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 눈이 내렸다는 새벽이다.
그것도 사상초유의 눈보라가 쳐
바다가 바다가 아니고
해변이 해변이 아니고
온통 눈꽃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한 여자가 조선 호텔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니
그 여인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희고 아름다운 손과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은
나니아 연대기의 하얀 마녀 바로 그녀였다.
세계의 여왕,
마지막 여왕 제이디스 였다.
내가 본 여인 들 중에
가장 키가 크고 덩치가 어마어마한 여인이었다.
그 여인도 목까지 올라오는 하얀 모피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오른 손에는 길고 곧은 황금빛 마법의 지팡이를 들었고,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있었다.
여인의 얼굴은 새빨간 입술만 빼고는
그냥 창백한 정도가 아니라 흰 눈이나 백지장 같았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매우 오만하고 차갑고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마녀중의 마녀였으므로
이용할 수 없는 사물이나 사람한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모르겠니, 나는 여왕이다.
너는 내 백성이고
내 백성이 내 생각과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그런 오만함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을 하듯이
가볍게 오른팔을 뻗어 가로등 기둥에 달린 쇠막대를 뎅겅 부러뜨려 본다.
마녀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마녀는 그 노래가 마음에 시작된 뒤로
이 세계가 온통 자신의 마법과는 다른,
한층 더 강한 마법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느꼈다.
그녀는 전보다 더 강하고 거만해 보였으며
심지어는 어떤 면에서는 의기양양해 보이기 까지 했다.
마녀는 더 이상 멍청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오직 한 대상을 향해
줄곧 직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한 대상이
오돌 오돌 떨며
그대로 하얀 눈사람처럼
하얀 마녀가 오기만을 두려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내 고문이냐, 노예냐?
시키는 대로 해! 어서"
대상을 향해 완벽하게 소리치는 하얀마녀앞에
대상은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고 싶었을까?
대상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걷기 시작한다.
하얀마녀는 그녀의 마법을 잃어버렸는지
망연히
대상의 뒷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법을 잃어버린 하얀 마녀는 더 이상 마녀가 아니었다.
마녀의 눈에 빨간 눈물이 흘러 나왔다.
빨간 눈물은 그녀의 온 몸을 적시며
서서히 마녀의 몸을 녹였다.
대상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예의
그 무심한 눈길로
하연마녀의 사라짐을 건너다 본다.
하얀마녀가 드디어 빨간 흔적만을 남기고
완벽한 자취를 감추었을 때
대상은
드디어 가던 길을 계속 걷고 있었다.
그의 등뒤로
따뜻한 오월의 햇빛이 내리고
해운대엔 더이상 눈이 내리지 않았고
눈꽃들의 세상도 사라졌다.
눈꽃 세상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한 여인이
새벽 내내 울고 있었다.
이야기 속의 많은 부분들은 나니아 연대기속의 내용들입니다.
각색?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0 탄 나, 熱愛중 - 구례여행 2 (0) | 2012.11.25 |
---|---|
제 19 탄 나, 熱愛중 - 구례여행 1 (0) | 2012.11.24 |
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0) | 2012.11.21 |
자유란 이런 것인가? (0) | 2012.11.19 |
제 17 탄 나, 熱중 (0) | 2012.11.18 |