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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몽상 5.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5. 3. 10.

몽상 5.

 

  멀어져가는 기차의 뒤꽁무니가 아련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들어 언덕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다. 목적지를 확인한 듯 사람들은 하나 둘 천천히 언덕을 향했다. 언덕위에는 그림 같은 건물 몇 채가 즐비해있었다. 건물들은 한결 같이 언덕아래 역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언덕을 향해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고 몇몇은 헉헉거리기조차 했다. 무리들 사이에 끼여 나도 천천히 숨을 고르며 다소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언덕 위 소나무 2그루가 있는 건물들 왼편의 잔디밭이었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지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정확한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세월을 가늠할 수 노송 2그루가 큰 가지들을 늘어뜨리며 위용을 자랑했다. 언덕을 향해 오르내리는 누구라도 쉽게 소나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참이나 뒤쳐져 오르다보니 벌써 소나무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눈에 띠였다. 어림짐작으로 스물 남짓 모여든 걸로 보아 지난 학기보다는 수강인원이 많아진 것은 아닌지 은근히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직관과 감성과 이성을 공유하는 수업인지라 사실 지난 학기처럼 여덟 남짓이면 충분했다. 어떻게 저 많은 인원으로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다소 걱정스럽기조차 했다. 하지만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난 수강생들 중의 하나였고 몇 년을 같은 수업을 받았지만 한 치의 성장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어정쩡한 인물이 아닌가. 나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생각해보면 나 같은 수강생이 강사로선 환영할 만한 존재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언덕에 올라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들고 약속된 소나무 주변에 이르니 몇몇은 자기들끼리 모여 잡담을 하고 몇몇은 어기적거리는 나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자꾸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보고도 못 본 척 얼기설기 모여든 사람들 틈사이로 나는 엉덩이를 드밀며 한자리를 차지했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낯선 나를 아는 체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자기들끼리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몇몇도 있었다. 헐떡거리는 숨을 차분히 하려 심호흡을 하며 나는 언덕아래를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보이는 역사 주위의 풍경은 생각보다 멋졌다. 강과 나란히 달려오는 철로는 사뭇 고찰처럼 보이는 역사 주변을 휘돌아 가물가물 멀리까지 뻗쳐 있었다. 가뭄 탓인지 강물은 군데군데 모래 언덕을 드러내며 겨우 물줄기를 이뤄 흐르고 있었지만 그 옆으로 제법 높은 산들이 연이어진 까닭에 물이 마를 날이 없겠구나 짐작되었다.

  숨고르기 끝나자 겨우 모여든 사람들의 면모가 눈에 띠였다. 제법 젊은 축들이 많아 보였다. 아니 20대로 짐작되는 몇몇을 포함해서 주로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인물들은 기대감 때문인지 흥분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인원에 대한 걱정보다는 나도 덩달아 그들의 분위기에 묻혀 점점 기분이 고조되었다. 젊은 그들 속에 동화라도 된 듯 자꾸만 묘한 설렘이 가슴을 열어젖히고 이 시간의 모든 활력을 받아들이겠다는 태세였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내 온 몸의 촉수가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 슬금슬금 꿈틀거렸다. 촉수의 꿈틀거림이 간지러움으로 전해서 실실 입가에 웃음이 배어나오자 나는 큰 숨을 들이 내쉬며 애써 내 기분을 숨기려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

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

<문정희/ 살아 있다는 것은>

 

 

 

  새벽에 몇 번이고 뇌까렸던 시의 구절이 생각났다. 지금 이순간의 기분은 그랬다.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어떤 리듬이 태어나 가락을 타고 있는 듯했다. 참 모를 일이었다. 뻘쭘했던 기분이 걱정으로 변했다가 나도 모르게 묘한 생동감을 띨 수 있다니. 자꾸만 고조되어 가는 기분을 가라앉히며 멀리 두었던 시선을 다시 내 안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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