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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몽상 2.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5. 3. 7.

  여전히 나는 과거를 반추하며 현재의 삶을 위로하고 다가올 미래의 삶의 불가해성에 도전하고 있다. 즉 과거의 파편들을 재조립하며 현재의 의미를 찾고 위로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삶의 불가해성을 읽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미래를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그 와중에 어느 길목에서 길을 잃다가도 햇빛에 반짝이는 사금파리 같은 조각들을 발견하게 되면 눈과 마음을 열고 그 의미와 방향성을 찾으려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자신을 끌고 간다. 그러한 지점들에서 미래를 향한 동력을 발견하며 그 동력에 의해 내일이라는 끈을 비루한 현실의 일상에서나마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연속이었다. 밥 먹기 위해 반복되는 출 퇴근에 한계를 느낄 때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지친 내 영혼에 한 줄기 시원한 생수를 뿌려주는 듯 낯선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언니, 제안하나 할까?”

  다짜고짜 안부도 생략한 채 그녀의 목소리는 통통 튀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내 생각도 하고 살았는지, 왜 그렇게 소식이 없었는지 구구절절 궁금증을 뒤로한 채 내 가슴도 그녀의 목소리마냥 콩닥거렸다. 내 몸의 온 신경마저 곤두섰다.

  “내가 새로 일을 시작했어. 성공가도를 향해 치닫고 있는데 언니 생각이 났지.”

  알다가도 모를 소리에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알아듣게 이야기 하렴.”

  지나치게 논리적이어서 냉정하기까지 했던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아니었다.

  “그거 알아, 인생엔 늘 기회라는 것이 있지. 인생 삼세판의 기회중 하나를 잡은 셈이지.”

  점점 알쏭달쏭한 소리를 해대는 통에 덩달아 그녀를 따라 미로의 입구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기회를 언니에게도 주고 싶어. 늘 언니를 생각한다는 것 알잖아.”

  그녀의 콧소리가 높아져감에 따라 어느새 나는 불안하기조차 했다.

  “일단 만나자. 우리 사무실에서 보자.”

  단호하기조차 한 그녀의 목소리는 반항의 여지를 불허하는 무게가 있었다.

  “사실 언니가 근무하는 사무실 위층에 내 사무실이 있어.”

  내 사무실 위층에 있으면서도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니. 전번까지 바꾸면서도 감쪽같이 내 주위에 있었다니. 반가움이 야속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사연이 있어. 연락하지 못한. 아무튼 만나. 언니가 올라와.”

  내 침묵의 의미를 눈치 챘는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된통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마냥 잠시 정신이 멍했다.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쇼핑센타를 위해 건립되었다. 원형 건물로 중앙부에 분수를 설치해 전 층에서 분수를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비록 지은지 오래되어 곳곳이 타일이 벗겨지고 금이 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5층부터는 세탁소, 부동산, 문구점을 겸비한 서점, 보험회사 같은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7층부터는 작은 회사들이 입주해져 있었다. 그녀가 있다는 8층은 1년 전부터 여자들이 쉴 사이 없이 드나드는 다단계판매회사가 들어와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던 곳이었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나로서는 8층에 드나드는 인물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출근한 뒤로는 하루 종일 컴퓨터와 전화기에 씨름을 반복해야 했다. 한껏 부풀어 올라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풍선처럼 내 온 신경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내가 관심을 둘 만큼 내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즈음에 연락을 해 온 그녀가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비루한 현실을 구원해줄 한 줄기 빛처럼 근거 없는 희망에 나는 들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그녀에게 갈 수 없었다. 다단계회사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묘한 불안감이 내 발걸음을 붙들고 있었다. 어쩌면 세월의 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공유했던 시간의 배 만큼 서로를 알지 못하고 지낸 시간들의 다리를 건너기에는 어딘지 모를 위태로움이 내 신경을 붙들고 있었을지도. 바쁘다는 변명을 하며 이틀을 버티다 퇴근 무렵 나는 그녀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8층 전층을 임대한 듯 곳곳에 사무실 로고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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