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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88 -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전경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6. 29.

   내가 읽고 있는 전경린의 다섯 번째 책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다. 무엇인가의 매력을 알아차리게 될 때 그 전부를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부를 보고 싶단 유혹은 거의 치명적이다. 가속도가 붙은 전경린 읽기는 연도를 거슬러 최근 작품부터 읽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제목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냐면 모든 것을 막론하고 그녀의 문체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책 한 권을 낸다면 누군가 내 글들을 읽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고 누군가의 차가운 마음을 데우는 그런 글들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제 전경린을 만나고 부터는  누군가의 마음을 찔릴 듯이 아름다운 그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더하나 추가시키게 되었다.

  책 마지막에 주인공은 말한다.

 "인생의 끝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하나의 꿈속에서 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일어난 일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상처들은 그와 나를 한동안 더 떠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한밤중 젖은 속눈썹 속에 떠오를 나의 꿈을. 그리고 그의 꿈...마지막까지 단념하지 못할 하나의 냄새를.. 우리들 생애의 마지막 그리움을.  내 생은 살이 망가진 우산을 펴고 보이지 않는 먼 공중으로 아득히 날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 삶도 둥글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바다를 건너 언젠가는 그 처음으로 가 닿고 싶다. 훼손되지 않은 내 꿈의 맨 처음으로..."

  꿈은 그저 꿈일 뿐인가. 지난한 삶의 한 가운데를 갈망과 그 갈망으로 인한 고통을 겪어내는 주인공을 내 자신으로 내면화시키며 짜릿한 흥분과 내밀한 욕망과 그에 따른 고통을 간접으로 경험했던 여행이었던 같다. 진부한 삶의 궤도를 이탈해 돌연한 변이를 보여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섬광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내 안의 내재된 불온함이리라. 하여 주인공을 통한 대리만족은 그 불온함을 희석시켜 주는 것은 아닐까?  하여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은 소문처럼 그렇게 아무곳에서나 나뒹그는 일이 아님을, 매우 예외적이고 특별하지만  남루하고 무상하고 환멸까지도 동반하는 찬연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임을 잊지 말라는 경고를 무참히 받아들이고 싶은 날이다.

 

 


 

 

 

일상의 평범한 속에 내재된 욕망, 관습과 제도를 거부하는 불온함의 내면풍경을 섬뜩하게 포착하여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떠오른 전경린의 두번째 장편소설. 이 작품은 작가가 1998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구름모자 벗기 게임'을 크게 손질한 것으로, '나쁜 날씨' 같은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삶을 향해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무섭고도 두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여러 겹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휘감고 있는 하나하나의 겹은 모두 가면이다. 결혼 생활이 가져다 주는 미지근한 평화에 안주하고 있던 여주인공 미흔은, 그 미지근한 안정감이 사랑의 정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로 인해 미흔의 삶과 정체성은 여지없이 깨진다.

기억으로부터 단절되고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유폐의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제안한다. 일정 기간 동안, 조건없는 사랑을 나누되,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쪽이 지는 게임. 서로 약속한 기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어지고 마는 게임이다.

전경린의 이번 작품은, 작가가 그동안 작품 속에서 제기했던 질문, 즉 인간과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심연, 즉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격렬하고도 섬뜩한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다. 이제 작가는 '생은 과연 무엇이고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탐사한다. (알라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