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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해망동 연가 줄거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6. 26.

<해망동 연가> 줄거리

 

글쓴이: 지 고

 

  해망추월(海望秋月), 해망령에서 소나무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의 가을 달빛. 군산 8경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자랑스럽게 오르내리는 곳. 어릴 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 연분홍 복사꽃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날은 특히 좋았었는데. 오늘 비록 가을도 아니고 달빛도 없지만 바다는 그대로였고 코끝을 간질이는 갯내는 여전히 정다웠다. 마치 엄마의 젖무덤에서 풍기던 냄새처럼. 엄마의 냄새는 아득했지만 갯내는 늘 현실이었다.

 

  지금 지영은 자신의 가장 친했던 친구 동숙의 여동생 동자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군산 해망동에 와있다. 식장에 가기 전 지영은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잠깐 월명산에서 해망동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산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는 여전했다. 버거웠던 삶의 무게에 짓눌렸을 때 고통스럽게 바라보았던 바다도, 오늘처럼 삶이 축복처럼 여겨지는 순간에 바라도 보이는 바다도 늘 무심하다는 생각. 해망동은 그랬다. 서해의 짠물이 금강의 황톳물에 밀려 좀 순해진 곳, 하여 가진 것 없는 누구라도 기댈 수 있는 곳, 갯내를 견딜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발붙이며 엉덩이를 들이밀면 어느 새 하나가 되는 곳. 지영에게 기억되는 해망동은 자신의 삶의 시원이었다. 지영은 그래서 늘 이 자리에 서있기만 하면 불끈 불끈 삶에 대한 욕망이 샘솟는지도 모른다.

 

  서둘러 동자의 결혼식장에 도착한 지영은 언니지수와 조카 세미, 그리고 그날의 주인공 동자를 만나 감회에 젖는다. 이제는 그들 곁을 떠난 가장 친했던 동자의 언니 동숙에 대한 추억에 동자도 지수도 지영도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동숙의 장례식장은 쓸쓸하기만 했다. 동숙 새엄마의 억지 울음소리만 허공을 맴돌았다. 지영은 두 번을 망설이다 세 번 째날 장례식장을 방문한다. 동숙의 죽음은 지영에게 절망감만을 안겨준다. 같은 라인의 반장이었고 동숙의 남자친구였던 김형태가 사망하고 연이은 베프 동숙의 죽음을 마주친 지영은 자신이 마주친 현실의 부조리를 느낀다. 동숙의 죽음은 한국 제일의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산업재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쉬쉬하지만 이미 선배 몇 명이 같은 공장에서 죽어 나갔고 몇 명은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거대한 세력 앞에 진실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다. 지영은 그런 상황들을 전해 들으면서 분노하지만 자신의 힘의 한계를 느낀다. 동숙과 김형태의 죽음의 과정에서 지영은 M이라는 잡지의 기자인 박상현을 만난다. 박상현은 김형태와 동숙의 죽음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있었다. 박상현은 동숙의 친구였던 지영에게 사건에 대해 힘을 합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지영은 고등학교에 고아원 출신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뒤로 물러난다. 일종의 자격지심이자 현실의 벽을 느끼며 스스로 움츠려드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만큼 아직 젊은 지영에게 괴로운 일은 없었다. 자신의 몸도 점점 한계를 느껴갔다. 동숙처럼 자신도 머지않아 죽어나갈 것 같은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찾아온다. 하지만 지영은 퇴사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언니 지수와의 독립된 생활을 위해 몇 년은 돈을 더 벌어야 했다. 하여 지금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한국 제일의 반도체 공장이라는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갈등 속에서 자신이 자란 고아원 원장의 죽음을 접하게 된다. 장례식을 찾은 지영은 언니 지수와 자신이 사랑했던 고아원 원장의 아들인 석현이 오랜 동안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사실과 접하게 된다. 충격이었고 언니 지수가 자신을 속여 온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영을 경악하게 한 것은 고아원 원장이 유품으로 남긴 사실들이었다. 그 유품 속에서 고아원 원장과 자신의 아버지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이다.

 

  고아원 원장과 자신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 오식도란 섬에서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지영의 어머니를 어렸을 적부터 사랑하게 되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아원 원장은 지영의 어머니를 잊지 못했다. 그 결과 지영의 아버지를 오송회 사건과 연루하여 고발을 하게 된다. 그것에 대한 자책으로 평생을 괴로워한 고아원 원장은 지영의 어머니의 건강을 이유로 지영과 지수를 대신 키우게 된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 지영과 지수를 돌본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엄마를 잃게 된 고아원 원장의 아들인 석현은 얼마간 모자라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지수를 사랑하게 된다. 고아원 원장은 지수 엄마와의 자신의 사랑을 위해 그 둘을 떼어 놓으려 지수를 유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석현과 지수를 죽음 앞에서 겨우 승낙을 하게 된다. 더불어 자신이 지영과 지수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임을 고백하고 세상을 떠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지영은 뉴질랜드 퀸즈타운에 있다는 엄마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엄마를 만나기 전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된 ‘오송회 사건’의 핵심인물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사건의 진실을 캐낸다. 모든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지영은 자신의 핏속에 있는 ‘의’를 향한 방향성을 깨닫는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영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서게 된다.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지영은 다시 공부를 시작해 4년의 대학생활을 경험한다. 대학 내내 반올림이라는 반도체 직원들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단체에 힘을 보태며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법을 택한 지영은 사력을 다해 공부를 마친다.

한편 고아원 원장의 죽음으로 성사된 지수와 석현의 결혼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수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석현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집안 좋은 여자와 결혼한다. 버림을 받은 지수였지만 임신한 아이를 출산한다. 그것은 용기였다. 그 용기에 힘을 보태준 것은 지영이었다. 비록 석현은 지수를 버렸지만 늘 갈등하며 행복하지 못하다. 지수는 버림받은 여자였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홀로 키우는 아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그런 언니를 보며 지영은 또 한 번 용기를 낸다. 조금씩 세상 속으로 자신의 힘을 보태기로 한다.

 

  이제 지영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굳건히 현실의 세계로 진입한다. 비록 부조리로 점철된 현실이었지만 지영은 뜻밖에 아직도 세상을 향해 열린 꿈을 가진 박상현을 다시 만난다. 지영이 입사한 방송국 부장이 되어있는 박상현은 지영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상현의 응원에 힘입어 지영은 고향인 군산의 아메리카타운의 여성들의 실상을 조사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고모라고 생각되는 피붙이를 만나게 된다. 고모를 찾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수는 고모와 함께 살게 되며 동자의 도움으로 자신의 딸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간다. 늘 언니 지수에 대해 어깨가 무거웠던 지영은 이제 언니의 다부진 삶을 확인하며 부채감을 덜게 된다.

그 사이 박상현은 또 다른 자신의 열정을 펼치기 위해 유럽특파원으로 떠나고 지영은 다시 돌아올 박상현을 기다리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다.

  지영은 <함께 나누는 행복>이라는 30분짜리 방송을 맡아 활약을 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배지영의 이름을 걸고 직접 취재해 방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어제 방송에서 마지막 멘트로 담당 작가가 써 준 원고 대신에 지영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4월 꽃향기에 취한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우린 또한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먹구름 속에서 울었다던 눈과 바람과 비를. 감사합니다.”

  방송을 끝내고 동자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내려오며 지영은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가는 과정 중에 만났던 모든 인연들은 지영에겐 바로 꽃을 피우기 위한 눈과 바람과 비였으며 이젠 그들에게 감사할 만큼 성장을 이룬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