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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환희/이정하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11. 10.

처음에 어린 새가 날개짓을 할 때는 그 여린 파닥임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하지만 날개짓을 할수록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이 꾸준히 나아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기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 맨 처음 너를 알았을 때 나는 알지 못할 희열에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 막막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내가 사랑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은 항상 내 곁을 떠나갔으므로 그래도 나는 너에게 간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너에게 당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그렇다. 내가 환희를 느끼는 것은 너에게 가고 있다는 그 자체다. 마침내 너에게 닿아서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그 자체가 나에겐 더없는 기쁨인 것이다.(이정하 산문집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처음 널 만났을 때, 난 또 하나의 나를 보았다. 가녀린 새의 날갯짓을 하며 수없이 상처받고야 말 네 모습속의 나, 환희였고 희열이었다. 하지만 일종의 두려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알 수 없는 것의 정체에 난 떨 수밖에 없었다. 망설임 끝에 너에게 가기로 했다. 작은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나아가다보면 너에게 당도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아마도 막연한 기대였으리. 참 이상한 것은 말이다. 내가 한 발자국 가까이 가면 넌 두발자국 멀어진다는 느낌,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하여서 잠시 멈추었다. 너도 멈춘 듯하였다. 또 다시 불안했다. 네가 모르는 사이에 살금살금 너에게 가기위해 나는 또 한 발자국을 떼였다. 무심하던 넌 또 두발자국 도망쳤다. 도망치는 것인지, 우연히 뒤로 물러서는 것인지 도시 분간할 수 없었다. 흐르는 시간만큼 지쳐 피곤해졌다. 멈춰 잠시 또 해찰을 해본다. 바람도 불었고 눈이 왔고 해가 비쳤다. 마침내 알았다.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것은 너에게 닿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닿기 위한 것이었음을. 너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자체가 나에게 걸어가는 것이었으며 걷는 자체에 얼마나 큰 환희가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안에 난 내 모든 것을 풀어 놓았다.

가을날, 단풍잎에게 가서 물어 보라.

낙엽이 되어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도

왜 그 순간까지 자기 몸을 남김없이 태우는지.

 

결국 나는 살아가면서 유일한 가난함이란 가슴 속에 '사랑'이 없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비록 슬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 삶이 넉넉할 수 있었지 아니한가. 비록 그 사람은 곁에 없지만 그를 사랑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고 생각하면서. 상처받는 것이 겁나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여, '사랑'을 빠트려놓고 한번 살펴보라. 당신의 인생에서 도대체 가치로운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단풍잎 사랑/이정하)

 

 

네가 오지 않겠다 하여도

나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 날,

단풍잎에게 물어보았다

낙엽이 되어 떨어질 걸 알면서도

그렇게 붉기만 하였는지

자신도 어찌할 수 없었다고

그리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것이라고

단풍은 마지막 잎을 떨구며 웃었다.

 

하여 내 사랑도 그랬구나

어찌할 수 없이 흐를 수 밖에 없구나

마음 깃을 여미며

깊은 숨을 내쉬어도

내 삶은 너를 향한 사랑으로 충분히 넉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