랐다. 분명 연두의 냄새가 아니었다. 시금털털한 하수구 냄새가 났다. 나는 연두가 방귀를 뀌었나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연두의 손이 아니었다. 연두의 손은 작아서 야들야들했는데 나를 만지는 손은 그렇질 않았다. 더군다나 한 번도 연두의 손이 놓이는 부분이 아닌 특별한 곳을 만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와락 겁이 났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개 거품을 문 듯 내가 지르는 소리에 나를 만지던 놈이 후다닥 도망을 쳤다. 언뜻 영구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콧잔등의 사마귀를 본 것도 같았다. 나는 한 동안 계속 고함을 쳤다. 아무리 고함을 쳐도 연두가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켜고 이방 저 방을 찾아봐도 연두는 보이지 않았다. 슈퍼아줌마의 아들도 영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고함친 뒤끝이라 진이 빠져 나는 더 이상 연두를 찾지 못했다. 그저 오돌오돌 방 한구석에 불을 환히 밝힌 채로 그 밤을 보냈다. 새벽녘이 되자 빛이 스며들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놀라 깨어나보니 슈퍼아줌마의 아들과 연두가 들어왔다. 연두의 얼굴이 이상해보였다.
“어~~디 갔~~다 왔~~어?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연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어디를 가긴. 세탁소에 있었지. 이 쌍년이 무섭다고 해서 밤새 내가 지켜 주었다. 이년아. 꼭 생긴 것은 오랑우탄 같아서······.”
슈퍼아줌마의 아들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욕을 해대며 침을 뱉었다. 나에게 특별히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험상궂은 말을 쓴 적은 없었다. 연두에게는 나름 살가운 구석도 있었는데 도시 모를 일이었다.
“어젯밤에 일에 대해선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면 알지?”
슈퍼아줌마 아들은 부엌에서 가져온 부엌칼을 형광등 불빛에 번쩍이며 휘둘렸다. 나도 연두도 얼굴이 새하얘졌다.
“특히나 너희 아빠한테 말하면······.”
슈퍼아줌마 아들은 부엌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너무 무서워 나는 오줌을 절였다. 연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연두는 가슴이 답답한지 계속 목을 움켜잡았다. 나는 슈퍼아줌마 아들도 겁이 났지만 연두가 더 걱정되었다. 연두가 아프면 어쩌지, 연두도 엄마처럼 죽으면 어쩌지,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슈퍼아줌마 아들은 무엇이 불만인지 계속 욕을 해대며 우리를 흘끗거렸다. 나는자꾸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했다. 다행이 슈퍼아줌마 아들은 우리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밥을 먹지도 않고 나가는 슈퍼아줌마 아들에게 연두가 소리쳤다.
“오빠, 밥 먹고 가.”
나는 갑자기 연두가 미웠다. 겁만 주는 슈퍼아줌마 아들에게 친절한 연두에게 심통이 나서 나도 밥을 먹지 않았다. 연두도 아침밥을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도 나는 어젯밤의 일들을 생각하니 자꾸 성가시기만 했다. 또 슈퍼아줌마 아들이 부엌칼을 들고 겁을 주는 장면이 생각나 자꾸 몸이 떨렸다. 계속 연두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슈퍼아줌마 아들을 오빠라고 부르면서 알랑방귀를 뀌는 연두가 나보다 정말 똑똑한 아이인지 처음으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예 슈퍼아줌마 아들을 피해 다닌 반면 연두는 오빠라고 부르며 꽁무니를 따라 다녔다. 나는 한 번도 연두에게 불만을 품은 적이 없었지만 연두가 슈퍼아줌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과 그 아들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점점 역겨워졌다. 내가 슈퍼아줌마와 그 아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 챈 연두는 내 앞에서는 늘 조심하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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